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도시생활] 빗물도 재활용, 바람도 설계…거창式 도시 리모델링의 반전

정용진 2026. 1. 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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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체질을 바꾸다, 거창이 설계한 녹색 순환도시 비전
바람길과 도시숲으로 연결된 기후적응형 생태 인프라 구축
노후도심을 되살리는 김천지구, 사람 중심의 도시재생 실험
지속 가능한 거창, 데이터를 품은 스마트 그린전략의 완성

[지데일리] 사람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도시. 이 짧은 문장에 지금의 거창군이 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다. 인구 감소, 산업 공동화, 기후위기.

 

세 가지 거대 위협 앞에서 대다수 지방 도시들은 생존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정체돼 있다. 그러나 거창군은 달랐다.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을 선택했다.

 

 

극단적인 폭염과 폭우,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 일상이 된 시대, 지방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거창은 콘크리트 위의 도시가 아닌, 자연과 상생하는 그린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도로 대신 바람길을 만들고, 관목 사이에 숲을 심으며, 인간과 기후가 함께 숨 쉬는 도시로 변화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 거창군은 ‘도시바람길 숲’, ‘기후대응 도시숲’, ‘김천지구 도시재생’이라는 세 가지핵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단순한 환경 개선 사업이 아닌, 군민의 정주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다. 이 세 축의 전략은 군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보호하기 위한 도시계획인 동시에, 지방 소멸 위기에 맞선 \"지속 가능한 거점 도시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도시의 숨결을 바꾸는 녹색 동맥, ‘도시바람길 숲’

먼저, ‘도시바람길 숲 조성사업’은 거창군의 그린도시 비전의 중심에 있다. 총 15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다. 도시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녹색 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바람길 숲은 건계정~거열산성 진입도로~남하면~창포원을 잇는 18km의 대로를 중심으로 조성된다. 또 위천·황강을 따라 5km의 하천생성숲이 더해지고, 창포원 내부에는 디딤숲과 확산숲이 조성된다. 

 

도시 외곽에서 생성된 시원한 공기가 이 녹지 회랑을 따라 도심 깊숙이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자연형 냉방로’다.

2026년 착공해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업이 끝나면 ‘산의 바람이 도시를 식히는 구조’가 본격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심 온도를 평균 2~3도까지 낮추고, 미세먼지를 2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를 두고 “도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녹색 기반 사업”이라고 평가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기후적응형 도시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거창군 관계자는 “바람길 숲이 완성되면 도로는 이동통로를 넘어선 생명의 통로가 될 것”이라며 “한여름에도 군민이 숨쉬기 편한 도심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없는 ‘그린필터 도시’… 50억 원의 기후대응 도시숲

거창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기후대응 도시숲 조성사업’이다. 이는 도시의 대기환경을 바꿀 ‘공기 방어선 프로젝트’다. 2024년 산림청 공모에 선정되며 50억 원의 국비를 확보했고, 2025년 착공 후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조성 대상지는 거창복합차고지와 제2창포원 일원, 총 5헥타르 규모다. 특히 미세먼지 발생원이 많은 교통 요충지를 중심으로 숲이 집중적으로 조성된다. 대형 차량 통행로와 주차장을 감싸는 차단숲, 고속도로변 탄소저장숲 등이 설계되어 ‘숲의 벽’이 도심의 미세먼지 유입을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이 사업은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군은 토종 수종 위주의 식재 계획을 세워, 계절별 번식력과 탄소저장 능력까지 고려한 과학적 식생 설계를 도입했다. 완공 후에는 거창읍 일부 생활권에서 녹지율이 15% 이상 상승하고, 여름철 열섬 현상이 완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제2창포원 일대에 조성되는 숲은 “쉼과 필터의 공존 공간”이다. 주민에게는 휴식처를, 도시에겐 호흡기를 제공한다. 나무그늘 아래 공기청정기가 작동하듯, 거창의 도시숲은 사람의 숨결을 맑히는 ‘그린필터’로 기능할 것이다.

노후한 도심의 부활, 김천지구 도시재생으로 ‘콤팩트 그린시티’ 완성

도시의 젊음을 되찾는 일도 거창의 핵심 과제다. 군은 2024년 국토교통부 ‘우리동네살리기’ 공모에 선정되며, 83억 원 규모의 김천지구 도시재생사업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단순한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니라, 저탄소 생태 거점형 주거지 조성을 목표로 한다.

