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남방한계선을 말하는 사회, 그것은 한국의 비극이다-세계 최고의 에너지 도시를 준비하는 호남의 선택

이순형 2026. 1.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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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의를 둘러싸고 이른바 '남방한계선'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인력 확보를 이유로 수도권 이남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입지 논쟁을 넘어, 대한민국이 오랜 시간 극복하려 노력해 온 지역 분열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위험한 담론이다. 이미 지역감정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회에서, 이제는 산업 인력마저 지역을 기준으로 선을 긋는다면 그것은 경제 논리를 가장한 또 하나의 차별이며,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논리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반도체, 데이터센터, AI, 에너지 신산업이 요구하는 인력은 단일한 '수도권 엘리트 인재'가 아니다. 공정·설비·전력·안전·운영·데이터·에너지 시스템을 이해하는 폭넓은 기술 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인력의 상당수는 이미 호남권 대학과 지역 인재 양성 체계에서 충분히 공급 가능하다. "호남에는 인력이 없다"는 주장은 현실을 설명하는 진단이 아니라, 기존 수도권 중심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문제의 본질은 인력이 아니라 여건이다. 산업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와 인프라, 그리고 삶의 조건을 따라 움직인다. 이 점에서 호남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략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는 풍부하다. 태양광과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수 GW급 재생에너지 개발이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장기간 확장이 가능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단순한 잠재력이 아니라, 실제 공급 능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정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축이다. 2030년대 중반 이후를 바라보면, 호남은 재생에너지에 더해 차세대 에너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조건까지 갖추고 있다. 2035년 이후 500MW급 핵융합 발전 실증·상용화 시설을 호남에서 시작하는 구상은 결코 공상적이지 않다. 넓은 토지, 낮은 인구 밀도, 안정적인 전력 계통 확장성, 연구·실증이 가능한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바닷물을 활용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은 핵융합 발전과 같은 미래 에너지 기술에 최적의 환경이다. 재생에너지와 핵융합이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최초이다.

이 에너지는 다시 미래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AI 연산, 에너지 집약형 신산업은 결국 어디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정적이며, 장기적으로 공급 가능한 전기를 쓸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호남이 재생에너지와 핵융합을 결합한 에너지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한다면, 이 지역은 단순한 산업 유치 대상지를 넘어 세계 최고의 에너지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광주·전남 통합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앞으로의 광주·전남 통합 시장은 행정 통합의 관리자가 아니라, 40년, 100년을 내다보는 에너지·산업 전략가여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전력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인 도시, 미래 산업이 안착할 수 있는 도시, 동시에 젊은 세대가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살기 좋은 도시', '일하기 좋은 도시', '일터가 풍부한 도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목표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그동안 소외됐으니 밀어줘야 한다"는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의 여건을 만들고, 그 다음에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정부의 도움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기업 역시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주체가 된다.

남방한계선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미래를 닫게 된다. 대신 준비를 말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핵융합,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관련 일반산업, 인재, 일과 삶이 연결된 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 호남이 선택해야 할 길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