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중앙아시아 울려 퍼진 한글아리랑 타슈켄트1 세종학당 [남도 학교기행]

#사막의 등대, 칼리안 미나레트
비단길(사막길)이라고 부르는 동서교역로는 중국 시안(장안)을 출발하여 둔황(돈황)에 이르면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톈산산맥을 기준으로 북로 또는 남로를 경유하거나 아예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타클라마칸 사막이 펼쳐지는 타림분지 아래를 지나 파미르고원을 통하는 방법이다.
이 세 갈래가 다시 만나는 지점이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르칸트에서 300km 정도 더 서쪽으로 진행을 하면 실크로드의 필수 경유지 부하라(Bukhara)에 이르게 된다. 2,300년의 역사를 품은 고대 도시로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구시가지에는 중세 이슬람 건축물과 왕들의 거처였던 아르크 성을 비롯한 성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 바로 이러한 옛 도시의 고즈넉함과 신성성 때문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을 의미하는 vihāra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우즈베크인이지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초기 정착민 타지크인이 현재에도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 로마의 핍박을 피해 건너온 유대인과 기타 소수민족이 어울려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부하라의 상징은 단연코 칼리안 미나레트(Kalyan Minaret)이다. 이슬람 사원인 칼리안 모스크, 교육 시설인 미르 아랍 마드라사와 더불어 시내 중심부 포이 칼리안(Poi Kalyan)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건축물은 대개 16세기 이후 다시 재건축된 것이지만 칼리안 미나레트는 12세기 당초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1220년 2월 칭기즈칸이 정복 전쟁을 진행하면서 부하라 주민들을 학살하고 도시 전체를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첨탑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교적 기능과 주변 지역을 살피고 이민족의 동태를 감시하는 전망 초소로도 쓰였겠지만, 실크로드 사막을 건너는 상인, 학자 그리고 고단한 여행자들의 길잡이로서 등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흙을 구워 만든 벽돌 건축물로 높이 46m, 10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큰 탑이다. 광장과 건축 규모와 화려함으로도 사람의 눈과 마음을 홀리고 감탄을 짓게 하지만, 석양과 야경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그 시절, 하늘엔 북극성이 있었고 지상 사막에는 칼리안 미나레트가 있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심은 한글 씨앗
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소련)이 공식 해체되었다. 세계적으로 고도 산업화가 이루어졌지만 소련 내 경제 침체, 비효율적인 자원 분배, 경직된 체제와 사회주의 비효율성 등이 지적되면서 한계가 노출되면서 연방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집권자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2022)는 개혁과 개방 정책을 내걸기도 하였지만, 내부 보수파의 반발과 저항이 있었으며, 마침내 러시아가 주도한 최고회의에서 그의 사임은 수리되고 말았다. 이후 소련의 법적 승계국이었던 러시아 옐친(Boris Yeltsin, 1931~2007)의 주도로 13개국이 참여하는 독립국가연합(CIS)이 구성되어 연방 체제가 막을 내렸다.
독립국가연합이 창설되었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는 격동의 정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극심한 혼란 속에서 1992년 3월 중앙아시아로 날아간 한국의 몇몇 청년들이 있었다. 당시 27세 허선행을 비롯한 3인이었다.
전남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한 그들은 안정된 교직 발령을 마다하고 정치, 사회적 대혼란 상태였던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즈베키스탄에 당도하였다. 자발적 이주였지만 마치 1937년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 이주, 디아스포라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기 위한 기획이었고 결단이었다. 그 험난하고 외로운 길에서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하리라"는 칭기즈칸의 유언을 떠올렸다고 한다.

#광주한글학교가 세종학당으로
1992년 1월 17일, 광주일보 '타슈켄트에 한글 선생님 간다' 기사에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광주일보와 광주북학연구회 공동 추진으로 문을 연 '타슈켄트 광주한글학교'에 젊은 교사들이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1월 24일 제1호로 고려대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던 임채희(당시 32세) 박사에 이어, 3월에 김수진(당시 22세), 전현숙(당시 22세), 허선행(당시 27세) 등이 부임하기로 하고, 러시아어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3월 떠나는 3인은 2월에 국민윤리교육과를 졸업한 동기생으로 허선행은 병역 의무를 마친 터라 나이가 더 많았다.
본래 이 사업은 전남대학교 임채완(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주도로 기획된 '재외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화 연구'의 하나로 시도되었다. 1991년 4월부터 중앙아시아 고려인 집성촌에 한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모금이 이루어졌고, 광주·전남지역에서 총 4,500만 원의 기금이 모아졌다.
결과로 1992년부터 타슈켄트 광주 한글학교, 타슈켄트 한겨레 한글학교, 알마티 고려 천산 한글학교, 우슈토베 광주 한글학교, 이르쿠츠크 고려인 한글학교, 하바롭스크에 흑룡 한글학교 등 6개의 광주한글학교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지역에 개교하였다. 하지만 1990년 중반 재정 문제 등 운영의 어려움으로 타슈켄트 광주한글학교를 제외한 5개의 학교가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임채완 교수가 제안한 재외동포 한글 보급 지역 중에서 허선행이 우즈베키스탄을 선택한 것은 특히 고려인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상되었지만 초창기 교육 환경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뜻은 깊고 의미는 충분했지만 사설이었기 때문에 재정적 한계가 가장 컸다.
교실 1칸과 재래식 화장실을 갖춘 환경 속에서 닭과 돼지를 키우며 자립을 해야 했다. 선풍기는 물론 난방 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부족함은 스스로 갖추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직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글학교를 만들자!"는 욕구와 의지만큼은 넘쳤다고 한다.
