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고 신고하세요” 아동·여성 폭력 수사 경찰들의 조언

김다은 기자 2026. 1. 2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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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 해 동안 관계성 범죄가 40만3031건 발생했다. 관계성 범죄란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아동학대 등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반복되는 범죄를 말한다. 최근 출간된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는 관계성 범죄를 비롯한 아동·여성 폭력 사건을 수사하고, 피해자를 사후 지원하는 여성청소년과 직원들과 지구대·파출소에서 근무하며 현장에서 초동 조치를 하는 지역 경찰이 직접 쓴 글을 묶은 수기집이다.

지금은 112 신고로 하루에 1300여 건씩 관계성 범죄 신고가 들어오는데, 다음 날 학대예방경찰관(APO)들이 추가 피해 여부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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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는 아동·여성 폭력을 다루는 경찰관들의 수기집이다. “매뉴얼에는 없는 상황, 조항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들”을 마주한 경찰의 자책을 담은 고백집에 가깝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를 기획한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가운데)과 공저자 정대일 여성폭력정책계장(오른쪽), 이종석 양천경찰서 신월1파출소 1팀장. ⓒ시사IN 박미소

2024년 한 해 동안 관계성 범죄가 40만3031건 발생했다. 관계성 범죄란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아동학대 등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반복되는 범죄를 말한다. 최근 출간된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는 관계성 범죄를 비롯한 아동·여성 폭력 사건을 수사하고, 피해자를 사후 지원하는 여성청소년과 직원들과 지구대·파출소에서 근무하며 현장에서 초동 조치를 하는 지역 경찰이 직접 쓴 글을 묶은 수기집이다.

책 속에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약한 얼굴들을 마주한다. “다 제가 잘되라고 때리는 것이고 제가 맞을 행동을 했기 때문이에요.” 온몸에 멍이 든 아홉 살 소년은 자신을 폭행한 친부가 자신에게 해오던 말을 똑같이 배워 읊조렸다. 스물세 살 여성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귀가가 늦었다고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해왔다. 남자친구는 폭행 후 매번 존경심을 표현하라며 키스를 강요했고 여자친구가 이를 거부하면 무자비한 폭행을 이어갔다. 여성은 경찰관에게 묻는다. “정말 제가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건이 종결된 후 무기력과 자책, 때로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오가던 그는 1년 반 뒤, 이른 아침 변사 신고로 마지막 소식을 남겼다.

책에는 법이 새로운 범죄를 따라잡기도 전에 현실에 내던져진 경찰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뉴얼에는 없는 상황, 조항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들”을 마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자부심 넘치는 성공담보다 자책을 담은 실패담, 그간 흘린 눈물 혹은 땀의 고백에 가깝다.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현장에 달려가는 이들은 때때로 “인간은 놀랍도록 쉽게 추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화, 방문, 협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피해자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은커녕 사명감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법에 정해진 만큼만 행동할 수 있는” 한계에도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피해자들이 한 번 더 신고할 마음을 먹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2025년 12월2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수기집을 기획한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과 정대일 여성폭력정책계장, 이종석 양천경찰서 신월1파출소 1팀장을 만났다. 경찰에 대한 의구심을 담은 첫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경찰이 관계성 범죄를 포함한 여성 폭력 등을 가볍게 본다는 시선이 있다.

조주은 대책관(이하 조): 관계성 범죄는 현장 종결률이 높은 편이라 그런 오해가 크다. 가정폭력 신고가 하루 평균 787건, 이 중 아동학대는 100건이다. 신고를 받고 나가면 제각각의 어려움과 곤란이 있어서 비슷한 사건이 하나도 없다. 눈에 보이는 피해가 크지 않거나, 신고자(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경찰이 조치를 취하기 어렵기도 하다. 제3자가 신고해서 출동하면 도리어 “당신이 우리 가정 책임질 거냐”라고 따지는 경우도 많다.

이종석 팀장(이하 이): 가볍게 볼 수가 없다. 관계성 범죄는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장에서 경찰이 초동 조치를 취하고 떠나버리면 한집에 남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 적절한 사회적 개입이 없으면 가해자는 앙금을 가지기 쉽다. 결국 강력범죄로 진화하는 경우가 많다. 근래 강력범죄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관계성 범죄가 강력범죄화하는 추세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현실 가능한 선에서 최소 한 시간씩이라도 당사자들과 이야기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불원해서 사건이 종결돼도 주위를 살피고 떠난다.

관계성 범죄를 좀 더 무겁게 다루게 된 계기가 있나.

