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얼씨구학당] 찻잎 한장 말하지 않고도 온 누리에 차숲을 이루었네

이용규 2026. 1. 2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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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얼씨구학당] 진도용촌 우당 전상서

우당(愚堂) 어르신, 이름도 빛도 없이 오로지 당호 하나와 초암서(草菴序) 한 편 남기신 어르신께 올립니다. 어찌 서신을 올릴까 주저하기를 여러 날, 앞서 쓴 글을 지우고 또 지우고 고쳐 묶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차 문화를 묻는 저의 치기가 무례를 무릅쓰는 용기를 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르신께서 남기신 '대둔사초암서(大芚寺草菴序)'를 두고 상고하건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내는 법을 읽습니다. 아마도 초의선사(艸衣禪師)를 어르신만큼 제대로 읽은 이가 고금을 통틀어 또 계실지요. 초암서의 내드름으로부터 아정한 심사를 대하는 마음이 곡진합니다.

"대개 들으니 철인은 사물에 해박하여 일을 서적 위에 기록하고, 빼어난 구역은 그 주인을 얻어 이름이 강호 사이에 드러난다고 했다. 사마천은 용문 땅을 노닐고 나서 시야가 툭 트였고, 소동파는 고무에 글을 쓰고서 가슴에 품은 뜻이 시원스러워졌다. 광려(匡廬)의 한가한 구름과 채석강의 맑은 바람 외에도 빼어난 경치야 인간 세상에 어찌 다 헤일 수 있겠는가. 다만 능히 귀한 줄을 아는 이가 드문 것이다."

어르신의 초암서 내드름을 보니 초의가 일지암을 중건하고 지은 시가 선연합니다.

"연하(煙霞)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에, 중 살림할 만한 몇 칸 집을 지었네. 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 간짓대 이어 백운천(白雲泉)을 얻었으며, 다시 좋은 향과 약을 캐나니, 때로 원기(圓機)로써 묘련(妙蓮)을 펴며, 눈 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 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소생은 늘 이 시구를 왼쪽 어깨 위에 걸어두고 묵상합니다. 은자의 거처, 속세와 격리된 시간을 사모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 살림할 만한 거처라니, 극단적 수행도 아니고 세속적 주거도 아닌 이 풍경이 자아내는 결을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초의는 여기서 단 한 잔의 차 얘기도 꺼내지 않고 차를 말합니다. 못을 파서 달을 담고 간짓대를 이어 샘물을 얻을 뿐입니다. 달은 밤의 시간이고 샘은 차를 끓이는 물이며 향과 약은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주체의 일부이겠지요. 자연의 리듬을 삶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장치이자 노래 말입니다. 깨달음을 말하지 않고 깨달음을 드러내는 노래, 사정이 이러하니 연하가 난몰하는 옛 인연의 터가 어찌 옛 시간에만 잠길 것이며 기억과 삶의 흔적이 시나브로 사라지겠습니까.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 초의를 읽어내시는 어르신의 통찰이 놀랍습니다.

"이에 이곳에 있기를 생각하며 많은 나무들이 우거진 것과 대숲이 무성한 것을 본다. 과원(果園)은 뒤에 심고, 채마밭은 앞에 만들었다. 맑은 물 한줄기가 바위 사이로 솟아 채마밭 앞으로 남실남실 흘러나온다. 채마밭 곁에 연못 하나를 파서 물길을 이끌어 아래로 흐르게 하니, 차고도 맑은 품이 금곡(金谷)만 못지않다. 또 못 위에는 나무 시렁을 설치해서 몇 그루 포도 넝쿨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양옆의 흙 계단에는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심어, 봄빛을 아껴 희롱하니, 마치 속세 사람을 비웃는 듯하다."

소생은 이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동갑이라 이르신 바도 있지만, 초의와 우당 어르신의 결이 딱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초의가 시로 일지암의 뜻을 열었고 우당 어르신은 산문으로 그 뜻을 펼쳤습니다.

일지암을 한 노승의 수행처로 읽는 시선에서 벗어나 생활 문법으로 읽고자 하는 나의 시선과 겹치는 대목입니다. 차가 어찌 불교의 부산물로만 회자될 것이며 사대부들의 취미로만 환원될 것입니까. 절제와 미감에 더하여 물과 노동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세우고 격을 숭상하며 의례를 높입니다. 찻잎에 수렴하는 풍경이랄까요.

