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장에선 잘 참다가 집에 오면 폭발”…병인줄도 모르고 사는 지독한 병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④]

이상현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lee.sanghyun@mk.co.kr) 2026. 1. 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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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는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재 기사입니다.

제1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당시 참수리 고속정(PKM)에 탔던 수병들은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과 불면증, 트라우마 인지치료, 치매·자살 예방 등이 주 분야인 그는 제1·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들,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들을 직접 진료하기도 했다.

급수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이 좀 있지만 그나마 개선이 있었는데, 연평해전은 (참전용사들이) 요즘에 이제 퇴직하다 보니까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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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 단독인터뷰
연평해전·천안함 생존장병 진료한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최고 권위자
“PTSD, 늦으면 10년 뒤에도 발병”
[안내] ‘심층기획, 아직 그날에 산다’는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재 기사입니다.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심약자와 노약자 및 임산부는 구독 전 주의 바랍니다.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발발 당시 참수리 325정(오른쪽)이 북한 함정을 향해 ‘밀어내기 작전’을 하는 모습. 사진은 경기 평택시 해군 서해수호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상현 기자]
제1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당시 참수리 고속정(PKM)에 탔던 수병들은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픈 데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뒤늦게 받은 진단명은 바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도대체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것이기에 20대 초반 청년들이 40대 중후반 가장이 된 지금까지도 힘들어하는 걸까. 매경AX는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를 만나 PTSD의 원인과 증상에 대해 문의했다.

백 교수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 등을 역임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우울증과 불면증, 트라우마 인지치료, 치매·자살 예방 등이 주 분야인 그는 제1·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들,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들을 직접 진료하기도 했다.

다음은 백 교수와의 일문일답.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매경AX와 인터뷰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Q.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A. 역사가 짧다. 45년밖에 안 된다. 미국에서 제일 건강하고 젊었던 사람들이 베트남전에 갔다 온 뒤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사회에 부적응하며 자살률이 급증하고, 이혼하고, 폭력·마약·술 등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 이면에는 (전쟁의) 아픔과 고통이 있었던 것. (PTSD는) 1980년에 미국 정신의학협회의 진단 편람의 의학적 기준을 인정받았고, 그게 사회적 인정·대처가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PTSD는 진단 기준 1번에 ‘사건’이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질환이다. ▲사망 ▲심각한 부상 ▲성폭력 중 하나에 노출되어 본인이 겪은 사람, 목격한 사람, 유가족과 친구까지. 의학적 기준은 굉장히 협소하다.

사건을 재경험하면서 지금도 겪고 있는 것처럼 심리적 고통을 느끼고, 사건을 연상하는 모든 걸 회피하고, 재경험하게 될 때 신체의 과각성. 심장이 뛰고,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등 3대 증상이 있다.

Q. 우리말 ‘외상 후’와 영어 ‘Post-Traumatic’ 표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외상이라고 하면 신체를 다치는 상해가 꼭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A. 트라우마는 라틴어로 신체적인 것, 심리적인 것을 같이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통사고 났을 때 수술하는 외상센터를 영어로 ‘트라우마 센터(Trauma Center)’로 부르는 것이고, PTSD 센터도 똑같이 트라우마 센터라고 한다.

트라우마라는 말은 두 개념을 항상 통칭하는데 한국에서는 ‘외(外)’자를 쓰다 보니, 신체 외부에 상처가 있다는 의미로 오해되기 쉽다. 실질적으로 부상이 없어도 (PTSD 발병이) 가능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매경AX와 인터뷰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Q.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A.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떠오르는 게 트라우마의 역설이다.

수술하는 것처럼 ‘이 기억만 싹 꺼내서 지워줄 수 없나’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치료는 그걸(트라우마 상황) 다시 쳐다보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출 치료’라고도 부른다. 외상 중심 인지행동치료 같은 심리적인 요법도 하고, 약물 치료도 한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을 통해 노출 치료를 돕기도 한다.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Q.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주로 어떤 건가.

A.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같이 주로 우울증에 쓰이는 약들이 PTSD에도 허가받아 쓰인다. 또 항불안제. 수면을 조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Q. PTSD가 1980년에 학계에서 인정받았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 등 더 과거 사례들은 어땠나.

A. 인정을 못 받았다. 이전에도 ‘전투 신경증’이나 ‘히스테리(Hysteria)’ 등으로 불리며 여러 보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개인의 취약성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베트남전 이후 PTSD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진단 기준이 정립되면서 ‘외상이 우리 뇌와 사람을 바꿀 수 있구나’ 하며 그 영향력에 대한 인정이 시작된 것.

