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제훈, '대상 배우'의 품격 "신인 이끈단 책임감으로"

배우 이제훈은 SBS '모범택시' 시리즈를 통해 대상 트로피를 두 번이나 품에 안았다. 2023년 '모범택시2'로 같은 해 SBS 연기대상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후 지난달 31일 '모범택시3'로 두 번째 대상을 받았다. '악귀' 김태리와 공동 수상이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단독 수상이란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그에게 '대상 배우'란 수식어를 안겨준 '모범택시'를 2021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이끌면서 작품을 넘어 팀과 후배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했다. 2006년 단편영화 '진실, 리트머스'로 데뷔한 후 20년간 부단히 달려온 경험 또한 그를 '시야 넓은 배우'로 담금질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무지개운수'를 이끄는 김도기 기사 역을 꾸준히 소화하면서는 “착한 이미지”마저 자신의 몫으로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1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시종일관 주변을 섬세하게 챙기고, 말 하나를 조심스레 고르면서도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일상에서도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들지 않느냐 물으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즉각 '현답'이 돌아왔다.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그건 단순하고 상식적인 명제인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이 전부 '나쁜 행동 하면 안 된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였잖아요. 그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도 느끼고 있는 걸요. 김도기 기사 역을 맡고 있으니 평소에도 더 신경 써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죠.”

“5년간 방송한 것도 감사한데 성과까지 좋아서 기분 좋다. 마무리 잘 해서 기쁜 마음이다. 시즌1, 2와 어떤 차별화를 둘지 깊이 생각했다. 시청자들이 일련의 사건 이후 빌런이 무지개운수로 인해 당연히 처단될 것이라 여기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드라마의 매력, 스토리도 당연하겠거니와 빌런의 활약이 더욱 (재미를) 끌어올려줬다. 그만큼 빌런이 중요했다. 최적화된 배우들을 모시기를 바랐다. 처음 생각했던 배우들을 밀어붙였다. 말도 안 되게 모든 분이 응해 주셨다. 그게 행운이었다. 어려움 없이 캐스팅이 진행돼 잘 흘러왔던 것 같다. 시즌3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빌런으로 출연한 배우들(마츠다 케이타, 윤시윤, 음문석, 장나라, 김종수 등)이 '모범택시3'를 위해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색깔까지 꺼내어 연기해준 덕분이라 생각한다.”
Q. 김도기 역을 소화하며 수많은 '부캐 도기'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가 하면, 가수 매니저로 잠입해 걸그룹 댄스까지 췄는데.
“모든 시즌마다 '부캐'를 소화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시즌3 대본을 받고 나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1회부터 일본어, 영어, 액션 다 잘하는 김도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일본 로케이션이 3주 가량 됐는데 매 회차마다 정신없이 해내느라 언어의 한계가 더 있을까 싶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촬영하고 돌아오자마자 중고차 에피소드를 만났다. 빌런을 맡은 윤시윤 배우가 혼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는데 상대 배우로서 절대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찾고 또 찾았다. 그 에피소드에는 '호구 도기'로 변신했는데 첫 테이크가 시작하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저질러 버리자는 마음으로 밀어붙인 캐릭터였다. 연기할 때마다 '현타'가 왔다. '우스꽝스러우면 안 되는데', '귀엽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혼자 과잉된 캐릭터를 보여줘서 흐름에 방해되는 것 아닌가' 온갖 걱정이 됐다. 이어 '타짜 도기', '케이팝 걸그룹 매니저 도기'까지 연기했다. 특히 케이팝 걸그룹 이야기는 처음엔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수정되면서 김도기가 매니저가 됐다. 촬영 감독님께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면서 준 아이디어가 힌트가 돼 장면이 완성됐다. 잘해낼 수 있을까 싶은 캐릭터였는데 화려한 케이팝 이면의 어두운 내용을 다루니 시청자 분들이 더 집중해서 봐주신 것 같다. 댄스 장면은 무대 위에서 춤추는 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저질렀다. 하하! 부족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나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모범택시' 시리즈 자체가 실제 사건, 사고에서 모티브를 얻어 허구로 창작한다. 이를 해석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다른 것보다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낀 점은 2024년 12월 3일에 큰 일이 우리나라에 벌어졌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한테 미친 여파는 굉장히 크게 왔다는 것이다. 권력이 쓰일 때의 위험, 시민들의 선택과 연대가 세상을 지켜내는 과정 등을 그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님이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고, 연기를 더 잘해보고 싶었다. 시즌1 때부터 실제 사건에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보면서 오상호 작가님을 리스펙트하게 됐다.”