하지만 초의와 우당의 우정을 친견해보니 찻잎이 아니라 차숲을 이룬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의의 시와 그림이 숲의 입구를 열었고 우당 어르신의 글은 그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차를 마시는 법이 아니라 차와 함께 사는 법을 회복할 수는 없는가. 드러내어 말하지 않고서도 높이 드러내는 법을 밝힐 수는 없는가. 어르신이 남기신 글귀를 통해 생활의 문법을 상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진도 용촌(龍村)에서 사셨다길래 진도 전 지역 용자가 들어가는 마을을 모두 훑어봤습니다. 수년 전에 이덕리가 살았다는 진도읍 이곳저곳을 탐색한 일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당(愚堂)이라는 흔적 외에 본명도 관직도 남기지 않으셨더군요. 일지암에 남은 초의선사의 차 관련 책 몇 권과 어르신의 글월만 현현할 뿐이니 장차 족보나 문집 등을 추적해볼 요량입니다.

어르신의 글은 초의의 아정한 자태와 생활 풍경을 깊이 묘사합니다.

책상 위의 금불, 조석으로 이어지는 예불의 시간, 암자 곁의 과원과 채마밭, 샘에서 흘러 못을 이루는 물길, 못 위에 놓은 포도 시렁의 그늘, 좌우 화계에 옮겨 심은 화초들을 쭈욱 나열할 뿐입니다. 초의의 수행을 신비화하지 않고 노동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저 풍경을 묘사할 뿐입니다. 특별히 제가 주목한 것은 어르신이 차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문장 사이사이 차 이야기가 빼곡합니다. 물길과 그늘에 접힌 그윽한 향이 전해옵니다. 초의가 일지암을 짓고 열어둔 '중 살림'의 세계를 어르신은 밭과 못과 그늘로 구체화해주셨습니다.

소생은 어르신의 문학세계가 진도에 유배와서 19년 반을 사셨던 이덕리의 정신을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이덕리가 초의보다 훨씬 이전에 차의 세계를 저술하였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음다의 풍류나 선차의 수행보다 유통되는 물자로, 바다를 오가는 상품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저술한 내력들 말입니다.

소생은 이덕리의 진도 유배와 그가 남긴 '기다', '상두지'가 남긴 족적을 늘 되새깁니다. 조선의 차문화가 불교의 선과 취향의 문화에서 문명과 국가를 설계하는 사유로 넘어간 결정적 분기점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르신께서 어렸을 적에 이덕리가 진도에 계셨으므로 용촌마을 어느 서당에서 이덕리에게 배우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이 편지를 올리는 까닭 중 하나가 여기 있기도 합니다. 차를 잎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읽었던 이덕리에 이어 어르신께서는 생활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장차 다산에서 초의로, 다시 소치로 이어지는 계보 끄트머리에 의재 허백련의 자리합니다. 생전에 겪으신 분이 아니라서 낯선 이름이겠습니다만 의재 허백련은 다산처럼 제도를 설계하지도 않았고 이덕리처럼 국가와 국방을 사유하지도 않았으며 초의처럼 수행의 언어로 체계화하지도 않았지만 차를 삶의 리듬 속에 완전하게 내려놓은 인물입니다. 차차 기회가 되면 무등산의 의재 얘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할 말은 많으오나 숨이 가빠 이만 줄입니다. 오늘의 우리 삶 속에 어르신의 세계가 깊이 스며들기를 다만 바랄 따름입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하지만 사표(師表)의 족적을 그윽하게 남기신 내 고향 사람 우당 어르신께 다시 한번 고개 숙입니다.

덧붙이는 말

나는 무안 왕산에 초의 생가를 복원한 용운 스님의 몇 글에서 우당을 접하였는데, 단편적인 이름만 거론될 뿐이지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정민이 쓴 '한국의 다서-한국차문화사 자료집성'(김영사, 2020)에 번역과 해설이 실려있어 인용하고 참고하였다. 귀한 자료를 번역해주신 정민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대둔사초암서(大芚寺草菴序)'는 옥주(沃州) 즉 진도의 용촌(龍村)에 살던 속우당(俗愚堂)이라는 분이 쓴 글이다.

정민 교수에 의하면 초의와 동갑이던 그가 초의 54세 되던 1839년 일지암을 찾아 당시의 일지암 풍광과 초의에 대해 드물게 묘사한 글이어서 자료 가치가 높다고 한다. 내게는 진도라는 공간을 차문화의 산실로 구성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 글이다. 관련 자료를 나름대로 집성해 가고 있으므로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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