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삶(生)'과 '죽음(死)'의 정치

인생을 말할 때 '삶' 혹은 '죽음'이라 따로 말하지 않고 '삶과 죽음'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시작된 연극이 막이 내려오면서 끝나듯이 한 인간도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죽음의 막이 내려오면서 종결된다.
이처럼 인생 자체는 삶과 죽음이란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다. 이 때문에 삶과 죽음, 즉 생(生)과 사(死)로 합성된 단어나 표현이 많다. '생사를 나눈 전우' '생사가 걸린 문제' '생사 여부' '생사 기로' 등. 이 같은 단어가 나올 때는 항상 생(生)이 먼저 나오고 사(死)가 뒤에 따라 온다.
'생'과 '사'를 순서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순서의 문제로 본다면 열심히 산다 한들 결국 죽음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탄식도 과장은 아니다. 단어 조합 가운데 유독 사(死)가 앞에 나오고 뒤에 생(生)이 오는 단어가 있다. '사생결단'(死生決斷)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강조한 군사적·철학적 원칙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사필즉생, 생즉필사'(死必卽生, 生卽必死)도 있다. 현대 정치에서는 책임을 각오한 권력은 살아남고, 자리에 집착한 권력은 무너진다는 의미로도 적용된다. 정치에서 '사필즉생'은 표를 잃을 각오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공천을 포기할 각오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정치판에서 이러한 각오는 '무모함'으로 취급된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하지만, 정작 죽기를 강조하는 순간은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고 자기 진영의 오류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사필즉생'의 정치이자, '큰 정치'다.
살기 위해 계산하는 정치는 수명이 짧다. 원칙을 유보한 순간부터 정치 생명은 단축된다. 타협은 필요하지만, 타협이 일상이 되면 신념은 사라진다. 신념 없는 정치의 끝은 무관심과 냉소다. '생즉필사'의 전형적인 징후다. 사필즉생은 결코 극단이 아니다. 정치가 본래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자세다.
정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삶의 붕괴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삶의 무게를 외면하는 순간, 정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삶을 외면한 정치는 결국 신뢰를 잃어 정권마저 내려놓게 된다. 국민은 도망치지 않는 정치를 원한다. 위기 앞에서 책임을 떠안고, 불리해도 물러서지 않으며, 잘못했을 때 숨지 않는 권력.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정치다.
/김명균 주필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