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주의 농사와 농촌에 관한 이야기] (16) 여성 차별의 그늘
한국 농촌 어디든 있었던 비정한 악습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던 젊고 가난한 사람들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팔려가던 때가 있었다. 일제시대 일본인 업자들의 직업 알선이 아닌 노동력 착취를 숨기고 감행한 이민 사업 명목이었다.
혼인해서 자식을 둔 이들은 자식을 고향에 두고 갔지만 홀몸인 이들은 하와이에 살면서 고향 여성들을 짝으로 삼았는데, 이 일 또한 일본인 업자들이 도맡았다. 처녀가 아닌 술집 여성이나 혼인했다가 불미스런 일로 이혼한 여성들을 골라서 적당히 말을 꾸며내서 하와이 총각한테 소개하는 직업이었다.
총각한테는 한국처녀라고 속이고, 여성에게는 이민 가서 성공한 남자라고 속였다. 더러는 그런대로 부부가 되었지만, 끝내 서로가 속은 줄 알고는 헤어졌다. 이때 갈 곳 없는 여성들은 대부분 험한 일에 몸을 던져 넣어야 했다. 일본 업자들은 그렇게 되기를 계획했던 것이다.
부부로 사는 이들은 한국에 살 때보다 훨씬 더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자식을 낳고 길렀다. 생기는 대로 낳다 보니 예사로 서너 명씩으로 불어났다. 여전히 가난에 붙들려 살다 보니 아이들을 변변히 가르치기는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끼니 걱정이 크고 무거웠다.
먹고살기 힘든 형편에 먹는 입 하나 덜기 위한 방법으로 누군가가 먼저 선택한 것이 어린 딸아이를 도회지 낯선 곳에 내다 버리는 짓이었다. 너도나도 그 짓을 따라했다. 유독 딸자식을 내다버리는 그 비정함은 한국의 농촌 어디서든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오래되고 뒤틀린 생존 관습이었다.
여성을 차별하는 이 악습은 하와이로 이주해 온 뒤에도 떨쳐내지 못한 더러운 인습의 잔혹사였다. 그렇게 버려진 어린 딸들은 도회지 음습한 곳 여기저기서 모여 거지가 되거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비인간적 몰골로 떠돌더라는 이야기는, 미국에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몇몇 책들 안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 참으로 아프고, 부끄럽다.
그런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고, 헌법도 갖춰졌으며, 남녀 유권자가 동등한 투표로 대통령을 뽑고, 남녀 차별 없이 국민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뒤에도, 농촌의 가난한 집에서는 식량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어린 딸들을 내다버리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주로 장날이나 기차역 대합실, 버스정류장에 버려진 어린 딸들은 겨우 걷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부모 이름, 집주소를 모르며, 할머니나 어머니를 따라와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 해놓고는 안 나타났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아이들은 그때부터 두려움과 배고픔으로 떨고 울면서,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험한 세상에 버려져서 비정함의 그늘로 떠밀려 들어갔다.
대중가수이자 작곡가인 이적의 노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노랫말을 보면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그려진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