정대일 계장(이하 정): 이전에는 ‘어제 어느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정도로 취급됐다. 정보가 축적되지도 않고 기록도 없이 휘발돼왔다. 지금은 112 신고로 하루에 1300여 건씩 관계성 범죄 신고가 들어오는데, 다음 날 학대예방경찰관(APO)들이 추가 피해 여부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연락한다. 사건의 위험도를 분류해서 관리 대상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연락도 한다. 축적된 자료에 따르면 1년간 벌어진 전체 살인사건 중 관계성 범죄가 발단이 된 사망사건에서 여성 사망률은 남성의 3배에 이른다. 우리가 노력하면 막을 수도 있었을 범죄다. 다만 경찰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지방정부나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이 합심해서 무료 법률상담, 심리상담 지원, 맞춤형 복지 서비스 연계 등을 유기적으로 제공해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지금은 관계성 범죄가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라고 본다. 그동안 이 문제를 집 안에 넣어두려 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됐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와 법체계에서 여성과 아동이 주된 피해자인 범죄를 사적인 영역에 두고 자원과 역량을 투입하지 않을 명분을 만들어왔다. 처음 경찰이 됐을 때는 개인적인 문제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성 범죄가 권력의 불균형에 의해 생기는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 다만 경찰이 개인 플레이로 채워나가는 면이 많아 피해자로서는 어떤 경찰을 만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 경찰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난만 하고 잊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대책을 마련하자고 말하고 싶다. 현실과 법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아동학대는 대표적인 관계성 범죄다. 부모에게 정서적·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동은 부모의 폭력을 막고 싶으면서도 부모가 처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시사IN 신선영

어떤 간극을 말하나?(책에는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긴급임시조치 결정을 하더라도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일 뿐” 강제할 수 없다는 점,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만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로 인도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 등이 언급된다. 최근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해 수사에 지장이 있는 경우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사건이라도 부모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통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런 간극을 메운 사례다.)

이: 경찰 초동 조치 후 자동 연계되는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관계성 범죄는 알코올중독, 조현병 등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연결된 경우가 많다. 야간에 이런 사건이 터지면 경찰이 서너 시간씩 이들을 입원시킬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도 결국 병원이 받아주지 않으면 가해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긴다.

조: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하는 간극도 있다. 올해 ㄱ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현재 교제폭력법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가해자·피해자 분리를 하려면 사실혼 관계를 넓게 해석하고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경찰이 그렇게 긴급임시조치를 청구했더니 검사가 이건 사실혼이 아니라면서 법원에 임시조치를 청구하지 않았다. ㄴ지역에서는 여성 피해자가 불륜 관계인 연인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칼에 찔리고 겨우 목숨을 건진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경찰이 잠정조치 4호(가해자를 최대 1개월간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구금)를 신청했는데 판사가 기각을 하면서 설명한 이유 중에는 ‘유치를 했을 경우 본부인이 알게 된다’도 있었다.

초동 조치를 하는 지역 경찰의 입장에서 관계성 범죄를 다룰 때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고 서로에게 갖는 감정이 복잡하다. 그래서 감정의 온도가 계속해서 변한다. 폭력의 수위가 높은 사건에는 감정에 동요가 없다가 폭력의 강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도리어 경찰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고강도 감정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변화들을 경찰관이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고한 ‘가정’과 ‘경찰’ 간의 문제가 되면서 경찰이 위축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관계성 범죄 신고는 일평균 1300여 건에 이른다. 사진은 사건 조사 중인 한 경찰관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경찰관에게 사회복지사, 전문 상담사, 교사, 의사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고?

이: 복지 지원부터 부부 관계 상담, 학생 진로상담, 알코올중독 문제까지 경찰의 몫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두 사람을 꼭 특채해야 한다는 농담을 한다. 무당 그리고 오은영 박사님. 초동 조치 이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더 강한 폭력을 행사할지 아니면 반성하며 뉘우칠지 알 수가 없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점이라도 쳐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경찰의 수사 권한이 커졌다.

정: 관계성 범죄는 수사 부서(여성청소년수사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피해자를 지원하는 행정 부서(여성청소년계)도 중요하다. 또 다른 중요한 한 축은 초동 조치를 하는 지역 경찰이다. 이 세 개의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잘 ‘해결’된다. 그런데 검·경 수사권 분리로 수사를 조직 내에서 별도의 영역으로 떼어놓고 이것만 강화하려 하면 관계성 범죄 해결에는 이롭지 않다. 수사 전문성을 높이더라도 부서 간 협업을 유지해서 피해자 보호 영역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 최근 영화 〈살인자 리포트〉, 드라마 〈자백의 대가〉 〈당신이 죽였다〉를 봤다. 모두 사적 응징을 다루고 있다.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와 주변인들,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경찰에 대한 신뢰를 우리가 더 높여야 한다.

관계성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 2024년 관계성 범죄 근절 캠페인을 했다. 우유팩 측면 작은 칸에 뭘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스토킹과 교제 폭력은 중대한 범죄입니다’ ‘지금 신고하세요’라는 말을 썼다.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고 주위에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범죄다. 특히 보호종료아동, 1인 가구, 가정폭력으로 가족관계가 단절된 여성 등의 경우 가해자인 남성을 유일한 정서적 지지 기반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라는 수렁이다. 주위에 반드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이: 신고 이력이 있으면 더 효과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신고를 하라. 이번 신고 사건은 욕설인데, 출동하면서 APO 신고 이력을 살펴보니 그 전에 목을 조르거나 다른 흉기로 위협을 한 기록이 있다면 현장 경찰관은 피의자가 오늘 한 가해 행위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조: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자기 느낌과 직관을 믿는 것이다. 상대가 이상하다 싶을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반성하지 말고 그 직관에 따라 자신을 지켜라. 둘째, 가해자를 변화시키려 하지 마라. 셋째, 참는 것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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