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ESS '2차 대전' 막 올랐다…'최저가' 밀어낸 '안전·국산'의 역습
LFP 양산 경험 LG엔솔, 국내 규모 '부족'
후발주자 SK온, 국내 공급망·안전 '우위'

정부가 1조원 규모의 제2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2차 입찰을 마감하며 시장 판도 재편에 나섰다. 이번 입찰은 단순 최저가 경쟁을 넘어 안전성과 국내 산업 기여도를 승패의 핵심 변수로 설정한 패러다임 전환의 무대가 될 전망이다. 2038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커질 국내 ESS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배터리 3사의 수주 총력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가전산망' 화재 공포가 바꾼 게임의 룰…'안전·주권' 중요

한국전력거래소는 총 540MW 규모의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지난 16일 마감했다. 육지 500MW와 제주 40MW로 구성된 이번 사업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실질적인 첫 대규모 경쟁 입찰이다. 2026년 2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업계의 시선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평가 기준에 쏠리고 있다. 지난 1차 입찰에서 60%에 달했던 가격 배점은 이번에 50%로 축소됐으며 나머지 50%는 비가격 요소로 채워졌다.
이런 변화의 결정적 배경에는 지난해 9월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NIRS) 무정전전원장치(UPS) 화재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배터리 셀에서 시작된 불이 정부24 등 국가 행정망 마비를 초래하며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이 국가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공포를 다시금 확산시켰다. 이후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는 경고가 쏟아지며 입찰 비가격 평가 중 안전성 배점이 6점에서 11점으로 대폭 강화되는 트리거가 됐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2038년 23GW 구축 목표 자체가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기술적으로는 삼원계(NCM·NCA) 배터리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의 대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삼원계 배터리는 섭씨 210도 부근에서 열폭주가 발생하며 화재 시 산소를 자체 공급해 진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반면 LFP 배터리는 올리빈 구조의 강한 P-O 결합 덕분에 섭씨 27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산소를 방출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입찰을 통해 국내 산업 생태계 보호라는 '에너지 주권' 확보에도 무게를 뒀다. 산업·경제 기여도 항목에 12.5점을 배정해 중국산 배터리와 소재 의존도가 높은 사업자에게 페널티를 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이는 해외 공장에서 셀을 수입해오는 이른바 '무늬만 국산' 제품을 배제하고 국내 설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을 우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차 승자 삼성SDI·글로벌 강자 LG엔솔의 엇박자 리스크

삼성SDI는 지난 1차 입찰에서 약 80%에 달하는 물량을 독식하며 압도적인 승기를 잡았다. 각형 NCA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호남권 프로젝트 대부분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울산 공장을 기반으로 한 높은 국산화율이 평가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초기 시장을 장악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이번 2차 입찰에서는 강화된 안전 기준이 삼성SDI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삼성SDI가 고수하는 NCA 방식은 강화된 안전 기준 앞에서 방어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삼원계 특유의 낮은 열 안정성 이슈와 더불어 2020년 이후 국내 ESS 화재 누적 건수 17건으로 업계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평가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SDI는 일체형 솔루션인 삼성배터리박스(SBB)의 직분사 기술 등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의 LFP 선호 현상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양산 경험과 다양한 LFP 라인업을 보유한 글로벌 강자지만 국내 입찰에서는 '생산 거점의 불일치'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주력 LFP 생산 라인이 중국 난징과 미국 미시간에 집중돼 있어 국내 오창 공장의 1GWh 규모만으로는 대규모 물량 소화에 한계가 있다. 만약 프로젝트 수주 시 부족한 물량을 해외 공장에서 조달하게 된다면 '국내 산업 기여도' 점수에서 치명적인 감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발생한 NIRS UPS 화재 사고에 자사 셀이 연관되면서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사고에 사용된 제품은 LG에너지솔루션ㄹ(당시 LG화학) 구형 삼원계 모델로 밝혀졌으나 '안전 최우선'을 외치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수냉식 냉각 시스템과 화재 확산 억제 구조를 적용한 시스템 단위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SK온의 공급망 주권과 미국 규제 반사이익

1차 입찰에서 단 한 건의 수주도 올리지 못하며 고배를 마셨던 SK온은 이번 2차 입찰에서 의외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SK온은 충남 서산 제2공장 라인을 ESS용 LFP로 전환해 연간 3GWh 규모의 국내 최대 생산 능력을 확보하며 '국내 생산' 점수를 정조준했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1GWh) 대비 3배 높은 수치로 중국산 혼입 없는 100% 국내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공급망 주권 측면에서 SK온은 국내 소재 업체와 협력해 양극재의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였다.
안전 기술 측면에서도 SK온은 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법(EIS) 기반의 차세대 진단 기술을 도입해 초격차 경쟁력을 내세웠다. 기존 BMS가 전압과 온도만 모니터링하는 것과 달리 EIS는 배터리 내부 저항을 실시간 스캔해 화재 징후를 최소 30분 전에 사전 감지한다. 이상 징후가 발견된 모듈만 선별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설계로 안전성과 유지보수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또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플랫아이언과 6.2GWh 규모의 우선협상권을 확보한 레퍼런스는 기술적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상황 역시 한국의 이번 입찰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ESS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한하고 중국산 셀에는 약 48.4%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미국 시장의 약 80%를 점유 중인 중국산 LFP 배터리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테슬라 등 글로벌 사업자들은 비중국산 LFP 공급망을 찾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중국을 제외한 ESS 배터리 대안을 살펴보면 한국 업체가 강력한 후보군이다.
이런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이번 2차 입찰은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안전 기준과 국내 완결형 공급망을 확인하는 거대한 쇼케이스가 됐다. 이번 입찰에서 승리하는 사업자는 1조원 규모의 수주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수백배 규모로 팽창할 글로벌 ESS 시장을 선점할 무결점 레퍼런스를 확보하게 된다. 결국 2월의 결과 발표는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책임질 파트너 선정을 넘어 중국의 공세를 뚫고 세계 시장을 호령할 글로벌 스탠더드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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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해당 기사는 삼프로TV/압권/언더스탠딩 인터뷰 방송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더욱 정확한 풍성한 내용은 방송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