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약, 쌓여가는 위험] 유통기한 지난 폐의약품, 환경과 건강에 '독'
“의도하지 않고 먹는 약은 ‘독’”
경기도민 40% 폐의약품 어떻게 버리는지 몰라


#1. 평택시 고덕면에 살고 있는 A 씨(34·여). 신혼부부인 A 씨는 감기를 달고 사는 다섯 살 배기 딸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찾는다. A 씨는 "아기 약은 거의 다 시럽으로 되어 있다"면서 "남긴 약은 싱크대에 부어서 비우고 용기는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버린다"라고 말했다.
#2.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주택에 거주하는 B 씨(58·여) 가족 약 상자는 병원 처방 약 봉투로 빼곡하다. B 씨가 어깨통증과 류머티즘 질환으로 병원에 자주 가는 탓이다. '어깨 염증'·'진통'이라고 쓴 약봉지에는 '1일 2회, 7일분, 식후 30분 후 복용'이라고 적혀 있다. 처방 날짜는 2018년 1월 22일. B 씨는 "어깨가 아파서 받아 온 약인데 이틀 만에 가라앉아 복용을 중단했다"면서 "남은 약은 다시 아프면 먹으려고 한다"라고 했다.
두 사례는 폐의약품 관리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다수가 이를 알지 못한 채 무심코 약을 버리거나 다시 복용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폐의약품 수거·처리는 환경부가 2009년 민-관 협약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법제화되는 등 관리·체계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시행 15년이 넘도록 폐의약품 처리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의약품이란 가정이나 그 밖의 장소에서 사용기한 경과나 변질, 부패 등으로 인하여 복용할 수 없는 의약품을 이른다.
환경부는 폐의약품을 안전하고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2017년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해 인간의 건강과 주변 환경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폐의약품 등을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규정했다.
이어 환경부는 생활계 유해폐기물의 배출 방법, 수거 장소 및 수거함 설치, 수거 방법, 처리 방법 등을 담은 '생활계 유해폐기물 관리지침'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관련 규정에서 폐의약품은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배출하도록 했다. 배출 장소에는 별도의 분리수거함을 설치토록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A 씨 같이 폐의약품 처리에 대한 인식 부족 인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도가 2021년도에 도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폐의약품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출 실태를 보면 일반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39%, 약국 제출 또는 약국 수거함 34%, 처분하지 않고 집에 보관 12%, 보건소·복지관·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시설 수거함 6%, 가정 내 싱크대·변기·하수관 5%로 조사되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폐의약품은 하천과 토양으로 흘러들어 생태계 교란, 항생제 내성균 출현, 수질오염 등의 문제를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의약품이 환경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국제 연구자료인 Global Perspectives(Pharmaceuticals in the Environment–Global Occurrences and Perspectives)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71개국의 지표수(하천·호수), 하수, 지하수, 토양 등 다양한 환경 매체에서 의약품 또는 그 대사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문 기관 조사에서도 한강 수계 여러 지점에서 의약품 성분이, 또 낙동강 수계에서도 카페인을 비롯한 의약품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박정임 순천향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폐의약품 수거·처리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폐의약품에 처리에 대한 '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박정임 교수는 "의약물질이라는 이름 때문에 약은 무조건 몸에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의도하지 않고 먹는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라며 "특히 노인과 만성질환자의 경우 남은 약 재복용이 부작용과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세계에서 약 630종의 의약 성분이 강이나 하천, 지하수, 토양에서 검출된 보고가 되어 있고, 외국 사례로 의약품에 노출된 곳에서 호수에 사는 물고기의 암수 성비 비율이 바뀌거나 신경안정제를 먹은 죽은 소를 먹은 새가 죽기도 했다"라고 부연했다.
박명호 기자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