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당신은 사대주의자입니까?

'이 나라에만 은나라 해와 달이 떠 있고 / 중원 땅에는 한나라 의관 지킨 사람 하나 없다네(下國獨懸殷日月 中原誰保漢衣冠)'('다산시문집' 2권, '임금이 대보단 제사 때 지은 시에 차운하다·奉和聖製親享大報壇韻') 바로 이날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시를 썼는데, 정약용의 시는 이 어제 시에 대한 답시다. 정조가 쓴 시는 이렇다.
'산하의 북쪽 끝까지 제후국 모두 망했어도 / 우리 동방만 제물과 제주를 올리는구나(山河極北淪諸夏 牲醴吾東享肆陳)' 마지막 연은 이렇다. '만절필동(萬折必東) 그 정성 힘써 좇아나가리(萬折餘誠志事遵)'('홍재전서 7권', '황단 제삿날 숙종·영조 두 임금 시에 차운하다·皇壇親享日敬次兩朝御製韻')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로 추앙받은 정약용과 성군이라는 정조가 대보단 제사 때 지은 헌시입니다. 당시 조선은 망한 명을 대신해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모화사상이 극치를 이루고 있을 때입니다. '대보단'은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도움을 준 명나라 황제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제단입니다. 명나라가 망하고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청나라 몰래 창덕궁 뒤뜰에 대보단을 지어 1884년(갑신정변)까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만절필동'은 황하가 1만 번 휘어도 동쪽으로 흐르듯,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원해준 명나라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정조의 다짐이며, 정약용의 시는 '대륙은 오랑캐 땅이 됐어도 조선만은 옛 왕조를 잊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맹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천리(天理)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천리를 두려워함은 나라를 보전하는 길'임을 강조하면서 강대국 또한 '천리를 존중하여 천하 국가들을 보호해 줄 것'을 강하게 주문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대의 예(禮)가 한(漢)나라 이후에는 중국이 변방국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강요됐고 중국과 주변국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으로 정착됐습니다.
조선 시대에 와서 유난히도 고집스럽고 열성적인 자세로 사대주의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맹자가 언급한 사대의 성격을 과대해석하고 깊은 사려 없이 맹신한 결과도 있지만, 역성혁명의 명분을 얻기 위해 명의 추인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고 명에 나라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화령'과 '조선' 두 가지를 올렸습니다. 명에서 오랫동안 뜸을 들이다 '조선'으로 낙점합니다. 이후 단군조선은 고조선이라 불러 이씨 조선과 구분합니다. 국가의 태생부터 이렇다 보니 조선의 지배층에서는 명을 개국지은(開國之恩)이라 섬겼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再造之恩으로 떠받들게 됩니다.
국가의 생존과 정체성 유지는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유자(儒者)들이 강조하는 명분과 신의는 허망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사대교린(事大交隣)은 하책(下策) 중의 下策입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이 하책 중의 하책인 사대(事大)를 붙들고 있다 임진왜란을 당하고 병자호란을 당하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었습니다.
사대주의가 자기비하를 낳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전진과 발전에 큰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특히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학교현장에서 우리 역사를 축소 평가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애써 들추어 매도하며,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대란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비열한 자기변명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국력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힘을 길러가는 것이지 사대로 이루어지는 나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어느 나라에 줄을 서야 할지 어느 나라에 事大를 해야 할지 고민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기며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는 맹자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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