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ISSUE] ‘철의 자부심’에서 ‘체류의 가치’로…포항 관광 성공 방정식

김웅희 기자 2026. 1.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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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성장의 그늘…포항이 마주한 한계
바다를 관광 전략으로 선택
해양·산업·문화를 잇는 관광 구상
영일만과 호미반도, 관광 중심축 떠올라
산업 유산 재해석…기억에서 자산으로
사계절 여는 해양 레저와 체험 관광
축제가 도시를 움직여…불빛과 해맞이의 힘
스치며 가는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
체류형 관광 위한 인프라 대전환
관광이 만든 변화 지역 경제 스며들어
국내 최초 해상 누각인 '영일대' 야경. 포항시 제공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시다. 1960년대 이후 포항의 아침은 늘 철빛과 바닷바람이 함께했다. 거대한 용광로와 항만, 철로는 국가 성장의 현장이었다. '철의 도시'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산업의 성장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글로벌 경기 변화와 내수 침체, 인구 구조 변화가 동시에 밀려왔다. 청년층 유출과 인구 감소는 도시 활력을 약화시켰다. 산업 중심 구조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어려웠다.

포항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섰다. 이 도시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시선은 바다로 향했다. 영일만과 호미반도의 해안선, 일출과 파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다시 말해 관광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목표는 관광객 수 증가가 아닌 도시 체질 개선과 산업·문화·해양 자원의 통합이었다. 포항은 머무는 도시, 다시 찾는 도시를 지향했다.
국내 대표 일출 명소인 포항 호미곶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포항시 제공
포항의 대표 트레킹 코스인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포항시 제공

▲정책 방향과 전략

관광 정책은 세 갈래로 정리됐다. 해양 관광 강화와 산업 유산 활용, 문화·축제 중심 체류형 관광이다.

각각은 분리된 정책이 아니라, 도시 정체성을 다시 엮는 축이다. 포항은 특히 산업 이미지를 지우지 않았다. 포스코와 철강은 여전히 도시의 뿌리다.

이 같은 산업 유산을 교육과 체험 관광으로 확장했다. 기억의 공간을 현재의 자산으로 바꾸는 전략인 셈이다.

재정 여건도 뒷받침됐다. 포항시 예산은 2014년 1조 3천억 원에서 2025년 3조 원을 넘겼다. 관광·문화·레저 분야에 투자가 집중됐다. 그리고 인프라 확충과 교통, 숙박 개선이 동시에 추진됐다. 윤천수 관광산업과장은 "단순한 산업 도시를 넘어, 바다와 문화를 결합한 체류형 해양관광 거점 도시로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1조 3천억 원 규모의 포항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계획도. 포항시 제공

▲해양 자원 활용

포항의 바다는 도시의 경계가 아닌 도시의 중심이다. 영일만의 잔잔함과 호미반도의 거친 파도는 대비되는 매력을 만든다. 철강 시설과 항만 풍경은 바다와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 이미지를 완성했다.

영일대 해수욕장은 사계절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름 피서지를 넘어 체류형 관광지로 재구성됐다. 낮에는 활기, 밤에는 조명이 분위기를 만든다. 해상 누각, 산책로가 연결되고 카페와 공연, 거리 풍경이 이어진다. 관광객들의 머무는 시간이 늘며 소비 구조도 바뀌었다.

호미곶은 체험의 공간이다. 새벽부터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해맞이 광장과 등대박물관, 탐방로가 연계됐다. 축제와 프로그램은 체류 시간을 늘렸다.

레저 관광도 한 축이다. 스페이스워크는 대표 사례다. 2021년 11월 개장 이후 4년여 만에 누적 방문객 4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다 위를 걷는 체험은 세대 구분 없이 호응을 얻었다.

계절 편중을 줄이기 위한 시도도 이어졌다. 연중 관광 구조를 목표로 여름은 레저, 겨울은 해맞이와 야간 조명, 봄·가을은 문화 축제가 이어졌다.

현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호미곶 인근 상인은 "비수기인 겨울에도 외지 손님이 다소 늘었다"고 말했다. 해수욕장 주변 숙박업소도 비수기 완화를 체감하고 있다.

바다는 이제 관광 자산이자 도시 플랫폼으로, 포항 관광의 중심축이다.
포항시 흥해읍 이가리 해변의 닻 전망대. 포항시 제공
포항 환호공원에 있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체험형 조형물인 스페이스 워크. 포항시 제공

▲문화와 산업으로 확장

포항의 관광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해안 경관 중심이던 관광은 이제 도심의 문화와 산업으로 확장됐다.