사립으로 개설한 광주한글학교는 1995년 9월 학기를 기점으로 '타슈켄트 세종한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광주·전남지역의 지원금과 타슈켄트 한글후원회의 일시적인 모금으로 운영되던 한글학교가 독자적인 운영 체제를 갖춘 대전환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이미 타슈켄트에 들어와 사업을 하고 있었던 황병곤 사장과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었던 고려인 3세 김 스베틀라나 등 몇 교사들과 함께 한 결단이었다. 일정한 규모와 기준에 관한 심사를 거쳐 영사관의 인가를 받았고,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글과 한류 확산
개설 당시에는 아무래도 고려인 학생이 위주였다. 1996년 7월 안디잔주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11월 갑을방적(대표 박창호) 공장이 가동되면서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어가 꿈의 언어로 떠올랐다. '코리안 드림'이 형성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Islam Abduganiyevich Karimov, 1991~2016 재임)이 고려인을 매개로 김영삼 정부와 세일즈 외교를 편 결과 중앙아시아 최초로 현지 공장을 유치한 결과였다. 양국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공기업의 임원들이나 고위 공무원들조차 한국어에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바탕으로 1997년 10월 첫 한국어능력시험이 실시되었다. 한국 거주 외국인들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 일본 등 4개국 국적을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주로 재외동포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2000년대 초반 들어 <겨울 연가(2002)>, <다모(2003)>, <대장금(2003)> 등 한국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중앙아시아 지역 한류 확산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문화 변동과 동시에 교재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수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초창기 200평 정도였던 부지는 450평으로, 건물 면적도 50평 규모에서 240평으로 확대되었다. 2칸이었던 교실은 대형 교실 5칸, 소형 교실 2칸으로 늘어났고, 2개의 교무실과 행정실, 식당까지 갖춘 정규 학교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2009년 당시 동향인 나주시(시장 신정훈)의 지원과 2012년 10월 개교 20주년을 맞아 경기도의 지원으로 세종학당 도서관(2층)이 준공되었다. 이 과정에서 허선행 학당장은 자재를 직접 구입하고 설계하여 건물을 손수 건축하였다고 회상하였다. 그에 따른 비용 절감 덕에 교무실, 관사 등 건물 4동의 추가 건립이 가능하였다.
#한글 아리랑
2025년 12월 18일, 타슈켄트에 좀처럼 내리지 않던 눈이 그날은 새벽부터 탐스럽게 쌓였다. 현지에서는 행운을 가져오는 눈이라고 반겼다. 개인적으로는 허선행 학당장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을 3번째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광양교육청에서 페르가나 중앙도서관에 첫 한국어도서관을 개설하고 고려인 후손들을 취재하는 것과 병행하는 일정이었다. 그 핵심 주체인 광양교육청 소속 중학생 16명이 참여하였다.
한국에서 27년, 우즈베키스탄에서 33년, 이제 환갑을 맞은 허선행 학당장은 자신을 '신고려인'이라고 소개했다. 1992년 재외 한글 교육을 위해 진출한 1세대 교사 중 동료들은 모두 그만두었지만 유일하게 잔류하여 타슈켄트가 '제2의 고향'이라고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등록된 '타슈켄트1 세종학당'이 정식 교명이다. 교실 7실, 도서관 1실에 수강생이 무려 600명이나 된다.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세종학당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교사진은 문체부에서 파견 5명, 현지인 9명 등 모두 14명의 교사가 함께 한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매 학기 3개월 기간으로, 3학기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2학기가 끝나는 7월에는 '한국문화 특별학기'가, 3학기가 종료되는 12월에는 '한국 문화의 날(12월 1일)'이 운영되고 있다. 세종학당 중 유일하게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밖에 한글 백일장, 김치 담그기를 비롯 한국 음식 만들기, 세종 문화 아카데미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 학교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K-pop 동아리 DMZ는(2025 케이팝 월드 페스티벌 1위)는 명성이 높아서 참여가 경쟁적이라고 한다. 부인 안나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식 쿠킹 클래스도 월 4회 진행 중이다. 2026년부터는 현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한국어 학습 기회를 주기 위해 온라인 학습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교 33년, 허선행 학당장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을 거쳐 간 수료생들 수가 9천 명을 넘어섰다. 지난 12월 18일 광양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내 그는 유독 '믿음'과 '신뢰'를 강조하였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정착 70주년인 2007년 10월 5일, 외교통상부가 주관한 '제1회 세계 한인의 날 행사'에서 3,500여 개 전 세계 한글 교육기관 중 1위로 평가를 받아 그의 한글 사랑 업적이 인정되기도 하였다.
타슈켄트에 첫발을 내디딘 27세 청년 허선행 학당장, 33년 한글 사랑이 더해져 이제 그도 환갑을 맞았다. 가족으로 러시아인 아내와 딸을 두었는데, 한식 요리사인 아내는 학당에서 한식 수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딸은 연세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특히, 2025년 12월 16일 '제3차 한-중앙아시아 국회의장 회의'에 참석했던 우원식 의장의 통역 고려인 출신 박인나(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도 이곳 세종학당 출신이라고 한다.
칼리안 미나레트는 동서 문물 교류의 거점 부하라를 경유하는 대상인들에게 등대 역할을 하였다. 중앙아시아 현대 문명의 중심 타슈켄트, 그곳에 한글 씨앗을 퍼뜨린 이가 우리 지역 출신 허선행 학당장이다.
그의 꿈과 의지로 다져진 세종학당은 한글교육의 거점, 문화의 터전이 되었다. 1937년 중앙아시아에 내팽개쳐진 고려인들이 이룬 불굴의 삶을 다시 보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