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종속된 학교…대체제가 없다[교실 밖에서]
윤석진 기자 2026. 1. 22. 15:23

아이와 함께 실내 캠핑장을 찾았다. 몇천 원만 내면 하루 종일 에어바운스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돈만 받고 운영이 될까 궁금했지만, 곧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 안에서 파는 걸 먹어야 했는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가 더 신나게 뛰놀수록 이것저것 뭘 사 먹어야 했다. 그날 10만 원 가까이 썼다.
실내 캠핑장의 영업 방식은 플랫폼 비즈니스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공짜라서 가입했다가 어느새 꼬박꼬박 돈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릴 때쯤엔 늦었다. 그 편리함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용료 징수하거나 증액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이른바 '락인' 상태가 된다.
플랫폼에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서 이탈은 더 어려워졌다. AI가 개인의 활동 데이터 가지고, 맞춤형 대응을 해주니, 다른 걸로 갈아타는 데 망설여진다. 개인적으로 2년 째 챗GPT를 사용 중이다. 요즘 구글 제미나이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 번 써볼까 싶다가도 얘는 또 언제 길들이나 하는 생각에 선뜻 챗GPT를 등지지 못한다. 길들여진 것은 챗GPT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어느 개인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학교에서 많이 쓰는 디지털 도구는 단연 오픈 AI의 챗GPT다. 러닝스파크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초중고에서 가장 많이 구매해 사용한 제품이 챗GPT였다. 이대로 가면 한국 공교육 시장이 미국 빅테크 기업 하나에 종속될지도 모른다.
좋은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쓰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검증 여부다. 공교육 영역에 생성형 AI란 '미지의 도구'를 별다른 검증 없이 도입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2023년 초만 해도 챗GPT는 환각(할루시네이션) 문제로,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GPT를 쓰는 얼리어답터 들은 그걸 어떻게 믿고 쓰느냐, 고 눈총 받았다. 지금은 정반대다. 그걸 안 쓴다고 하면 눈총을 받는다. 시대에 뒤처진 사람 또는 기업이라고 섣부른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생성형 AI에 대한 검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교육 영역에선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교육과 직업 훈련' 고위험(High risk)군으로 분류하고, 제품 출시 전과 수명 주기 전반에 걸친 평가를 의무화했다.
지난해 9월 비영리기관 커먼센스미디어는 구글 제미나이를 아동과 청소년에게 '고위험' 제품으로 분류했다. 제미나이의 13세 미만과 청소년 버전이 성인용과 거의 동일하며 몇 가지 안전 기능만 추가된 상태였다, 는 평가도 곁들였다.
학계 역시 무분별한 이용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탠포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는 보고서를 통해 AI 기업들이 사용자 대화를 학습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아마존(Nova), 앤스로픽(Claude), 구글(Gemini), 메타(Meta AI), 마이크로소프트(Copilot), 오픈AI(ChatGPT)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비교 분석한 결과, 6개 기업 모두 기본적으로 사용자 채팅 데이터를 모델 학습에 활용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이를 무기한 보관하고 있었다.
국내 산업 발전 측면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어딘가에 머문다는 것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물 자국이 남듯, 우리의 주의력은 사이버 공간에 데이터를 남긴다. 마우스 이동 경로, 클릭 기록, 오래 머문 화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무의미한 정보 덩어리가 아니라 가공하기에 따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석이다. 이런 자원을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넘기는 건, 남의 집 애 키우느라 우리 애 굶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빅테크 기업들은 우린 착하니 안심하고 쓰라, 고 말한다. 그러면서 교육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한다. 오픈AI는 미국 초·중·고 교사를 위한 무료 챗GPT 버전을 출시했고, 구글은 기존 미국 서비스에 제미나이를 접목해 무료로 제공 중이다. 동시에 유저 데이터를 플랫폼 고도화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그럴까. 구글의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란 슬로건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실제로 악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악해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 정도뿐이다.
또 다른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빅테크 기업이 악해질 경우에 대비한 대체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왕 길들이고,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선택권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로 한정해 보자면, 챗GPT를 대신할 만한 서비스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올해를 전후해 생성형 AI 기능을 접목한 교수 학습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자체 LLM이 아닌 글로벌 빅테크 대규모언어모델(LLM)에 의존하고 있다. 외장은 메이드인 코리아인데, 엔진은 USA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제안하며, 한국형 LLM, 이른바 '소버린 AI'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내년에나 나올 전망이다. 이를 활용해 교육에 특화된 서비스를 만들려면 또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챗GPT는 가만히 있을까. 제미나이는 손 놓고 있을까. AI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검증 체계와 어느 한 서비스가 시장을 독식할 것에 대비한 대체제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 동시에 주어졌다.
경각심을 갖고 AI 서비스를 써야 한다. 당신이 그 서비스를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상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편리함에 불편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캠핑장은 들어갈 땐 거의 공짜지만, 머무는 동안 점점 더 많은 걸 내줘야 하고 급기야는 아예 갇혀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윤석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