사업 대상지는 거창읍 김천리 일원으로, 노후 주택과 골목길 정비, 방범 CCTV 및 보안등 설치, 미세먼지 저감형 소공원 조성, 문화 커뮤니티 공간 신설 등 주민 체감도가 높은 인프라가 집중된다.

핵심 시설인 ‘쇠빛커뮤니티센터(700㎡)’는 돌봄·문화·소통이 결합된 복합 공간이다. 단열, 태양광, 자동조명, 빗물 재활용 등이 마련된 기후대응형 공공건축물로 계획되어 있다. 2025년 설계 공모, 2028년 준공을 목표로 하며, 완공 후에는 의료복지타운과 연계해 주민이 걸어서 일상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콤팩트 그린시티’ 모델이 완성된다.

이 도시재생의 의미는 단순히 낡은 골목을 정비하는 게 아니다. 과거의 공간에 새로운 도시 관계를 불어넣는 실험이다. 쇠빛커뮤니티센터가 문을 열면, 그 주변 골목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소상공인의 손길이 돌아올 것이다. 녹지와 문화, 안전이 결합된 도심 회복의 장이다.

데이터로 대응하는 기후위기, 스마트 농업으로 확장

거창군의 기후혁신은 도시재생을 넘어 지역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기상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영농 기술’ 도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군은 기상센서와 토양수분 측정기, 자동 관수 시스템을 도입해 농가의 온도·습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작물 성장 정보를 분석해 자동으로 급수량을 조절하거나 일조량을 예측하는 첨단 기술이 이미 일부 지역에서 테스트 중이다. 이는 농업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자원 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거창의 기후 대응 전략은 도시-자연-산업을 하나의 생태망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도시, ‘누가 머물고 싶은가’를 묻다

거창군의 정책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군민이 머물고 싶은 도시.” 이 문장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목표이며 철학이다. 군은 도시정책을 수립할 때 ‘군민의 체감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행정 편의적 사업이 아닌 생활 밀착형 기후대응 모델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도시정책은 단지 나무를 심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사람이 실제로 그 그늘을 느끼고, 공기 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 진짜 혁신이다. 거창군은 이 철학을 기반으로 도시숲과 도시재생, 농업 혁신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연결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구축 방법은

하지만 도전만큼 과제도 많다. 거창군이 그린도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선 세 가지 숙제가 남는다.

먼저 장기적 관리 체계 확립이다. 숲은 조성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 조성 이후에도 정비·보전·활용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주민참여형 숲 관리단, 지역 청년이 참여하는 ‘그린잡(Green Job)’ 프로그램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정책의 연속성 확보다. 지자체의 정책은 리더십 교체에 따라 흔들리기 쉽다. 거창군의 녹색도시 비전은 10년, 20년 단위의 지속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법적·재정적 기반을 확보해 행정의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스마트 인프라 통합이다. 도시숲·교통·주거·농업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 트윈(Twin)으로 연결해 관리한다면, 기후이상 예측과 정책 대응 속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거창군은 향후 ‘기후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인공지능 기반 맞춤형 행정을 실현할 계획이다.

이 세 가지 과제가 해결된다면, 거창은 단순한 녹색행정도시를 넘어 전국 지자체의 ‘탄소적응도시 1번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기후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이 말은 거창군 관계자의 한 문장이지만, 동시에 이 시대 모든 도시가 안고 살아가야 할 선언이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여파가 도시의 온도, 숨쉬는 공기, 우리가 먹는 식탁의 재료에까지 스며들었다.

거창군은 그 현실을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정책보다 삶을 바꾸고, 인프라보다 문화로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시민이 녹색 도시의 변화를 ‘보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변화의 목표다.

도시의 미래는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사람이 얼마나 편안히 숨 쉴 수 있는가.” 기후위기가 도시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면, 거창군은 그 도화지 위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한민국형 녹색 도시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 조용한 군청의 노력과 실험이 언젠가 대한민국 지방도시 전체의 기후정책 교본이 될지 모른다. 그 시작점은 다름 아닌 지금, 이곳 거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