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 환류·50억 과징금…대기업 ‘갑질 DNA’ 뜯어고칠까 [정책 비하인드]
전략수출기금 신설, 잭팟 이익 밸류체인 타고 내려
플랫폼·방산 평가제+기술탈취 50억 칼끝 겨눈다
해외 동반진출 2배 지원, 중소기업 날개 달기 박차
[지데일리] 대기업이 해외에서 수조 원 대박을 터뜨릴 때마다,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협력업체들은 대개 빈손이다. 삼성의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를 찍어도 1차 협력업체는 원가 후려치기로 울상이고, 현대차의 글로벌 수주는 본사 이익으로 끝난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병폐는 '대박은 대기업, 뒷감당은 중소기업'이라는 불균형이다. 글로벌 딜 하나가 수천 개 협력업체의 명운을 결정짓는 현실에서, 대기업은 해외 바이어와의 가격 협상에서 이익을 독식하고 협력업체에겐 '원가 절감 10%' 압박을 가한다.
결과는 뻔하다. 중소기업은 설비 투자와 R&D를 포기하고 생존에 급급해지며, 대기업 의존도가 더 심해진다. 2025년 기준 중소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250%를 넘고, 기술탈취 피해 신고는 연평균 300건을 기록한다. 이번 전략은 돈과 제도로 이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야심작이다.
상생금융 1조7천억, '돈으로 강제하는 상생'
눈에 띄는 건 상생금융의 초대형 확장이다. 현대차·기아, 국민·우리은행 등이 출연하는 기존 1조 원 프로그램을 1조7천억 원으로 불린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무역보험공사의 리스크 분담까지 더해 자금 파이프라인을 튼튼히 했다.
포스코와 기업은행이 출연하는 철강산업 수출공급망 우대자금 4천억 원도 별도로 투입된다. 대기업이 무역보험기금에 상생 출연금을 내면 그 5~10%를 법인세 공제해주는 '당근'까지 준비했다. "돈을 내놓으면 세금 혜택, 안 내면 평판 리스크"라는 구조로 상생을 강제하는 셈이다.
전략수출금융기금, 대기업 초과이익을 중소로 환류
더 파격적인 건 전략수출금융기금 신설이다. LNG 플랜트, 방산 무기체계, 반도체 공장 수출 같은 수십조 원급 대형 프로젝트에서 대기업이 얻은 초과이익을 다시 생태계로 돌려놓는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공장 수주로 얻은 수익 일부가 협력업체 설비 개선 자금으로, LIG넥스원이 폴란드에 수출한 K9 자주포 이익이 방산 중소기업 R&D로 환류되는 그림이다. 상생협력기금도 5년간 1조5천억 원으로 키우고, 방산 체계기업에 특화 인센티브를 준다. 미국 현지 공장 동반진출 지원금도 최대 20억 원, 기존 2배로 확대했다.
플랫폼·금융·방산 평가제, 상생을 숫자로 재는 시대
평가 체계도 전방위 강화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동반성장지수 평가에 추가하고, 배달의민족·요기요 같은 플랫폼의 입점업체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을 검토한다. 금융회사와 중소기업 간 '상생금융지수'를 신설해 은행의 대출 심사 기준까지 평가한다.
방산 분야는 K-방산 수출 급성장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상생평가를 도입, 결과에 인센티브를 연계한다. 공공기관 동반성장 평가는 현행 134개에서 2030년까지 전 공공기관으로 확대된다.
중소기업 협동조합에는 협의요청권을 부여해 대기업과 단체로 거래 조건을 협상할 수 있게 하고, 협상 과정의 담합행위를 공정위 예외로 인정한다. 100개 중소기업이 삼성디스플레이와 단체로 납품단가 협상하는 그림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기술탈취에 50억 과징금, 칼 빼든 제재 강화
가장 강력한 건 기술탈취 근절 대책이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해 대기업이 협력업체 기술을 훔쳤는지 법적으로 입증하고, 행정제재를 시정명령·벌점으로 확대한다. 중대 위반 시 최대 50억 원 과징금 부과. 과거 LG화학 배터리 기술 유용, SK하이닉스 메모리 칩 설계 도용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현실에서 법적 단죄로 간다. 대통령 주재 '민관합동 상생협력 점검회의'를 신설해 정책 추진 상황을 실시간 감시한다.
