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현대 자본주의의 원형이 만들어지다

희뿌연 런던의 어둑한 밤길을 밝히는 희미한 가스등,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등장하는 마차와 정체불명의 남자. 19세기 말 영국의 저 풍경에 우리가 익숙해진 건 셜록 홈스 시리즈 등의 클리셰-이미지 덕이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저택 응접실과 굴뚝 속 그을음을 긁어내는 야윈 아이들의 모습도 찰스 디킨스의 문학과 영화로 눈에 익은 그 시기 영국의 진실이다. 목까지 꽉 채운 단추와 숨 막힐 듯 조인 코르셋으로 조형된 '레이디'의 이미지와 밀실의 난잡한 사생활 등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대변되는 가면의 이중성도 있고, 다윈의 ‘종의 기원’과 공존했던 코난 도일의 심령술, 프랑켄슈타인의 상상력도 있다. 가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거의 모든 원형이 구축됐다는 저 ‘빅토리아 시대(1837~1901)’가 빅토리아 여왕(1819.5.24~1901.1.22)의 퇴장과 더불어 저물기 시작했다.
5척 단신(152cm)의 여왕은 1837년 만 18세에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여왕으로 즉위해 64년간 재위하며 ‘팍스 브리태니커’의 영광을 누렸다. 산업혁명의 영국은 명실공히 ‘세계의 공장’이었고, 공산품들은 철도와 증기선에 실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 기차와 배에는 주류 계급이 된 부르주아의 문화와 생활 양식, 근면 성실 정숙을 앞세운 그들의 도덕주의, 참정권 등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도, 침략과 약탈, 빈부 격차의 제국주의-자본주의와 함께 실려 있었다.
의회민주주의-공화주의 운동의 확산으로 왕실 폐지 논의가 본격화한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빅토리아 시대였다.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과 사별(1861)한 뒤 근 10년간 공식 행사 등을 마다한 채 칩거한 뒤부터였다. 공화파들은 버킹엄궁 정문에 ‘매물’ 딱지를 붙이고 ‘일 안 하는 군주에게 왜 세금을 쓰느냐’고 따졌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폐위되고 공화정이 시작된 것도 1870년이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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