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의 인문기행 ] 전남 화순 - ②
능주와 동복과 백아산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에서 자고 난 이튿날은 환산정(環山亭)부터 찾아본다. 오성산성 가는 길목에 있어 들렀는데 경치가 가히 환상적이다. 장불재 낙타봉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흐르는 동천이 화순천을 만나 서진(西進)하기 전에 꾸며놓은 서성제(瑞城堤) 가운데 섬처럼 떠있는 동산 수풀 속의 정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광취명당(廣聚明堂)의 노송 한 그루가 신선도에서 튀어나온 듯한데 이를 읊은 시는 또 낙하절창(落下絶唱) 남중독보(南中獨步)다.
동산 가운데 소나무 너를 사랑하노매(愛爾園中松)
밑바탕 뿌리는 늙은 용 같고(根盤若老龍)
높은 절개는 눈서리를 능가하니(高節凌霜雪)
부끄러움은 복숭아 자두의 것이어라(恥爲挑李容)

이서커뮤니티센터에서 열 시에 출발하는 적벽 셔틀버스 시간 때문에 오성산성 오르기를 포기하고 둔병재 넘어 이서면으로 향한다. 다음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들뜬 기분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42년만에 다시 가보게 되는 풍경이다.
구불구불 덜컹덜컹 한참을 가던 버스가 스르르 멈추더니 다들 내려 오른쪽 전망대에 올라보라고 한다. 무심코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갔더니 와! 보산적벽 위의 망향정, 장항적벽 위의 옹성산(甕城山 573.5m)… 시인묵객들이 다투어 상찬(賞讚)하던 적벽동천(赤壁洞天)이 물 속에 잠겨있다. 그 가운데 새로 지은 망향정은 또 산수절경(山水絶景)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그 옛날 군대 휴가 나와 처음 만났던 망미정(望美亭)은 이제 보니 굉장히 잘 지은 집이다. 정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으로 가운데 방을 들였는데 전퇴(前退)만이 아니라 후퇴도 있어 전혀 옹삭하지 않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의 의병장이었던 정지준이 세웠으며 정자 이름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아득한 나의 마음이여(渺渺兮余懷) 하늘 저 끝의 임을 그리도다(望美人兮天一方)"의 망미에서 따왔다고 한다.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에 대한 충정을 새기며.
망향정은, 망미정이 있는데 이게 왜 또 필요한가가 어제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일단, 참 잘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블로거 김이박의 표현을 빌면 "근래 지어진 정자 중 이보다 나은 게 있을까 싶을 만큼 튼튼한 결구(結構)에 공교로운 의장(儀裝)이 돋보인다." 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간결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익공(翼工)집인바 연등천장 중도리에 공포를 받친, 드러내지 않은 꾸밈새가 눈길을 끈다.

이서커뮤니티센터로 돌아나와 점심을 먹은 뒤 유명한 수제빵집 빵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사이 동국지도와 만국전도가 있다는 기와집으로 들어가본다.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와 함께 호남의 3대 실학자로 꼽힌다는 규남 하백원 기념관이다. 그리고 그가 1810년에 발명했다는 양수기 자승차(自升車), 1811년작 〈동국지도 (東國地圖)〉, 1821년에 그린 〈만국전도(萬國全圖)〉를 살펴본다. 그는 성리설에 치우친 세태를 비판하며 농공상고(農工商賈)도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만국전도〉는 지금 우리 중고등학교 교실에 걸려있는 세계지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새다. 위아래가 평평하고 가운데 양쪽이 배가 부른 에케르트도법(圖法)으로 되어있는데 남북아메리카는 물론 베링해협, 남극대륙까지 제자리에 잘 그려져 있다. 경위도선(經緯度線)도 표기되어 있으며 제목은 〈태서회사(泰西會士) 리마두(利瑪竇) 만국전도〉, 리마두라고 했던 마테오리치의 지도를 참조하여 그렸다 밝히고 있다. 실제로는 이탈리아 선교사 알레니의 〈직방 외기(職方外紀)〉 지도가 모본(母本)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양승호 원장이 소개해준 백아산관광목장의 김인식 선생을 찾아가니 한 시가 넘었다. 전쟁 났을 때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니 39년 생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얼굴이 팽팽하고 정정하다. 이야기 중간중간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를 정도로 기억력도 좋다. 대화 중에 전남도당사령부는 산 너머 노치마을에 있었다는 말이 나오자 번지수를 잘못 찾았구나 싶어 서둘러 일어선다. 810m나 되는 산 저쪽의 빨치산 본부로 가야하니 마음이 급해서다.
홍하일씨에 게 차를 몰고 노치리 백아산자연휴양림에 가있으라 한 뒤 이가경 씨와 산을 오른다. 가파르긴 해도 백아산 명물 하늘다리가 손짓하고 있으니 어렵지 않다. 40분만에 능선 위로 올라왔다.
[박기성의 인문기행 l 전남 화순 - ③ 에서 이어집니다. ]
글.사진 박기성 전문기자 ㅣ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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