이 전략의 배경은 명확하다. 트럼프 2기의 25% 관세 폭탄, 미·중 기술 패권전,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의 경제외교 성과가 대기업에만 머물면 안 된다. 2025년 한국의 반도체·배터리·방산 수출이 각각 20% 성장했지만, 중소기업 수출 비중은 여전히 18%에 그친다. 대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협력업체 천 곳이 줄도산하는 구조에서, 이익 하향 분배는 생존 전략이다.
실증된 성공 사례들, 이제 전 경제로 확산
현대차 상생금융은 협력업체 대출금리를 연 2%p 낮춰 자금 조달 부담을 덜었고, 포스코 철강공급망 펀드는 중소 협력업체의 해외수출 비중을 15%→28%로 끌어올렸다. LIG넥스원 K9 폴란드 수출의 30%가 협력업체로 환류되며 방산 중소기업 매출이 25% 증가했다. 이번은 이런 성공 모델을 반도체·자동차·철강·방산을 넘어 전 경제로 확산하는 로드맵이다.
네 가지 현실적 과제, 실행이 정책의 성패 가른다
다만 성공을 위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 먼저, 자금 집행 실효성이다. 1조7천억 원 상생금융이 '아름다운 숫자'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기업의 실질 출연이 관건이다. 글로벌 불확실성 속 재무 건전성 우려로 출연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분기별 성과 공개, 미출연 기업 명단 통보, ESG 평가 연계 등 '평판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평가 체계 공정성 확보다. 동반성장평가는 '주관성' 논란의 산물이다. 배달 플랫폼 수수료율 15%를 어떻게 '공정'하게 재나, 방산 상생 수준을 어떤 지표로 측정하나. 명확한 정량지표(납품단가 인상률, 기술이전 건수, 고용 유지율)와 제3자 검증기관 지정이 필수다. 평가가 형식화되면 대기업은 최소 기준만 맞추고 빠져나간다.
더불어, 기술탈취 제재 실질성이다. 50억 원 과징금은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 10조 원 앞에 '껌값'이다. 진정한 억지력은 집단소송 허용, 형사처벌 도입, 피해 중소기업 배상 의무화까지 간다. 증거개시제도는 미국 SEC처럼 문서 강제 제출과 위증 처벌로 무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수용력 강화다. 해외 동반진출 지원금 20억 원은 현지 법인 설립·품질인증·물류망 구축 비용의 10%도 안 된다. 중소기업 70%가 "해외 진출 노하우 부족"을 1순위 애로로 꼽는다. 정부는 사전 교육, 대기업 멘토링, 현지 정착 컨설팅 패키지, 실패 시 재도전 펀드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이 전략은 '대기업 양심'에 베팅하지 않고, 돈·제도·평판으로 강제한다. 성공하면 '대기업 살·중소기업 죽'의 한국경제 병폐가 깨진다. 2030년 중소기업 수출 비중 25%, 기술탈취 신고 50% 감소, 협력업체 평균 부채비율 200% 이하가 목표다. 실패하면 '좋은 정책, 나쁜 실행'의 전형이 된다.
실행이 답이다. 새 판 짜기의 첫 단추
자금 실효성→성과 공개와 평판 압박, 평가 공정성→정량지표와 제3자 검증, 제재 실질성→집단소송·형사처벌, 중소 수용력→교육·멘토링 패키지. 이 네 기둥이 흔들리면 대기업 수출 대박은 영원히 본사 금고에 갇힌다.
한국 경제의 새 판을 짜는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졌는지, 1년 후 숫자가 말해줄 것이다. 대기업의 떡고물이 중소기업 밥상에 오르려면, 정부의 실행력이 그만큼 단단해야 한다. 정책은 이미 나왔다. 이제 배경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