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의료취약지역의 문제,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필자는 지난 2000년 인천의 구도심에서 개인 의원으로 시작하여 종합병원으로 도약을 이루었고, 의료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의료취약지인 인천시 강화군에 유일한 종합병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개원가에 있으면서 수많은 의료 관련 이슈들을 경험해 보았고 실제 강화군에 종합병원을 운영하다보니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에 대해 새삼 느끼는 바가 있어, 오늘은 의료취약지의 병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병원이 사라지는 데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보편적으로 먼저 분만실이 문을 닫고, 다음으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진다. 그 중 응급실은 의료의 최후 보루로써 가장 늦게까지 버티지만, 그 불이 꺼지는 순간 그 지역은 사실상 의료 지도에서 지워진다. 이 과정은 조용히 진행된다. 현수막도, 경고 방송도 없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여기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바다로 둘러싸였거나, 산을 몇 개 넘어야 하는 군 단위 지역들은 수도권이나 광역시와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밤이나 악천후 혹은 주말 관광객으로 인한 교통체증 등의 상황에는 병원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어떤 곳에서는 분만 가능한 병원이 사라진지 오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소아과 진료를 받으려면 군 경계를 넘어야 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일단 버텨보자"는 말이 먼저 나온다. 구급차가 도착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고, 도시는 너무 멀다. 그때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역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 뿐이다. 전국 82개 군 중에 종합병원이 있는 지역은 단 16개 군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이조차 다행인 상황이다.
이 지역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종합병원이 한 곳뿐이거나, 그마저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병원들은 응급실을 24시간 열어두고, 환자가 많든 적든 필수의료를 이어간다. 농번기에는 사고 환자가 몰리고, 관광철이나 휴가철에는 외지인 응급환자까지 떠안는다. 군부대가 있는 곳에서는 또 다른 긴장이 더해진다. 의료진은 부족하고, 한 사람이 여러 몫을 감당하는 날도 잦다. 그래도 병원을 닫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문을 닫는 순간, 이 지역의 의료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경은 전국 곳곳에서 반복된다. 서해와 남해의 섬 지역, 산간 접경 지역, 농어촌 군 단위 지역들에서 병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느 지역은 산모가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미리 다른 도시로 옮겨 가야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야간 운전을 각오해야 한다. 지역은 달라도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닮아 있다.
문제는 이런 병원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버티기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필수 진료과를 유지할수록 적자가 쌓이고, 인력을 구하지 못해 진료를 줄일까 고민하게 된다. 외부에서 보면 경영이 미숙한 병원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는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꼭 필요한 의료를 민간병원들의 시장 논리에만 맡겨온 결과다.
정부도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책과 지원 제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번 해는 넘길 수 있을까"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단기 지원으로는 오래된 균열을 막을 수 없다. 병원은 하루 이틀로 다시 세워지지 않고, 의료진은 언제든 쉽게 구해올 수 있는 인력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취약지는 우리 가족이, 우리 지인이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곳일 수 있다. 살아가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불편하고, 조금 멀고, 인구가 조금 줄어든 곳일 뿐이다. 그들도 아프고, 늙고, 아이를 낳는다. 다만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병원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건물 하나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다. 그 지역에서 사람이 살아도 괜찮다는 최소한의 요건이 사라지는 일이다. 비슷한 군 단위 지역들이 하나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 구조에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한다.
의료취약지를 지키는 일은 특정 지역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종합병원이 하나 남은 지역에서 그 불을 꺼뜨릴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함께 지킬 것인지. 이 질문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던져지고 있다. 이제 답을 미루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결국 상대적 의료박탈은 남겨진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백승호 의료법인 성수의료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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