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4장] 김개남(312회)

박봉양이 물었으나 조장은 알지 못하였다.
"졸지에 당한 일인지라 어느 부대 놈들인지 파악을 못했습니다."
"옛기 병신 같은 놈. 그자들은 외지놈들이라는 거를 몰랐더란 말이냐?"
조장이 반문하였다.
"왜 외지 새끼들이라고 합니껴?"
"이 지역 군사들이었다면 니가 모를 리가 없제. 외지에서 온 지원병들인디, 영호도호소의 김인배 똘마니들일 것이다. 그자들 주력(走力)이 좋던가?"
"허벌나게 빠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더랑게요. 그래서 부하들이 혼비백산하고 정신줄 놓아부렀습니다."
"느자구들이라고는, 쯧쯧. 진작에 그런 걸 알아봐야제. 구렁창으로 유인해서 아구창 돌리고 봐부러야 했다니께. 그란디 당하고만 자빠졌어?"
"그자는 기습작전에 능한 잔디 어떻게 시다바리보다 못한 하인놈들이 당해내겠습니껴. 그나마 후퇴해서 인명을 구했지라우."
실제로 김인배는 젊은 지휘자답게 용기백배한 기습에 능한 척후병을 선발하여 돌격을 가했다. 김인배는 금구 출신으로 원래는 김덕명 휘하에 있었다. 성질 사납고 거칠고, 젊은 혈기로 싸우길 좋아하더니 관가에서 비하하는 말로 '개놈의 새끼'라는 김개남에게 붙었다.
"복수해버릴랍니다. 거언치 봐버릴랍니다."
"어떻게 봐버린다는 것이여?"
"박봉양 대장은 우덜을 무시하는디, 시피보들 마쇼."
하동대 조장이 반발하였다.
"니까짓 놈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대드는 것이여?"
"어르신이 돈 좀 있다고 우덜을 개무시하고, 대신에 어르신은 남원골 기생들 끼고 상께 우덜이 눈에 보이들 않지라우? 남원이 춘향이 본향잉게 미색 좋은 기생들 델꼬 논다고 하지만서도 어르신이 미색에 빠지고, 전시 작전도 하인놈들이 해줄 줄 알제만 그렇들 못하요. 애새끼들이 배운 것이 논에 모심고. 길쌈하고, 등짐 지는 것이 고작인디, 사람 패는 일이나 죽창으로 적군 배때기를 쑤셔 박는 일이 얼매나 능란하것소? 그런 아들 며칠이라도 훈련을 시켜서 전장(戰場)에 내보내야 하는디 대장이란 양반은 기생 끼고 놀아나고, 정신줄 헤부작한 것들이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건 나로서는 감당 못하겄소."
그제야 박봉양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실 돈 가진 유세로 하인놈들을 쌍것 이상 취급한 적이 없었다. 군사로 모았으면 군사로써 대접해야 하는데, 여전히 무식하고, 못난 놈들로 치부했으니 사기를 먹고 사는 군사가 싸움터에서 애초에 쩔쩔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망갈 궁리부터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알았다. 좌우지간 하동대 조장이 적정 상황을 살폈으니 작전을 전개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부대를 인솔하고 쉬어라. 단 쉬는 곳은 우리집 뒷마당이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훈련을 펼치며 부대를 추슬러라. 훈련 교관을 붙여주겠다."
박봉양은 선발대가 방우치에서 찍소리 못하고 당한 것을 기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패전 부대에 후하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훈련 시키는 일방으로 동학군 배후를 위협하는 운봉 민보군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진짜 전투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김개남은 박봉양 민보군이 복수혈전으로 부동으로 군사를 집중 배치하였다는 첩보를 받았다. 이에 한여름 동학군 강감역과 유학규를 시켜 다른 읍의 농민군 수천 명을 거느리고 출진하도록 독려하였다. 김개남은 남원부에 있던 활과 포와 화약을 본 개전지(開戰地)) 부동으로 실어가도록 조치하였다.
이때 전봉준이 운봉의 박봉양을 깔딱고개로 불러냈다.
"박봉양 씨, 내가 아는 처지로 농민군과 대적하지 말 것을 요청하오."
"당신은 김개남이 아닌디 뭣 땀시 나한티 와서 싸워라 마라 하는 것이오?"
"옛 우정이 있어서 그렇소. 나가 낭인생활 할 적에 지리산으로 들어간다고 항께 쌀자루와 노잣돈을 주었잖소. 그런 옛 정분이 있어서 달래러 온 소이연(所以然)이오."
"좆같은 소리 하네."
박봉양이 단번에 화를 내고 거절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