Q. 일반적인 경우와 ‘지연성 PTSD’는 어떻게 다른가.

A. 증상은 같다. 대개 PTSD는 사고 직후에 많이 생기는데 2~5년, 굉장히 늦은 경우는 10년 뒤에 발병하기도 한다. 10년 이후에도 발병해 보고된 사례가 있다.

PTSD의 기준에는 직업적으로 외상 사건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들이 별도로 정의되어 있다. 군경과 소방 등 제복 근무자. 의료인과 기자도 포함된다. 훈련된 사람들이고 준비도 돼 있어 잘 견디지만, (이들은) 외상을 한 번 겪는 게 아니라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축적 효과가 있어 늦게 발병하기도 한다. 늦은 발병이 적지 않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 정신건강의학과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Q. 조기 치료가 불발되는 이유는 뭔가.

A. 소방에서 조사가 있었는데, 결과를 보면 첫 번째가 ‘몰라서’다. 트라우마를 쳐다보기 싫으니까,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다른 원인으로 해석하고 트라우마와 연결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미 (일상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이건 별로 심각한 게 아니다. 우리 직업이 원래 그렇지’ 하며 모르는 경우. 또는 ‘동료들 다 고생하는데 나만 아프다고 해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제복 근무자들이 위계가 센 조직 근무를 하니, 이걸 드러내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도 많이 한다. 또 부끄러워한다. ‘강한 군인이 못 되는구나, 소방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등. 드러내지 못해서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Q. 찾아오는 환자 중 군이나 소방에서 내부적으로 치료받기 어려워 일부러 민간으로 온 사례도 있나.

A. 많다. 심지어는 보험이 되는데도 일부러 비급여로 해달라는 분도 있다. 전보다 나아졌지만, ‘인사상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며 시선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아직 큰 장벽이다.

Q. 환자 중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등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된 경우도 있었다던데.

A. 천안함 참전용사는 여럿 만났다. 천안함이나 연평해전은 전투 참전과 관련한 PTSD다.

천안함도 인정받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다행히 천안함은 초반에 기록들이 좀 있었고, 이후에도 꾸준한 노력과 인식 개선이 있어 지금은 많이 인정받으셨다. 급수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이 좀 있지만 그나마 개선이 있었는데, 연평해전은 (참전용사들이) 요즘에 이제 퇴직하다 보니까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

Q. 환자들이 제일 많이 언급하는 증상이나 이야기가 있나.

A. 제일 흔한 건 기념일 반응이다. 1주기, 10주기, 20주기 등 매년 그 시기가 되면, 또 그때 바다의 온도·바람·기운이 느껴지면 당시가 생생하게 떠오르고, 잃은 동료들 생각과 고통에 힘들어한다.

많은 사람이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이, 주변에서 매일 물어보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 ‘너 얘기해봐라, 그때 어땠느냐’ 물어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질문받았을 때 굉장한 고통을 재경험할 수 있다. 이걸 ‘트라우마의 감수성’이라고 한다.

옆에 있는 분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년, 20년 지났는데 괜찮겠지’ 한다. 그리고 관심이라 생각하고 물어본다. 괜찮을 때도 있고, 필요할 수도 있고, 공감해주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아무 때나 물어보면 환자는 괴로워한다. 반복되면 또 직장을 그만두는 계기가 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매경AX와 인터뷰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Q.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 한 분이 ‘가족한테 이유 없이 화내는 일이 너무 많았다’고 하더라.

A. 그걸 제일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자식이 못 됐다’는 것. 밖에서는 일해야 하니까 참다가 집에 와서 폭발하는 것이다. 그 피해를 대개 가족이 본다.

영화 ‘람보’ 등을 보면 멀쩡하고 친절했던 사람이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폭발하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하잖나. 이게 증상이다. 이걸 증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폭발하고 난 뒤 극도의 죄책감이 몰려온다. ‘나는 나쁜 아빠, 나쁜 남편’. 증상으로 보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Q. 일상에서 PTSD 환자를 만나면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A. 과거에 경험한 일이라도 ‘이 사람은 지금도 아플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어야 한다.

(트라우마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는 당사자가 동의해야 한다. 당사자가 동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할 때 얘기를 들어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동의 없이 물어보거나, 지난 일이라며 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주의해야 한다.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매경AX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 가능성을 고려, 참전용사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개인의료정보나 유출 시 국익을 저해할 소지가 있는 군사상 비밀도 비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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