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전환, 속으로는 화석연료 연장… 일본 '전환금융'의 민낯
에너지·산업 전환이 본격화된 2026년 한국을 앞두고,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는 일본 사례를 통해 전환금융과 지역 에너지 전환의 조건을 살폈다. <기자말>
[녹색전환연구소 오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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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수도 도쿄의 도심부 전경. 고층건물과 교통망, 대규모 에너지 소비 시설이 밀집한 일본 최대의 경제·산업 중심지다. |
| ⓒ 녹색전환연구소 |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50년까지 약 2조7000억 달러(약 3670조 원) 규모의 누적 투자가 필요하다. 연평균으로 보면 매년 약 1020억 달러(약 150조 원) 수준이다. 2023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6% 해당하는 규모로, 에너지 시스템 탈탄소화에 필요한 비용만 산정한 결과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이다. 전환금융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존 고탄소 업종이 친환경 방식으로 제조공정과 설비를 전환하도록 돕는 투자와 자금을 말한다.
한국 역시 전환금융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대한민국 녹색전환(K-GX)' 전략을 통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산업 전환을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정부는 전환금융의 국내 도입을 돕고자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참고하는 중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외부에서 찾고 부러워한다. 특히, 한국의 전환정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일본의 전환금융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구조처럼 인식되곤 한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의 전환금융이 실제로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인지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녹색전환연구소는 일본으로 향했다. 정부·금융·산업이 '전환'을 어떻게 정의하고 실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이해관계와 현실적 제약이 작동하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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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10월 2일 '아시아 GX 컨소시엄'이 일본 수도 도쿄에서 고위급 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은 탈탄소화를 향해 단계적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 방식인 ‘전환금융’을 촉진하기 위해 구성됐다. |
| ⓒ 일본 금융청 |
일본의 GX 추진전략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 전반을 녹색성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간과 공공이 10년에 걸쳐 150조 엔(약 1400조 원) 규모의 전환금융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조 엔(약 186조 원) 규모의 GX 경제이행채(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덕분에 세간에서 일본은 '전환 선도국'으로 자연스럽게 불리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여러 이해관계자들은 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전환금융이 탈탄소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상 '전환금융 프레임워크'는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발전사 관계자는 전환금융이 기존 화석연료에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 암모니아로 이어지는 단계적 전환을 이끌 '일본형 해법'이라 설명했다. 금융기관 관계자 역시 "전환금융이 고탄소 산업의 전환을 이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형만 화려했다. 실제 일본의 전환금융은 '전환'의 언어를 활용해 화석연료 기반 체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여러 국제기구와 시민단체(NGO)들이 오랫동안 제기해온 일본 전환정책의 구조적 그린워싱 문제 역시 이러한 괴리를 보여준다.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소위 '전환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내세운 대표적 이니셔티브가 '아시아 제로에미션 커뮤니티(AZEC, Asia Zero Emission Community)'다. 이는 일본 등 아시아 태평양 일대 11개국이 자국 탈탄소를 위해 기술·정책·투자 협력을 추진하는 다자협력 이니셔티브다.
하지만 AZEC은 재생에너지보다는 LNG나 암모니아 혼소 또는 탄소포집·활용 ·저장(CCUS) 같은 화석연료 기반 기술에 훨씬 더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일부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AZEC 협력 항목 중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7%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화석연료와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이와 관련해 그린피스 말레이시아 지부는 AZEC이 "가스·석탄 중심 인프라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아태 지역의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AZEC은 이름과 달리 실제 기능은 화석연료 인프라 수명을 연장하는 데 가까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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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중부 후쿠이현 쓰루가시에 위치한 '쓰루가 화력발전소' 앞에 석탄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은 2011년 7월 촬영된 모습으로, 당시 새로 정비된 외항 항만시설을 통해 연료 하역과 물류가 이뤄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
| ⓒ Joel Abroad, Flickr |
이러한 행보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기후 리더십을 강조하는 태도와 상반된다. 데이터 기반 미디어 플랫폼 에너지 트래커 아시아(ETA) 역시 일본이 동남아 여러 국가의 에너지 계획 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석탄·LNG 중심의 경로를 2050년 이후까지 이어가도록 구조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자국의 발전·가스·플랜트 산업에 유리한 공급망을 유지하려는 금융 전략이 병행된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본이 전환금융을 기반으로 '전환 기술'이라 홍보해 온 암모니아 혼소와 CCUS 또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영역이다. 암모니아 혼소는 기존 석탄발전소에서 석탄과 함께 암모니아를 섞어 연료로 태우는 방식이다. 따라서 사실상 화석연료를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독일 기후 싱크탱크인 뉴클라이밋연구소는 암모니아 혼소는 비용 대비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낮고 실질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또한 암모니아 혼소만으로는 충분한 감축효과나 시장 참여 유인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CCUS 역시 비용 부담과 기술적 불확실성이 큰 만큼, 대규모 감축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회의적 평가가 많다.
'전환'의 이름을 단 화석연료 중심 전략에 대한 이러한 국제적 평가와 이론적 우려는 일본 현장에서 일정 부분 확인됐다.
먼저 일본 발전사들은 LNG와 석탄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현행 설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암모니아·수소 혼소 실증을 확대하고 있었다는 점이 실제로 확인됐다. 연구소가 찾은 한 발전사는 LNG 외에 암모니아 혼소 실증을 병행하며 중장기적 대체 구조를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화석연료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기술 도입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접근이 실질적인 대체로 이어질지, 혹은 기존 체계의 점진적 보완에 그칠지는 향후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금융 분야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되었다. 전환금융이 석탄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보다는 단계적 전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 전환금융을 활용해 화석발전소를 닫지 않고 운영을 지속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제기됐다.
투자자들 역시 암모니아 혼소의 비용 부담과 감축효과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경제성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술들이 전환 전략의 한 축으로 계속 검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식 전환 기술 접근이 실제 감축효과와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일정한 긴장과 제약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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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전환금융 관련 인터뷰 및 면담 현장. 녹색전환연구소는 금융기관과 투자자 등 현지 이해관계자들을 여럿 만나 일본 전환금융의 설계 방식과 투자 기준, 실제 자금 운용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 ⓒ 녹색전환연구소 |
일본에서 만난 한 학계 관계자는 연구소가 전환금융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배경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전환금융은 발행 규모와 정책 스토리텔링면에서는 크지만, 임계값이나 전생애주기(LCA) 기준 부재 등으로 신뢰도나 자금유입 면에서 한계가 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이 일본식 느슨한 기준과 기술 로드맵 중심의 모델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 전환은 산업 구조와 자금 흐름, 기술 선택을 실질적 감축목표에 맞게 재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제도로 구현하는 단계에서는 전환 기준의 명확성, 검증체계의 독립성, 산업계 로드맵의 한계 등 구조적 쟁점이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사례는 선언적 목표보다 자금과 기술 선택을 어떻게 구조화하느냐가 전환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은 특정 기술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 설정과 검증, 지속적 이행 점검을 중심에 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환의 핵심은 새로운 용어의 도입이 아니라 기존 구조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선아 경제전환팀 연구원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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