관광은 특정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포항의 일상과 산업, 문화를 잇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 콘텐츠는 포항국제불빛축제다. 불꽃놀이에 음악과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했다. 낮과 밤의 경계도 허물었다. 해안과 도심을 잇는 축제 동선은 체류 시간을 늘렸다. 이는 숙박과 외식, 지역 상권 소비로 이어졌다. 축제를 중심으로 한 선순환 구조가 도심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업 관광도 포항 관광의 중요한 축이다. 포스코 역사박물관과 홍보관은 철강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스토리텔링과 체험으로 풀어냈다. 영일만과 제철소를 연계한 투어는 해안 경관과 산업 현장을 함께 보여줬다. 포항만의 차별화된 관광 경쟁력이라는 평가다.

관광 전략도 정교해졌다.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관광객 특성과 소비 패턴이 정책에 반영됐다. 가족 단위는 체험형 콘텐츠를 선호했다. 청년층은 야간 관광과 SNS 명소에 관심이 높았다. 중장년층과 외국인은 산업 현장과 전통문화 체험의 만족도가 컸다.

이 같은 전략은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포항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2014년 289만 명에서 2024년 715만 명으로 2.5배 늘었다.

문화 공간의 역할도 달라졌다. 시립미술관과 문화센터 등 공공 문화시설이 자연스럽게 관광객에게 개방됐다. 문화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됐다.

관광과 시민 생활 공간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도시는 '사는 곳'이자 '찾는 곳'이 되고 있다.

포항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바다를 넘어 도심으로, 관광을 넘어 문화와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해양·산업·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관광 모델은 포항을 지속 가능한 도시로 이끄는 기반이 되고 있다.
포항국제불빛축제'에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포항시 제공
지역 아동센터 학생들이 포스코 Park1538 홍보관을 견학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체류형 도시로 도약

포항시가 관광 전략을 전면 개편했다. 단순히 스치며 가는 도시에서 머물고 즐기는 '체류형 관광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목표는 명확하다. 2026년 관광객 1천만 명 달성이다.

시의 핵심 전략은 축제의 체질 개선이다. 호미곶 해맞이축전, 국제불빛축제, 영일대 뮤직&캠핑 페스타를 단순 관람형에서 체류형으로 전환했다. 볼거리 중심에서 숙박, 체험,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야간 콘텐츠를 강화해 관광객이 하룻밤 머물며 도심 야경을 즐기도록 유도했다.

콘텐츠와 인프라도 동시에 확충했다. SNS 맞춤형 영상과 인플루언서 협업으로 MZ세대와 해외 관광객을 공략했다. 시티투어는 당일 중심에서 1박 2일 코스로 개편했다.

단체 관광객을 위한 맞춤형 코스도 마련했다. 숙박 시설도 늘었다. 최근 1년 사이 관광호텔은 5개에서 7개로, 호스텔은 4개에서 6개로 증가했다. 외국인 민박업소는 2000년 32개에서 2025년 68개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체험형 콘텐츠도 늘렸다. 해양 레포츠와 전통 문화 체험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외국인을 위한 전통 게임과 문화 교류 행사도 활성화했다.

지역 거점 개발도 병행한다. 구룡포 '마을호텔'과 복합문화공간 '피어라몰'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한다. 영일대와 보경사는 장애 없는 '열린 관광지'로 조성된다. 연일 전통시장은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돼 체류형 콘텐츠의 한 축을 담당한다.

서비스 품질 향상에도 힘쓴다. 관광 아카데미를 운영해 종사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위생 관리를 강화한다. 이밖에 국제 관광 박람회와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행사 유치도 추진된다.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한 현지 설명회와 팸투어도 계획돼 있다. K-드라마 촬영지와 로컬 미식을 연계한 관광 상품도 눈길을 끈다. 이상현 관광컨벤션도시추진본부장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 올해 관광객 1천만 명 목표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포항시 제공
포항 사방기념공원 정상에 인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 당시 소품으로 사용됐던 어선 한 척이 놓여 있다. 포항시 제공

▲관광과 경제

관광객의 발길은 이제 단순한 구경을 넘어 지역 경제를 실질적으로 일으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난 곳은 영일대와 호미곶 등 주요 거점 상권이다. 관광객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자 상인들의 표정 또한 밝아졌다. 영일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모(39·여)씨는 "여름 성수기에는 매출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뛴다"고 전했다.

소비 구조도 질적으로 변했다.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시고 떠나던 패턴이 디저트와 식사로 이어졌다.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결과다. 외식업은 물론 지역 특산물 판매까지 동반 상승하며 지역 경제의 모세혈관에 피가 돌고 있다.

