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제국의 황혼과 여왕의 유산

(이어서) 빅토리아 여왕은 윌리엄 4세 등 방탕하고 무능했던 전 군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상대적으로 검소하고 성실했고, 사촌인 남편 앨버트 공과의 지극한 애정으로 당시 도덕관, 즉 부르주아적 가치에도 충실했던, 존경받은 군주였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였지만 정국의 중재자로서 수시로 국내 정치에도 개입했다. 아일랜드 대기근 때는 왕실 빵 배급량을 줄이며 연민과 연대의 뜻을 전했고, 형식적 자선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개인 자산에서 2,000파운드(현재 기준 약 4억~5억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1857년 인도 동인도회사 용병들이 일으킨 세포이 항쟁 때는 ‘피의 복수’를 외치던 여론을 무마하며 관용을 호소했고, 진압 직후 인도 종교의 자유와 법적 평등을 약속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항쟁 이후 ‘인도 여황제’가 된 그는 인도 문화를 존중하는 취지로 힌두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를 두고, 운 좋게 멋진 파도를 만나 무난히 편승한 행운아 혹은 상징으로만 화려한 방관자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있고, 과히 틀린 평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국다움’의 실체와 가치를 삶을 통해 실천하며 기우뚱하던 왕실의 위엄과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고 제국 통합의 상징적 지위를 지탱한 군주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퇴장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가 끝이 났고, 대영제국도 황혼을 맞이했다. 영국은 후발국 미국과 독일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밀리기 시작했고, 양차 대전으로 경제적 파산 상태를 맞이했다. 전후 민족주의의 부상과 함께 제국도 해체됐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패망은 옛 로마나 오스만제국의 비참한 파멸과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영연방(commonwealth)'이라는 지금의 느슨한 연합체가 그 방증일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황혼과 일몰이 덜 흉할 수 있었던 데도 여왕이 얻어둔 민심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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