점유율 재편·수익성 개선…‘순한 소주’ 독한 경쟁의 속내

이재아 기자 2026. 1. 23. 11:5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6도 이하로 재편되는 소주 시장…‘부드러움’이 새 문법
덜 마시는 시대…저도수, 수요 방어이자 원가 절감 카드로
롯데칠성·하이트, 점유율 싸움 속 제품 라인업도 재정렬
'순한 소주'가 유행을 넘어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다. 주류 소비가 줄고 건강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해지자 업계는 16도 이하로 라인업을 재편하며 저도수 경쟁을 본격화했다. [출처=EBN]

'순한 소주'가 유행을 넘어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다. 주류 소비가 줄고 건강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해지자 업계는 16도 이하로 라인업을 재편하며 저도수 경쟁을 본격화했다. 소비자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이 앞서지만, 도수를 내릴수록 주정 사용량이 줄어 제조원가가 낮아지는 구조적 이점도 함께 따라붙는다. 결국 저도수는 주류 트렌드 대응인 동시에 경쟁 구도 재편과 수익성 개선을 겨냥한 계산으로 읽히고 있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제로 슈거 소주 '새로'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추는 리뉴얼을 진행한다. 회사는 부드러운 소주를 선호하는 흐름에 맞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새로가 내세운 부드러움이 단순한 맛의 변화가 아니라, 16도 이하를 표준으로 밀어붙이는 시장 경쟁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국내 소주 시장에서 도수가 16도 안팎인 제품은 빠르게 늘었다. 이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와 '진로' 라인업은 16도대 중심으로 재정비된 바 있으며 '진로골드'는 15.5도로 더 낮췄다.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도 16도에 맞춰 움직였고, 충청권 '선양소주'는 14.9도까지 내려가 15도대가 더 이상 실험적 구간이 아니란 점을 보여주고 있다. 소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기 25도가 상식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 문법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출처=롯데칠성음료]

이 흐름을 떠받치는 건 음주 문화의 변화다. 국세청 통계 기준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5년 407만4000kL에서 2024년 315만1371kL로 22.6% 줄었으며, 20세 이상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도 2015년 9.813L에서 2021년 8.071L로 18% 감소했다. '덜 마시기'가 현실이 되자 업체들 입장에선 '순하게 만들기'로 이탈을 막고 새 수요를 끌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원가 구조가 겹치면서 저도수 전략은 더 힘을 받았다. 소주는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는 제품이라 도수가 낮아질수록 주정 사용량이 줄고 물 비중이 늘어난다. 업계에 따르면 도수를 0.1도 내리면 병당 주정 원가를 약 0.6원 절감할 수 있다. 이번처럼 도수를 0.3~0.4도 낮추면 병당 약 2원 안팎의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소주는 대량 생산·대량 판매가 전제인 품목인 만큼 '병당 몇 원'이 누적될 때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저도수 경쟁이 더 치열해진 배경에는 점유율 구도도 있다. '새로'는 2022년 9월 제로 슈거·저도수 이미지를 앞세워 출시 4개월 만에 5000만병, 7개월 만에 누적 1억병을 돌파했고 지난해 7월 말에는 누적 7억병을 넘겼다. 이 기간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매출은 2021년 2286억원에서 2022년 2767억원, 2023년 3387억원으로 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기준 2023년 소주 소매 점유율은 하이트진로 59.7%, 롯데칠성음료 18%였는데, 롯데칠성음료는 '새로' 출시 전인 2022년 14.9%에서 1년 만에 3.1%포인트를 끌어올렸다. 다만 이후 하이트진로가 저도수·무가당 콘셉트를 강화하고 15.5도의 '진로골드'까지 내놓으며 경쟁 구도가 다시 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이트진로 '참이슬'. [출처=하이트진로]

술을 '덜' 혹은 '가볍게' 마시려는 수요가 커질수록, 기업들은 저도수로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원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라인업을 더 촘촘히 재편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장에서도 지난 2024년 6월 주류면허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종합 주류 도매업자가 무알코올 음료를 식당·유흥주점에 공급할 수 있게 되며 유통 채널이 확대됐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저도수 전환은 소비 트렌드에 맞춘 제품 전략이지만, 주정 비중을 조절해 원가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선 '수요 방어'와 '수익성 관리'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카드"라며 "다만 브랜드별 차별화가 약해지면 도수 경쟁이 결국 판촉·가격 경쟁으로 번질 수 있어 맛·향·원료 등 제품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경쟁 축이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 '새로'. [출처=롯데칠성음료]

Copyright © E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