Q. '모범택시3'를 통해 두 번째 대상을 받았다. 어떤가.
“사실 연말까지 정신없이 촬영하며 흘러갔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연기대상에 갔다. 시즌3까지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큰 보상으로 다가왔다. '해피 뉴 이어'를 맞이하며 어마어마한 상을 시즌2에 이어서 또 받아서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에 뭘 하긴 했구나 싶다. 하하!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큰 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계속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나도 나름대로 고민과 노력을 하며 연기하지만, 누군가가 내 모습을 촬영해주지 않고, 디렉션 해주지 않고, 조명을 비춰주지 않는다면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그 소중함을 더 느끼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으쌰으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전에는 연기에 대한 집중만 있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해 모든 현장의 사람들이 더 힘내서 촬영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 길잡이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그건 단순하고 상식적인 명제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이 전부 '나쁜 행동 하면 안 된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였다. 그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도 느끼고 있다. 김도기 기사 역을 맡고 있으니 평소에도 더 신경 써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다. 배우로서 이미지 고착화를 걱정하는 것은 이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가진 숙명이자 숙제다. 저는 앞으로 배우로서 살아갈 시간이 훨씬 길고, 그러고 싶은 욕심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모범택시'와 또 다른 작품을 통해서 시청자나 관객을 계속 만날 거다. 그러다 '이제훈 배우가 계속 기시감이 드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 배우로서 슬프겠지. 그러나 '이제훈이 저런 이야기를 할 줄 아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신인 시절과는 확실히 다를 거다. 그렇지만, 마음가짐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다.”
Q. '모범택시'가 5년간 꾸준한 인기를 모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서글프긴 하지만, 지금 동시대 사람들의 상황이 녹아 있기 때문 아닐까. 사적 복수가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지만, 그것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억울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 아닌가. 이 드라마가 허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드라마의 메시지 중 하나가 피해자와 생존자가 있는데 사건,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게 있다. 그런데 시즌2 첫 에피소드에서 다룬 보이스피싱 사건이 최근 캄보디아 사건과 너무나 똑같았다. 과거 이야기가 회자된 건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이게 드라마의 한계인가 싶다가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사건을 더 알리고, 특히 (계엄 사건을 다룬)마지막 에피소드는 '우리 모두에게 벌어진 이야기'라는 걸 시즌3을 통해 말한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Q. 시즌4나 프리퀄, 혹은 스핀오프 제작의 가능성은 있나.
“확장성까지는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고, 시즌3이 끝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서(아직 이르다). 마지막 촬영 날, 무지개운수 회사에서 무지개운수 사람들과 촬영했다. 다들 '이게 마지막이려나?' 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해가 질 때까지 서성였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와, 끝났다!'가 아니고, '이렇게 끝나는 게 맞나?' 싶은 미련이 남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시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해외 반응도 고무적이라 제작사와 플랫폼에서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김도기를 연기할 수 있는 영광을 또 주신다면 마다치 않을 거다. 다만, 모든 무지개운수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고, '모범택시'의 아버지인 오상호 작가가 모여야지만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이 안 해도 '난 할 거야!'는 아닌 것 같다. 하하.”

