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30년' 베테랑 사장이 "수출 1조 달러 할 수 있다" 자신한 근거는

오지혜 2026. 1. 2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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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인터뷰
역대 최대 수출 원동력은 '다변화'
①수출 주체 ②시장 ③품목 다변화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사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코트라 본사에서 쏟아지는 통상 위협을 뚫고 우리 수출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다. 박시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산업의 숨통을 조인 2025년 대한민국은 걱정에 휩싸였다. 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양대 수출시장 중 하나인 미국의 고율관세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끝내 극복했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 7,097억 원을 기록하며 수출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기쁨도 잠시, 연초부터 또다시 통상 위협이 쏟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등 더 나빠진 통상 환경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규범)로 굳어졌다. 한국은 어떻게 수출 7,000억 달러 금자탑을 지키고 나아가 1조 달러 시대로 한 번 더 발돋움할 수 있을까.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서 강경성 사장에게 질문했더니 "견고한 다변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출시장의 최전선에서 한국 기업을 지원하는 그는 "전통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수출 주체, 공략 시장, 상품 등을 다양하게 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93년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해 무역투자실장,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산업부 1·2차관 등을 지내며 한국 무역의 희로애락을 30년 동안 지켜본 전문가의 확신이 담긴 분석이었다. 다음은 강 사장과의 일문일답.


7000억 달러 수출의 세 가지 원동력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지난해 수출 7,000억 달러를 돌파한 원동력을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상 최대 수출액을 기록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나.

"무엇보다 수출기업과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우 감사드린다. 이 밖에도 세 가지 원동력을 꼽을 수 있다. ①다변화 ②세계 최고 수준인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③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 민관이 전략적으로 원팀으로 움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출 다변화는 정부가 늘 추진하던 과제였다. 이제 성공한 것인가.

"20~30년 전부터 정부의 무역정책 중 최우선이 다변화였는데 15대 주력 수출 품목과 주력 수출 시장에 변화가 크지 않았다. 그동안 쌓았던 노력이 임계치에 도달하며 2, 3년 전쯤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눈에 띄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먼저 수출 주체가 바뀌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이 늘어나면서 수출기업 10만 개 시대가 열렸다. 다음이 시장의 다변화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 불리는 신흥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커지고 있다. 또한 품목도 다양해졌다. 우리의 주력 제품은 항상 조선·철강·석화 중심이었는데 식품·화장품 등 5대 소비재 수출 비중이 2015년 4.0%에서 지난해 6.5%로 커졌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도 수출액 증가는 반도체 등 기존 주력 품목이 이끌었다.

"그래서 소비재와 함께 제조업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해 수출 실적 상승을 주도한 것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이다. 관세 조치나 인공지능(AI) 기술 확산 등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주력 제조업계가 꾸준히 혁신하고 내공을 쌓으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덕에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에 대한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실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제조업과 소비재가 함께 활약해야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 "판이 흔들릴 때 한국에 기회 있다"

9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부두에서 수출용 차량이 선적을 앞두고 있다. 뉴스1

-올해도 쉽지 않다. 미국은 반도체 관세 카드를 흔들고, 유럽연합(EU)도 심상찮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됐다. 보호무역 강화, 자국 중심주의, 산업·기술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매년 반복되고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묶어 '경제안보시대'라 정의한다. 그간 주류였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럼에도 한국 무역의 역사를 돌아보면 희망은 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은 수출 강대국이 점령한 시장에 늘 도전하는 식이었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크고 판이 흔들릴 때 기회가 왔다."

-우리 산업계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의 급부상, 미국의 자국 제조업 부흥, 일본의 제조업 재무장 등이 겹친 상황에서 보유한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산업을 키워야 한다. 후발 주자는 남들과 똑같이 움직이면 따라잡을 수 없다. 일례로 HBM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메모리로 돈을 잘 벌었을 때 시스템반도체를 키워야 했다. 하지만 머뭇거리다 선두 주자와 격차가 벌어졌다. HBM이 추격할 기회를 한 번 더 줬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HBM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자본으로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을 과감하게 인수하는 등 투자를 확대한다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코트라 본사에서 우리 산업이 가진 수출 경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필요하다.

"물론이다. 중국은 보조금으로, 미국은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관세를 동원하고 있다. 자국 산업 부흥을 위해 보조금을 쓰는 나라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WTO에 문제 제기를 안 한다. 남들이 할 때는 우리도 과감히 해야 한다.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관세 협상으로 한국 기업이 미국 내 생산을 늘려야 하는데, 여기에도 기회가 있을까.

"아무리 미국 내에서 생산해도 공급망 전체를 미국에서 꾸리기는 쉽지 않다. 미국 생산에 필요한 소재·부품·장비는 한국에서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 또 고부가가치 상품은 국내에서 개발, 생산하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면 미국의 제조업 생산과 한국의 수출이 동시에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변화 갖춘다면 1조 달러 수출도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한국의 주력 수출품으로 부상한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진열돼 있다. 뉴스1

-다변화 성과인 소비재 수출 증가도 단기적 현상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대유행 등 한류로 소비재 수출 확대의 기회를 잡은 것은 맞다. 한류로 세계인의 마음을 샀다고 생각한다. 소비재는 먹고, 바르고, 마시는 것들이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수출이 불가능하다. 한류로 신뢰가 한번 싹텄기 때문에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라 본다. 한국 소비재의 품질, 가성비를 증명하고 한류와 연계해 나간다면 지속 가능하다."

-지속적인 소비재 수출을 위해 유통망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인이 외국 유통 플랫폼에서 직접 구매(직구)하는 규모가 60억 달러고, 외국인들이 한국 플랫폼에서 직구하는 '역(逆)직구'는 30억 달러 수준이다. 역직구 플랫폼 구축이 늦었고 언어 장벽 등 세계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코트라가 올해 유통기업 해외 진출 신규 사업으로 예산을 492억 원 확보했고 이 중 상당수를 역직구 활성화에 투자할 것이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신흥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어떤 진출 전략이 효과적인가.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과 막대한 물량 공세, 미국은 국방 외교, 일본은 공적개발원조(ODA) 등으로 세를 키우고 있다. 전 세계 최초로 폐허를 딛고 수출로 선진국이 된 한국이야말로 개발도상국들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①현지화 ②무역관별 거점을 활용한 지역별 맞춤형 전략 도출 ③한류를 레버리지로 활용하기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난해 11월 11~13일 열린 '한-남아공 비즈니스 플라자'를 찾은 현지 시민들이 K뷰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제공

-국정 과제인 수출 1조 달러 시대를 열 가능성은.

"한국이 1조 달러 수출을 하려면 43%를 늘려야 한다. 상당히 도전적 목표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거대 시장들과 거리가 멀어 품질과 가성비가 없으면 수출이 어렵다. 이런 여건에서 7,000억 달러 수출을 해낸 것 자체가 실력을 증명한 것이다. 핵심은 결국 다변화다. 지금 기세를 잡았고 이를 이어가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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