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줄리언 반스의 유쾌한 떠남
절필 선언 인터뷰는 '농담의 향연'
"잘 살았다" 품위 있는 이별 고해

올해 나올 해외문학 신간 가운데 기대작으로 손꼽혀온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80)의 15번째 장편소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은 'Departure(s)'. '떠남' '이별'에 복수형(s)을 괄호에 넣어 붙였다. 어제(22일) 한국 포함 18개국에 동시 출간됐는데 한국어판은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제목을 달았다.
반스는 지난주 자국 매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해야 할 말을 다할 때까지만 써야 하는데 난 그 지점에 도달했다"며, 출판계를 통해 알려진 절필 소식을 공식화했다. 소신 발언이기도 하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선배 작가라면서도 "E. M. 포스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만뒀고 그 점은 존경스럽다"고 했다. 짓궂게 토를 달긴 했다. "어쩌면 훨씬 일찍 그만뒀어야 하지만."
반스의 은퇴 선언에 탄식하는 이들이 국내에도 많을 듯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이언 매큐언, 살만 루슈디, 마틴 에이미스, 그레이엄 스위프트 등과 더불어 현대 영국문학 황금세대 주역으로, 한국에선 일반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을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떼어 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2011년 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은 뒤 전율은 참 오래갔다.
안타까운 소식은 더 있다. 저 인터뷰에서 반스는 6년 전 희소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매일 항암제를 먹고 3개월마다 검사받는 투병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반려이자 에이전트, 삶과 일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2008년 뇌종양으로 잃은 그였다.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찰나, 이런 멘트가 폭죽처럼 터진다. "의사에게 '선생님이 제 유전자를 조작하든 뭐든 해서 치료법을 찾을 때까지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꿈 깨라. 그렇게 돈이 되는 병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기자가 "조용하고 편안한 말투에 분명 작별을 고하는 분위기"였다는 이 인터뷰, 곳곳에서 웃음이 빵 터져 그야말로 '웃프다'. 옥스퍼드대를 나와 이름난 비평가로 활약하다 1980년 서른넷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어머니가 주변에 했다는 말. "내 두 아들은 작가야. 한 명(철학자 장남)은 내가 읽을 순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쓰고, 다른 한 명(반스)은 이해할 순 있는데 읽을 수 없는 책을 써."
재혼 사실도 처음 밝혔다. 상대는 오래 알고 지내온 18세 연하 출판인. 지난해 8월 조용히 결혼식을 치른 뒤 가까운 이들에게는 11월 파티에 초대해 알렸다고. 100명쯤 되는 손님들의 허를 찌른 반스의 깜짝 발표는 부커상 축하연 연설을 회상하는 걸로 운을 뗀다. 당시 연설에 감동을 받은 한 출판인에게 "내가 결혼하게 되면 연설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게 바로 그겁니다." 일동 침묵, 이어 열렬한 기립박수.
생애 마지막 작품을 번역본까지 준비해 한번에 출간하고, 기탄없이 근황을 공개하며 독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유쾌한 인터뷰에 이어 동료이자 벗인 이언 매큐언과 대담(현지시간 20일)을 갖는 걸로 반스는 45년 문학 인생을 마무리했다. 온몸으로 ‘떠남'의 본보기를 보였달까. 인터뷰 말미에 잘 살았다, 거창한 유언은 없을 거라며 덧붙인 말이 백미다. "그림소프 경(런던 빅벤 설계자)이 아내에게 다급하게 남긴 유언을 좋아합니다. '마멀레이드가 다 떨어졌네.' 정말 훌륭하지 않나요."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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