숙박업계도 체질 개선 효과를 누린다. 과거 포항 숙박은 여름 시즌에만 반짝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야간 경관과 체류형 콘텐츠가 보강되면서 '잠을 자고 가는 도시'로 정착했다. 숙박은 관광 소비 중 단가가 가장 높다. 숙박객 증가는 곧 지역 내 고정 지출 확대를 의미한다. 이는 교통과 체험 프로그램 등 연관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관광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화수분이다. 기존의 중후장대형 산업 구조에서는 한계가 있었던 청년과 여성층의 경제 참여가 활발해졌다. 개성 있는 카페, 로컬 굿즈 판매점, 체험형 관광 서비스 등 창업 열풍이 거세다. 관광 창업은 도시 재생과도 맞물려 있다. 낡은 골목에 젊은 감각이 입혀지며 도시는 생기를 되찾았다. 산업 도시 포항이 지녔던 경직된 이미지는 부드럽고 역동적인 '관광 경제'와 조화를 이루며 진화하고 있다.

소비 패턴도 타깃별로 뚜렷하다. 가족 단위는 숙박과 체험형 프로그램에 집중 투자한다. 청년층은 레포츠와 외식에, 중장년층과 외국인은 문화·산업 투어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관광객 한 명이 쓰고 가는 돈은 숙박, 외식, 교통비 등으로 골고루 분산된다. 맞춤형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지역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강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항 관광이 지역 내 총생산(GRDP)에 기여하는 효과를 수천억 원 규모로 분석한다. 포항의 관광 경제는 이제 시작이다. 축제와 이벤트가 일상의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되고 있다. 바다와 산업, 문화가 어우러진 포항의 관광은 이제 도시 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포항 철길숲에서 '야간관광' 접목한 야행 축제가 열리고 있다. 포항시 제공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포항 구룡포 근대화마을에 있다. 포항시 제공

▲지속 가능성의 과제

포항 관광의 성과만큼 과제도 분명하다. 현장의 목소리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를 보여준다.

서울에서 온 가족 관광객 박기봉(52)씨는 영일대 해수욕장과 호미곶 해맞이 광장을 둘러본 뒤 말했다. "바다와 도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요.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체험을 즐겼고, 어른들은 여유를 느꼈다고 했다. 포항 관광이 지향하는 체류형 구조가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은 보다 냉정하게 장점과 과제가 동시에 드러났다. 중국 다롄에서 온 푸샹(27)씨는 "해변과 등대, 산업 역사관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대중교통 접근성은 더 좋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계절별 관광 패턴은 포항 관광의 구조적 과제다. 여름은 해수욕과 레저, 가을은 축제와 등산, 겨울은 해맞이에 수요가 집중된다. 특정 시기에 관광객이 몰리는 구조는 여전히 뚜렷하다. 영일대 해수욕장 인근 횟집 주인 박모(49)씨는 "여름 성수기에는 피서객이 몰리며 앉을 자리가 모자라지만 비수기인 겨울에는 수요가 다소 줄어든다"며 아쉬워했다.

지역 간 불균형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일대와 호미곶 일대는 활기를 띠지만, 일부 외곽 지역은 관광 효과가 제한적이다.

환경 문제 역시 빠질 수 없다. 해안 정비와 레저 시설 확충은 관광 경쟁력을 높였지만, 자연 훼손 우려도 뒤따른다. 포항시는 생태 관리와 개발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한 방문객 증가보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대형 이벤트 중심 정책의 한계도 드러난다. 불빛축제와 해맞이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사후 관리와 연계 관광코스 운영은 보완이 필요하다. 교통, 안내 체계, 숙박과 편의시설 확충 역시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성과 다양성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계절 편중 완화, 지역 균형 발전, 환경 보전, 인프라 개선. 이 네 가지는 포항 관광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포항시 북구 여남동 앞바다에 조성된 포항 해상스카이워크. 포항시 제공
포항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포항시 제공

▲머무는 도시로 가는 시험대

포항 관광은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머무는 도시'로의 전환은 이제 방향이 아니라 과제가 됐다. 바다, 문화, 산업을 엮은 포항의 관광 전략은 도시의 모습뿐 아니라 시민들의 삶까지 바꾸고 있다.

바다는 휴식 공간이자 플랫폼이 됐다. 산업 유산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콘텐츠로 재해석된다. 축제와 관광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일상 속 체험과 소비로 스며든다.

관광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관광객 숫자만 보는 시대는 끝났다. 체류 시간, 재방문율, 지역과의 연결성이 핵심 지표가 됐다.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환경과 개발의 균형, 지역 간 효과 확산, 주민 삶과 관광의 공존이 동시에 요구된다. 관광객 편의뿐 아니라 시민 삶의 질도 지켜야 지속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포항 관광의 성패를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에서 찾는다.대형 축제와 랜드마크는 이미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계절 콘텐츠, 생활형 문화 공간, 골목까지 연결되는 촘촘한 체류 구조다.

바다와 산업, 문화가 공존하는 포항은 다시 묻는다.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를.
KTX포항역 이전으로 폐철도 부지가 숲길로 변모한 포항 철길숲. 포항시 제공
포항 해병대 문화축제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포항시 제공

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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