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앓이의 시대, 달콤함 뒤에 남는 질문

한국은 지금 '두쫀쿠 앓이' 중이다. '두바이쫀득쿠키', 줄여서 두쫀쿠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개당 5000원에서 1만원에 이르는 가격에도 오픈런이 이어지고, 품절 지도가 등장하며, 국밥집과 닭발집, 초밥집까지 가세했다. 디저트는 더 이상 식사의 끝이 아니라, 소비와 콘텐츠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열풍이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1만원이 채 안 되는 30개 들이 초코파이 한 상자를 오래 두고 먹는 사람에게, 탁구공만 한 쿠키 한 알에 6500원을 내는 풍경은 낯설다. 탕후루도, 두쫀쿠도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유행은 언제나 개인의 취향을 넘어 사회의 심리와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두쫀쿠 열풍의 배경에는 방송과 영상, 그리고 SNS 알고리즘이 있다. 유명 아이돌이 한 입 베어 무는 장면, 반으로 가를 때 쏟아지는 초록빛 속과 늘어나는 쫀득한 질감은 화면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먹는 행위'는 '보여주는 경험'이 되었고, 디저트는 가장 손쉽게 소비되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비싸지만 한 번쯤은 누려보고 싶은 '스몰 럭셔리', 노력 끝에 얻었다는 성취감, SNS에서의 인정 욕구가 겹치며 두쫀쿠는 필수 먹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달콤한 유행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질문도 있다. 과연 가성비가 있는가, 건강에는 어떤가 하는 문제다. 두쫀쿠 한 알의 칼로리는 공깃밥 두 공기를 훌쩍 넘는다. 당분과 지방이 응축된 디저트가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현실은 씁쓸하다. 더구나 유행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대왕카스테라와 탕후루가 그랬듯, 지금의 열광이 언제 식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짧은 유행의 파도는 자영업자에게 더 큰 위험이 된다. 유행에 올라타기 위해 대출을 받고, 설비를 들이고, 인테리어를 바꿨지만 남는 것은 빚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소비자는 '한 번의 경험'으로 만족하지만, 생산자는 생계 전체를 걸어야 한다. 빠른 유행을 부추기는 방송과 플랫폼은 그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계층 간 위화감이다. 과거 유명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 하나 때문에 청소년과 그 가족이 상처를 입었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비싸도 너무 비싼 디저트가 또 다른 비교의 기준, 결핍의 상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달콤한 간식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즐거움이 아니라, 따라갈 수 없는 세계의 표식이 되는 순간 사회는 균열을 안게 된다.
물론 침체된 경제 속에서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하고 시장을 살리려는 이들의 노고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방송과 영상이 결합해 하나의 상품을 침소봉대하는 구조다. 맛과 완성도, 지속 가능성보다 화제성과 인증이 우선될 때 음식은 문화가 아니라 일회성 소비재로 전락한다. 유행이 끝난 자리에는 늘 허무와 피로만 남는다.
가성비가 높은 대중적인 선택은 결코 뒤처진 소비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 음식은 늘 일상의 자리에서 사람을 위로해 왔다. 주악과 유과, 타래 같은 전통 다과가 수백 년을 버텨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별하지 않아 보여도 반복해서 찾게 되고, 나누어 먹을 수 있으며, 세대 간의 벽을 만들지 않는다.
두쫀쿠 앓이는 한국 사회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 특별한 경험에 대한 갈망, 그리고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겹쳐 있다. 그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달콤함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다음 유행의 잔혹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한 줄기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유행을 즐기되 휩쓸리지는 않는 지혜, 남들이 먹는 것을 따라가기보다 나를 진짜 위로하는 맛을 찾는 여유. 두쫀쿠가 남기고 가야 할 것은 당분과 열량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소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라,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적당한 단맛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맛과 멋, 스토리가 있는 한국 전통 디저트에 관심을 가져보자. 음식은 자신의 몸을 위한 것이다. 남이 먹는다고, 좋아한다고 무턱대고 먹어서는 안 된다. 내 몸을 위해서 먹거리에 대한 건강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지게를 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상황이나 준비 없이 남의 행동을 무작정 모방하는 것을 신중하지 못하다. 경계까지는 아니나,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산업 역시 반짝 흥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먹거리로 승부해야 한다.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