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째 ‘모래시계 멍에’ 여운환 재심, 大法에 달렸다

안세훈 기자 2026. 1. 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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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법, 여씨 재심청구 기각 결정
"증거 신규성·명백성 부족" 이유
여씨 측 "불복"…대법에 즉시항고
"공소사실은 성립 불가능한 허구"
'모래시계' 실제 모델 여운환(오른쪽)씨와 홍준표 당시 검사. TV조선 화면 캡처

1990년대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여운환(72)씨가 34년 만에 제기한 두 번째 재심 청구가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씨는 판결문에 적시된 범행 장소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물증을 제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2일 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이의영)는 최근 여씨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여씨 측이 제출한 '국제관광호텔 폐쇄 등기부 증명서' 등이 형사소송법상 '새로 발견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재심 사유인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란 확정판결 당시 발견하지 못했거나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를 의미한다"며 "피고인이 소송 절차 중에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데에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즉, 재판 당시에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피고인의 귀책사유라는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해당 증거들이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새로운 증거를 기존 증거들과 함께 평가하더라도, 원심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장소의 부존재라는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더라도, 여 씨가 조직의 간부로서 활동했다는 유죄의 본질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여 씨 측은 기각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시항고했다. 여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정희 변호사는 "대법원은 재심 사유를 판단하면서 증거의 신규성을 넓게 보고 있다"며 "당시 국제호텔이 없었고 당연히 오락실도 없는 상황이 분명해졌는데도 법원이 너무 가혹하게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부담시킨 것 같다"고 반발했다.
여운환씨

앞서 대법원은 1992년 여씨에 대해 국제PJ파의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 활동했다는 점을 받아들여 징역 4년형을 확정했다. 다만 당시 광주지검 홍준표 검사가 여씨를 국제PJ파 우두머리로 기소한 점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홍 검사는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여씨는 '호남 최대 조폭'이라는 낙인을 얻은 채 자신의 삶이 조작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2017년 기각 결정 이후 여 씨가 두 번째로 청구한 재심의 쟁점은 '범행 장소의 실존 여부'였다. 여씨는 1992년 기소 당시 1986년 말 광주 서구(현 남구) 주월동 소재 '국제호텔 오락실'의 영업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폭력 조직인 국제PJ파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여씨 측은 이번 재심 청구에서 "범행 시점으로 특정된 1986년 당시, 해당 호텔과 오락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이 제출한 '국제관광호텔 폐쇄 등기부 증명서' 등을 보면 해당 호텔은 1988년 12월 영업 허가를 받았고 1989년 1월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씨 측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업장의 영업을 보호하고 돈을 댔다는 공소 사실은 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허구"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광주고검은 의견서를 통해 "재판 당시 입수 가능했던 자료를 30년이 지나 제출하는 것은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이라며 맞섰다.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실체적 진실'만큼이나 확정 판결의 권위를 지키는 '법적 안정성'을 중시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여씨가 제시한 '물리적 부존재 증명'이 기존의 유죄 판결을 파기할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을 갖는지,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단순한 사실관계의 오류에 불과한지 최종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