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안정성 점검]⑭ 소비자 피해만 1400억원…“금융기관 수준 규제 필요”
“소비자 보호 심각한 공백…업계 투명성 높이는 규제 필요”

|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 올해 상조회사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체가 운용하는 선수금 규모가 10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비해 규제가 느슨하고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업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기관 준하는 규제 개편 필요
상조회사는 금융기관에 가깝지만, 이를 규제하는 관련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특히 자산 운용, 자본비율 등 관리·감독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스경제>에 "상조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10조원 규모의 거대한 고객 자금을 다루면서도 금융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특히 선수금 의무예치 비율이 50%에 불과하고 나머지 50%에 대한 운용 규제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상조회사는 보험사처럼 고객들로부터 선수금을 받는다. 보험업과 다른 점은 상조사는 고객의 월 납입금을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데, 보험사와 달리 자산운용 규제가 사실상 없다. 할부거래법에 따라 선수금의 50%를 공제조합이나 은행에 예치하거나 보증 계약을 맺고 있지만, 나머지는 어디에 쓰든 제한이 없다.
특히 금융업계와 달리 정부가 정기적으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선수금에 대한 공시 의무도 전혀 없어 고객이 납입한 선수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깜깜이 운용'이란 지적이 많다.
최소 자본금 요건도 금융업계보다 한참 적다. 보험회사의 경우 생명보험사는 최소 500억원, 손해보험사는 최소 200억원의 자본금이 있어야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은행도 최소 자본금이 1000억원, 지방은행은 최소 250억원 이상 자본금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보험회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상조업계의 최소 자본금은 15억원에 불과하다. 이 외에 자본 규제는 아예 없어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기업이 많다.
아울러 금융업은 자본비율 규제를 받는다.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지켜야 한다.
킥스 비율은 보험사가 보험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자기자본 여력이 충분한 대형 보험사가 킥스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권고하는 킥스 비율은 130%이며, 이 수치에 미달하면 경영 개선 권고 등 당국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금융사의 재무안전성·건전성을 나타내는 평가 지표로, 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12%, 자산 1조원 이상 저축은행 11%, 1조원 이하는 10%의 자본 비율을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자산 1조원 이상 저축은행이 BIS 비율 8% 미만, 1조원 미만 저축은행은 7%를 하회하면 금융당국은 경영개선을 위한 적기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상조회사는 기준이 아예 없어서 자본잠식 회사가 부실을 키우는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더불어 보험계약자는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금융기관별로 1인당 1억원 한도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상조계약자는 할부거래법에 의해 납입한 금액의 50%만 보호받는다.
이 때문에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상조시장에서 소비자 피해액이 1404억9000만원에 달했지만, 선수금 절반만 보전하는 현 제도 때문에 대규모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민 의원은 "지난 2018년 대명스테이션(대명아임레디) 사례처럼 자본잠식 상태 업체가 고객 선수금 797억원을 투자성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오너 일가 계열사 지원에 사용하는 등 고객 자금을 '사금고'처럼 운용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적 취약점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 이후 등록취소 업체의 46%가 선수금 예치 기준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행 규제가 매우 부족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금융기관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자본비율 규제와 계열사 출자 금지 등 자산 관리 안정성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업계, '상조진흥법' 제정 주장…"국가가 특정 산업 지원해야 하는지 의문"
업계에서도 상조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나 산업 육성이나 지원을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은 부족하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상조 서비스가 장례 지원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전문화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도 상조진흥법(가칭) 추진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상조법 제정안 초안이 담긴 상조 서비스 제도 개선 방안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법 제정을 검토했지만, 구체적인 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상조업계에서 선수금은 재무제표상 부채로 계산된다. 이에 따라 가입 고객이 증가해 선수금 규모가 커지면 부채가 커지는 구조로 이어진다. 즉, 활발한 영업으로 선수금이 쌓여도 장부상으로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부실기업 취급을 당하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을 확보해 선수금이 늘면 부채가 늘어나 신사업을 추진할 때 투자나 대출을 받기 어려워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부채가 늘어난다고 자본이 잠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선수금이 들어오는 만큼 부채와 자산이 같이 늘어나는 구조이기에 자본에는 영향이 없어야 한다. 사실은 선수금이 늘어날 때 모집 수당을 과도하게 지급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하고 자본을 갉아먹는 구조이다.
'신사업을 추진할 때 투자나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고객의 자금을 안전하게 보전해야 하는 상조회사가 위험성 있는 신사업을 추진한다는 자체가 문제이고, 이미 선수금으로 엄청난 자금을 확보한 상조회사가 대출을 받는 상황 자체가 부실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업계에서 주장하는 상조진흥법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특정 업종을 위한 법을 만들어서 지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차라리 건전성, 자산운용, 선수금 관리 측면에서 굉장히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에 자본규제나 자산운용 규제를 먼저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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