“'모범택시'에서는 시즌1~3동안 같은 액션팀과 했다. 시즌1에서는 호흡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고, 테이크도 여러 번 촬영했다. 그런데 시즌2, 3을 지나면서는 '척하면 척'이 됐다. 제가 오히려 의욕적으로 변해서 무술팀이 '워워'하기 바빴다. 오랜 시간 만난 만큼 호흡이 잘 맞아서 퍼포먼스가 더 좋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도가니가 성할 때까지 김도기를 연기하고 싶다는 말은 지금도 진심이다. 외적으로 표현되는 직업인 만큼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먹는 것도 신경 쓴다. 인스턴트 식품, 정크푸드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위주의 식단을 웬만하면 유지하고 있다. 비타민 복용은 안 먹는 것보단 먹는 게 낫다 싶어서 비타민C가 눈에 보이면 꼭 먹는다.”
Q. '모범택시' 시리즈를 이끌며 5년간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연기자로서 유연해졌다. 타이틀 롤이 벅찬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조금이나마 의지처가 되고 싶고, 조언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연기뿐만 아니라 그 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는 연차나 상황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무게감이라고나 할까. 난 아직 신인인 것 같은데. 이제는 뭔가 주축이 되어가면서 주변에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히 있다. 해마다 나오는 신인들을 더 잘 이끌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그게 행동으로 나오는 것 같다. 책임감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게 비단 '모범택시' 시리즈만이 아니라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택 이유, 결과물과 그에 대한 평가, 수치까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연기는 기본이고, 연기만 잘해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Q. 작품 선택에 대한 고민도 많은 것 같다.
“어렸을 적 봤던 영화, 드라마가 아직도 내게 영향을 미친다. '이 작품이 내게 이런 감동을 줬지, 이런 슬픔을 줬어' 이런 식으로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의 선택들이 가치관이든 무의식이든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 신중해진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유로움이나 사고방식이 자유롭기보다 틀에 박힐까 봐 걱정도 된다. 과감하게 틀을 탈피하는 작품도 하고 싶다. 정의로운 캐릭터도 하지만, 저렇게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 역할도 할 수 있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도 하네, 사랑 이야기를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등의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정의 내려지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 업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지 않나. 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단되는 부분들,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결정과 의견을 솔직히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노력이 모이는 것 아니냐. 그게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여질 지도 분명 고민은 되지만, 각각의 작품이 지니는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희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Q. 소속사 컴퍼니온 대표로서 회사를 운영한 지 5년이 됐다. 어떤가.
“자조 섞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재의 제가 회사 차리기 직전의 제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해'라는 거다. 하하! 5년 전에 나름 내놓은 예측들이 전부 다 다르게 흘러간다. 고정비만 해도 5년 후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뛰었다. 이전의 내게 '그걸 알고도 할 수 있겠니?' 자문하고 싶다. 최근 몇 년 새 여러 배우 매니저먼트사가 문을 닫았다. 그 위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너무나도 운이 좋게 5년간 쉬지 않고 몸을 갈아가면서 활동했기에 운영이 가능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자의 반, 타의 반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온전하고 건강한 회사가 되려면 제가 활동을 안 해도 재정적, 비전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아직 퀘스천 마크다. 제게는 큰 숙제다. 그 부분을 헤쳐 가기 위해 많은 고민, 노력이 필요할 거다. 그래도 의지는 크다. 저와 함께 하는 직원 중 떠난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들 오래 호흡을 맞춰서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 그러나 사실 아직도 직원들 월급 전날에는 머리가 하얘진다.”
Q. 올해 계획은?
“올해는 팬들을 자주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조만간 차기작을 준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저를 많이 써먹어 달라. 신인 배우라 생각하고 찾아 달라. 많이 좀 도와주십쇼. 하하!”
유지혜 엔터뉴스팀 기자 yu.jihye1@jtbc.co.kr
사진=컴퍼니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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