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21세기 정글의 법칙

송용창 2026. 1. 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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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는 키플링이 언급한 '문명 개화의 의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걸쳤지만, 이제 그런 치장도 없는 원초적 형태라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모글리가 교육받았던 19세기판 정글의 법칙은 그래도 대영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엘리트들이 지녀야 할 용기, 모험심, 신의 등의 덕성 함양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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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 그린란드 병합 야욕
제국주의 도래 경고 목소리 쏟아져
위험해진 무질서의 국제관계 대비를
편집자주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사진. 자신은 그린란드 위에 성조기를 들고 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JD 밴스 부통령이 나란히 서 있다. 트루스소셜 캡처

“정글의 법칙이 뭐지? 먼저 공격하고 그다음에 짖는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고들 하지만, 정글에선 ‘선빵’이 최선이다. 늑대인간 모글리는 흑표범 바기라에게 수시로 이런 정글의 법칙을 교육받는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정글의 법칙을 배운 모글리는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에 오른다.

1894년작 키플링의 ‘정글북’은 정글로 은유되는 제국주의 시대를 정당화하는 모험소설이라는 혐의를 받아왔다. 실제 키플링은 1899년 미국이 필리핀 식민화를 시도할 때 ‘백인의 짐’이란 시를 발표해 ‘반은 악마이고, 반은 어린이’인 야만적인 원주민을 개화시키는 게 백인의 고귀한 의무라는 요지로 미국을 독려했다.

19세기 절정에 치달았던 제국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쏟아지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종의 전주곡이었다면 “국제법이 필요없다”며 나토 회원국을 위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언행은 그 시대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 격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국제법이 무시되는 법치 없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다시 제국주의적 야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니까 세계는 국제법이 아니라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시대로 돌아가는 판이다. 19세기 제국주의는 키플링이 언급한 ‘문명 개화의 의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걸쳤지만, 이제 그런 치장도 없는 원초적 형태라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전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키는 세계 경찰로서 그 규범을 전파했던 미국이 그런 의무 따위는 짐만 될 뿐이라며 아예 떨쳐내고 야욕의 본색을 노골화하고 있어서다. 약탈적인 관세협상,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제거, 그린란드 병합 시도까지 경제적 이권에 충실한 트럼프의 본심은 숨김이 없다. 트럼프는 재취임 이후 대통령직을 이용해 14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추산했다. 국익을 앞세운 ‘미 우선주의’ 뒤에 개인 사욕까지 뻔뻔히 도사린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국제연맹을 제안한 우드로 윌슨의 이상주의를 품었던 미국이 이러다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전체주의적 충동이 지배하는 파시스트 국가로 변모하는 악몽이 눈앞의 현실로 닥칠지 모르겠다.

모글리가 교육받았던 19세기판 정글의 법칙은 그래도 대영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엘리트들이 지녀야 할 용기, 모험심, 신의 등의 덕성 함양을 중시했다. 여러 논란에도 정글북이 아동문학으로 오래 읽혀 왔고 보이스카우트가 교범으로 활용했던 이유다. 그러나 도래하는 21세기 제국주의 정글은 이런 덕성조차 사치로 보이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자연상태에 더 가까워 보인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폭력과 기만이 지배하는 자연상태에서 숭배되는 것은 오로지 힘이다. 21세기 대중문화를 휩쓴 히어로물은 이런 시대를 예감한 문화적 척후병이었던 것일까. “진짜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the real world).” 21세기 목전에 나온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했던 말은 묵시록적 예언같이 들린다. 이를 변주하면, 우리는 주권국가 간 자유롭고 대등한 교류라는, 인류사의 예외적인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란 진짜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자조론은 19세기 개인주의의 윤리적 덕목이었다. 국가 바깥을 무정부 상태로 보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은 국가의 행위 원칙은 자조(self-help)라고 말한다. 트럼프 시대의 국가 생존이야말로 이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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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창 논설위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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