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4장] 김개남(313회)

박봉양의 힐난은 멈추지 않았다.
"너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거렁뱅이 새끼들이여. 일은 하기 싫고, 잘 사는 놈들은 꼴보기 싫고, 놀고는 싶고, 그래서 일부 벼슬아치들 탈선을 보고 되도 않은 명분을 걸어서 나라에 시비 거는디 내 폴새 그런 꼬락서니 알아보았제. 부적이 너그들 먹여살리는 생명줄로 아는디 나무막대에 똥칠하여서 무슨 신주 단지인 양 몸에 달고 다니는 것이 성한 사람이 보면 꼭 세상에 없는 패자들이더랑께. 부끄러움은 모두 나라님이라고 하는디, 사실은 너그들 몫이여. 언제까지 이렇게 비르적거리며 살 것이여?"
전봉준이 설득하려 왔는데 오히려 박봉양이 더 방방 뜨는 것이다.
"박처사, 그러는 것이 아니네.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백성들이 일어나야 한다마시."
"뭔 개소리여. 백성은 나라가 말하는 질서에 두 말없이 따라야 하거늘, 좆 났다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난리 깨춤을 추는 것이냐고? 앗싸리 말해서 너그들을 조사부러야 내 맘이 편하고, 나라가 안심이다."
"박봉양답지 않구먼. 당신은 애초에 동학에 입도한 사람 아닌가. 부적을 달고, 주문을 외고, 시천주조화정을 달달 외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이렇게 표변하다니?"
"그랑께 하는 말이시. 진리를 찾고, 평등사상, 인본주의, 그리고 후천개벽 신념 어쩌고 하는디 당초 허깨비 장난 같더랑께. 논 갈고, 밭 갈고, 여물 쑤고 하는 것에 아무런 쓸모짝이 없더란 말이시. 사람 허파에 잔뜩 바람만 집어넣고 내세가 어떻고, 미륵세상이 어떻고, 새로운 개벽 세상이 어떻고 끼리끼리 모여서 이상한 암호 문자를 긋지만 나오는 것은 여전히 굶주림뿐이여. 생산이 없는 곳에서 무엇이 나오겄는가. 이러다 내 농사 다 망치겄다 싶어서 뛰어나와부렀제. 새로운 세상의 도래가 아니라 패자들의 귀신 씻나락 까먹는 개소리더랑께. 그것으로 세상을 구하겄는가?"
"어저께의 박봉양이 아니시. 일을 해도 뜻이 있고, 밥을 먹어도 의미를 생각하고, 삶을 살아도 세상이 바른가를 살펴봐야 한당게."
"환장하겄네. 이 사람아, 민중의 불만을 조직적으로 고조시켜서 나라를 뒤집자는 것 아녀? 실력도 없으면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人乃天主)과 만민평등의 윤리,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가르침으로 왕정을 붕괴시킨다고? 이런 시러베 같은 자들을 나가 용서할깨미? 당신도 당장 멱을 따고 싶지만 옛정이 그리워서 시방 놔주는 것이여. 오늘부로 당신과 나는 천년만년 안본 사이여. 다섯 셀 때까지 안 나가면 죽여불 것잉께 당장 꺼져. 하나 둘 서이 너이…"
전봉준은 물러났다. 한번 동학에 들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면 더 동학에 반기를 드는 것을 목격하고, 그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그렇다. 허상을 붙들지 않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견고한 이론과 당찬 실천력. 그런 뜻에서 김개남의 전략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숨 쉴 틈 없이 밀어붙여 도에 이르도록 이르고, 그런 연후에 과감히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전주와 금구의 막영으로 돌아갔다.
전봉준이 박봉양을 만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김개남이 불같이 화를 냈다,
"공사 구분을 못하는 자구먼. 사사로운 정을 가지고 찾아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것도 남의 전선에 뛰어와서 적장과 따따부따한다? 한심한 생각이로고!"
그는 휘하 부대에 명하였다.
"박봉양 군을 보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라. 저들이 고을의 부호 집을 약탈하면서 동학군이 저지른다고 소문내고, 여자 겁탈도 동학군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 관과 민보군이 짜고 우리를 이간질하니께 백성과 우리 사이가 묘하게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진도 또한 막히고 있다. 박봉양부터 잡아라. 그래야 남원성이 평정된다."
한편 박봉양은 남원부사 윤명관을 찾았다.
"적당(敵黨)이 날마다 모여서 음모를 꾸미기를 운봉의 민보군을 개잡듯이 하는 것이오. 방아치에 배치한 선발군을 고놈들이 아작을 내부렀소이다. 영감께서 보내준다는 지원군이 아직 오들 안 항께 허천나게 당하고, 대신에 복수혈전을 펴지 못하고 있소이다. 어서 지원 군사를 풀어주시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