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거제 내도 동백꽃을 보시거든

이병근 시인·문화평론 2026. 1. 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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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꽃송이 통째로 떨어지는 꽃
조선 선비 절개·강인함 상징하기도
사철 푸른 잎에 꽃말 ‘영원한 사랑’
이병근 시인·문화평론

 거제도 앞바다에는 신들이 가지고 놀다가 던져 놓은 공깃돌들처럼 고만고만한 섬들이 호수 같이 잔잔한 포구 곳곳에 떠 있다. 내도는 그 중에서도 '명품'길을 품고 있는 섬이다. 상록수림과 해안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섬으로, 쥐의 귀를 닮았다는 서이말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외도를 향해서 떠가는 듯해서 거북섬이라고도 하며, 구조라항에서 바라보면 모자를 벗어 놓은 것 같아 모자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심도와 더불어 거제 대표적인 동백섬 내도에 들어서면 우선 편백숲과 대나무숲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세심전망대를 지나 동백숲길로 들어서면, 숲길은 온통 동백나무들 생기로 가득하다. 동백숲길을 지나 삼거리에서 '연인'길이 시작된다. 부드럽게 이어진 바닷길을 걸으면서 은결의 향연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지는가 싶을 때 '남자나무'와 '여자나무', 두 그루 곰솔을 만난다. 바로 이 길 전망대에서 한려해상공원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비교적 한반도 남쪽에는 동백나무가 많다. 하얀 겨울에 붉은 꽃을 피워내기에 이름을 갖게 된 동백(冬栢)꽃은 향기가 없는 대신 색깔로 동박새를 불러 꿀을 제공해 주며 새를 유인하는 조매화(鳥媒花)의 하나이다. 동백꽃은 대개 붉은빛이나 지역에 따라 흰 동백꽃도 있어 상서로운 조짐이라해 소중히 보호하고 있으며 거문도와 울릉도에는 분홍 동백꽃도 있다.

 강희안(조선 문신·화가)의『양화소록』중 '화목구품(花木九品)'에 동백을 4품으로 등급을 매기고 동백꽃을 신선의 벗이라 했고, 도골선풍이라 해 신선의 고아한 풍채와 도인의 골격을 갖춘 듯이 한 꽃으로 다른 꽃들과 달리 청수하고 윤택한 사시 푸른 잎을 겸했으니 꽃 중에 꽃으로 뛰어나고 복을 갖춘 꽃이라 했다.

 겨울철 유적을 찾아 돌아볼라치면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했는데 담장 넝쿨에 숨어 수줍게 피려 하는 꽃이 바로 동백(冬栢)이다. 그래서 더 정겹다. 옛 문사들이 동백을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겼다. 찬 겨울에도 절개를 잃지 않는 벗 엄한지우(嚴寒之友)로 치켜세우기도 했으며, 시인들은 동백을 한겨울 눈보라 속에 피는 꽃, 소나무와 동매와 같이 사랑해 왔다.

 동백꽃은 질 때의 모습이 다른 꽃에 비해 특이하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가 통째로 쑥 빠져 떨어진다. 떨어진 꽃송이는 모두 하늘로 향하고 있다. 그렇게도 싱싱하던 꽃잎이 조금도 시들지 않았는데, 간밤에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뚝뚝 떨어져 있는 것이다. 생명이 다했다 싶을 때, 미련을 버리고 송두리째 끊어버리는 모습에서 깔끔한 절개와 도도함이 사람들을 매료 시키고 있다. 그러나 통째로 떨어지는 까닭에 불길을 상징하는 나무로 취급되기도 했다. 유배지에서는 아예 동백나무를 베어 버리기도 했다. 동백꽃은 조선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겨울 꽃으로, 혹한 속에서도 꽃잎 전체가 통째로 떨어지는 강인함과 변치 않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고대 일본인들에게는 동백꽃이 '사무라이의 꽃'으로 불린다. 무사들의 충성과 희생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사무라이들이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때 단칼에 머리가 떨어지는 모습과 동백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모습이 유사하다고 해 '희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들이 자결문화에 '세셋푸(활복)' 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카이샤쿠(할복자의 목을 단칼에 베어주는 역할을 맡는 사람)에 의해 무사의 목이 순간에 달아나는 것과 같다 해서 일본에서는 무사의 강인한 정신과 절개를 상징하는 꽃으로 동백꽃을 '춘수락(椿首落·椿은 동백을 뜻함)'이라 표현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은 동백꽃의 강한 생명력과 관련이 있다. 동백나무는 상록수로,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며, 추운 계절에도 꽃을 피운다. 이는 변치 않는 사랑과 인내를 의미하며, 오랜 시간 지속되는 사랑의 상징이다.

 동백에서 기름을 얻는다. 동백기름은 꽃이 지고 난 다음 늦가을인 11월쯤이 되면 살구만한 열매가 알밤처럼 떨어진다. 이 열매를 주워 모아 씻어 말리고 절구에 넣어 껍질을 부수고 키질을 해 속살만 모은다. 속살만을 더 곱게 빻아서 삼베 주머니에 넣어 단단히 묶으면 기름떡이 되고 이것을 짜면 동백기름이 나온다.

 동백기름은 맑은 노란색인데 변하지도 않고 굳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는다. 아담한 한국 여인의 머릿결을 맵시 있게 해주는 머릿기름으로 애용됐다.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면 그 모양새가 단정하고 고울 뿐 아니라 냄새도 나지 않고 잘 마르지도 않으며 더욱이 때도 끼지 않아 머리단장에는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머릿기름 외에도 식용유, 등유, 약용으로 썼다. 등잔불은 다른 기름에 비해 그을림이 적고 불길이 밝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소설 '춘희' 의 주인공 마르그리트는 한 달에 25일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으로 치장하고 사교 모임에 나타나는 동백아가씨다. 여자의 생리적 달거리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춘희'의 비극적 내용을 소재로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라 트라이비타'라는 굴지의 오페라를 창작했다. 이 소설을 일본에서는 춘희(椿姬)으로 번역했고 '춘(椿)'은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의미한다. 한국 시인 청마 유치환은 '그대 위하여/ 목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하고 맑고 강렬하면서도 처연한 '동백꽃'를 노래했다.

이병근 시인·문화평론 (iusm@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