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이재명식 실용주의와 행정통합

1970년대 말 중국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십년 동란(十年動亂)이라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가져다준 후유증 탓이었다. 인민들은 혁명이나 공산주의 같은 사상학습에 피폐해졌고 그들의 미래는 비관적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침체를 면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면서 일본과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는 물론이고 북한에게 조차 뒤처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중국 인민들 사이에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져 나갔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鄧小平)은 그 유명한 '부관흑묘백묘(不管黑猫白猫) 척도로서(捉到老鼠) 취시호묘(就是好猫)'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란 화두를 던졌다. 줄여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라는 이 말은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에 관계없이 인민들이 당면한 문제인 생활 수준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중국의 정치 이념인 사회주의는 고수하되 경제정책은 개방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중국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으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잘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것이었다. 흑묘백묘론은 1985년께부터 덩샤오핑이 주창한 "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부자가 돼라. 그리고 낙오된 사람을 도와라"는 선부론(先富論)과 함께 중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밑바탕이 됐다.
비슷한 용어로 '남파북파론(南爬北爬論)'이 있다. '높은 산을 오를 때 남쪽으로 오르든 북쪽으로 오르든 산 정상에만 오르면 된다'는 뜻을 지닌 4자 성어다.
중국에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다면 베트남에는 호찌민(胡志明)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베트남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으로 격리되고 경제적 위기는 악화일로였다.
1975년 베트남은 20년 동안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간 전쟁을 끝내고 남북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인프라는 파괴됐고 경제는 완전히 붕괴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1978년 캄보디아 침공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까지 겪으면서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소련식 중앙계획경제 체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정부가 모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면서 농민들은 집단농장에서 일했고 개인 소유는 극도로 제한됐다. 이런 체제는 전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작동됐지만 평화 시기에는 한여름에 겨울옷이었다. 국가의 생산성은 바닥을 쳤고 물자는 극도로 부족했다.
1980년대 중반, 베트남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도이모이(Doi Moi)'정책이다. 베트남어로 '변경한다'는 뜻의 '도이(doi)'와 '새롭게'라는 의미의 '모이(moi)'가 합쳐진 용어로 '쇄신'을 의미한다
'도이모이' 정책은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제기된 개혁ㆍ개방정책의 슬로건으로 채택됐다.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 발전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도이모이 정책이 추진된 이후 40년 동안 베트남은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베트남 지도부의 실용적 리더십은 베트남 건국과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찌민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호찌민 사상은 개인 우상화와 절대 권력을 배격하면서 국가 발전에 실익이 되는 일은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실용 사상에 바탕을 두고 설계됐다.
이 같은 실용주의 정책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었으나 현실을 무시한 이념이 결코 밥을 먹여 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보수의 길을 걸었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진보의 길을 선택한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으면서 실용주의 정책에 있어서는 이념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드러냈다.
반면에 이재명 현 대통령은 정책의 실용성을 놓고는 예전의 같은 계보의 대통령과 확연히 다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이후 진보는 물론 보수를 통틀어서 어느 대통령보다도 실용주의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덩샤오핑이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실용주의 정책을 폈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현장 중심의 실용주의를 실행하는데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떤가?' 하는 식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이 '5극3특' 체제를 통한 행정통합 시도로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에서 이미 시동이 걸렸다.
현재의 수도권 '1극' 체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수십 년 걸릴 수 있는 것을 반년 만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놓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처방이 완벽하거나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것은 일부의 염원성 확신일 뿐 아직은 그 누구도 100% 장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하다가 실패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눌러앉아 있다가 참혹한 현실을 맞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자세인 것은 분명하다.
삶 자체마저 배고프고 힘든 국민에게 끝없는 이념 논쟁은 어쩌면 배 부른자들의 이상일 수 있다. 자신의 이념을 고수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분명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베트남의 호찌민은 구국의 지도자라 하겠다. 이재명도 실용주의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이뤄내 같은 반열에 오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