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배우들 제치고 세계 최초 영화제 주연상 차지한 '멍배우' 정체는

북미에서 개최된 유력 영화 시상식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개가 등장했다. 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등 쟁쟁한 배우들과의 경쟁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 개는 영화제 연기상을 차지한 최초의 동물로 기록됐다.
지난 9일 '할리우드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Hollywood Creative Alliance · HCA)가 주최한 영화 시상식 '제9회 아스트라 필름 어워즈'(The 9th Annual Astra Film Awards)에서 공포·스릴러 부문 최우수연기상은 공포영화 '굿 보이'(Good boy)의 주연으로 활약한 개 '인디'(Indie)에게 돌아갔다. 인디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 벤 레온버그 감독의 반려견이다.

아스트라 필름 어워즈는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다양성의 기치를 내걸고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영화를 조명한다고 알려진 시상식이다. 이번 시상식에는 지난해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코미디·뮤지컬 부문 주연상, 작품상, 국제장편상, 각색상 등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국내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디가 수상한 공포·스릴러 부문 최우수연기상은 훌륭한 이력을 보유한 배우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영화 '블랙폰2'에 출연한 유명 배우 에단 호크를 비롯해 샐리 호킨스(브링 허 백), 앨리슨 브리(투게더) 등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아스트라 필름 어워즈 조직위원회 매튜 와이스 부위원장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인디와 '굿 보이'가 공포영화 장르에 가져온 신선한 관점이 수상하게 된 결정적 요인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인디의 수상에 이견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와이스 부위원장은 HCA 회원 상당수가 인디에게 투표한 사실 자체는 놀랍다고 전했다. 아스트라 시상식에서 동물이 주연상을 수상한 사례는 인디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스트라 시상식만 최초 사례는 아니다. 그동안 칸 영화제의 '팜 도그 어워즈'(Palm Dog Awards)와 같이 영화에 출연한 동물에게 건네는 특별상 성격의 시상식은 있었지만, 영화제의 주요 상 중 하나인 장르별 최우수연기상을 사람이 아닌 개에게 안기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 SXSW)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굿 보이'는 공개된 직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영화가 인디의 시선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영화의 차별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인디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레온버그 감독은 촬영 장비를 맞춤 제작했으며, 촬영은 감독이 직접 허리를 굽히거나 엎드려 진행했다.
연기상을 수상할 만큼 자연스러운 인디의 연기는 일상 속에서 촬영을 진행했기에 가능했다. 당초 인디는 영화에 출연하기 위한 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2017년 인디를 입양할 당시만 해도 레온버그 감독 부부는 인디를 영화에 출연시킬 계획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폴터가이스트'(1982)의 첫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레온버그 감독이 인디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구상하면서 촬영이 시작됐다.
'굿 보이' 촬영은 2021년부터 약 3년간 진행됐다. 아무리 길어도 1년 이상이 걸리지 않는 통상적인 영화 촬영과 달리, 인디의 상황에 전적으로 일정을 맞춰야 한 까닭이었다. 레온버그 감독은 "인디는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촬영이 가능했던 만큼 하루에 한 장면씩 찍는 걸 목표로 촬영했다"라고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비를 뿌리는 기계까지 동원한 야외 촬영의 경우, 한 장면을 찍는 데 5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레온버그 감독 부부는 무리해 가면서 인디를 카메라 앞에 세울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인디가 억지로 하는 촬영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노는 시간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 장난감과 간식을 준비하며 인디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는 번거로운 작업을 반복했다.
레온버그 감독과 인디는 시상식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레온버그 감독은 "인디가 이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며 "간식으로 연기를 유도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연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라고 인디를 대신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인디는 당분간 특별한 계획 없이 집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레온버그 감독에 따르면 현재 인디는 가족과 함께 자택에서 공 던지기 놀이와 낮잠을 즐기는 중이다. 다만, 레온버그 감독은 "'굿 보이' 속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다"라며 인디의 연기 활동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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