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환자는 ‘진료과 이름표’를 달고 오지 않는다

라한나 2026. 1. 1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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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3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과에 콜이 왔다. 번호를 보니 응급실이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여느 때처럼 다급하고도 간절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80세 여자 환자가 호흡곤란과 고열로 왔는데 왼쪽 가슴에 근육내 출혈로 인한 혈종이 있고 폐렴, 요로결석을 동반한 요관염, 대장염이 겹쳐서 입원에 적합한 과를 찾기가 어려워요. 교수님 과에서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고혈압, 당뇨병, 뇌경색 후유증 등 여러 지병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던 환자라는데, 폐렴이나 요로감염, 대장염은 내과전문의 출신인 나로서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흉벽 속 혈종이었다. 우선 응급실에서 응급 수혈을 시작하고, 출혈 원인으로 보이는 혈관을 막는 색전술을 시행했는데도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거 참…. 내과문제인지, 외과문제인지도 판단이 안 섰다. 가슴 부위 혈종이니 흉부외과에서 받아주면 좋으련만, 수술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고 내과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많았다. 폐렴을 보는 호흡기내과만의 문제도, 요로결석과 요관염을 보는 비뇨기과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수초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일단 응급실로 뛰어갔다. 37kg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왼쪽 가슴이 출혈로 인해 부풀어 올랐고 등까지 검붉은 멍이 퍼져 있었다. 그 옆을 지키던 아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 과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한다. 인천지역을 넘어 서울 대형병원까지 전전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만일 환자가 더 나빠져서 위험해진다면….

나 혼자 책임지고 치료하기에는 감당이 안되는 환자였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 과에 입원시킨 후 그때그때 다른 과 교수들의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곧바로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달고 고유량 산소공급장치로 산소 용량을 높였다. 폐렴과 요관염 치료를 위해 항생제도 시작했다. 가슴근육내 혈종은 자연적으로 흡수되길 기다리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영상의학과에 의뢰해 고인 피를 빼내는 배액관을 삽입했다. 보통 근육내 배액관은 삽입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영상의학과 선생님은 큰 문제 없이 완벽하게 시술을 끝냈다.

환자 상태가 서서히 호전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요로결석 때문에 소변 내려오는 요관이 막히고 콩팥에 소변이 고이는 수신증이 문제가 됐다. 그대로 두면 콩팥이 망가져 결국 투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비뇨기과 영상의학과와 상의하며 옆구리로 직접 콩팥에 관을 넣고 소변을 밖으로 빼냈다.

그 사이 다시 고열이 반복되고 감염내과와 상의하며 몇 차례나 항생제를 바꿔야 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환자는 뚜렷한 안정 추세를 보였다. 더 이상 가슴에 피가 고이지 않았고 호흡 곤란이나 고열도 없었다. 우리 병원 여러 과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손으로, 이 작은 몸을 살리기 위해 애쓴 덕분이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내과와 외과 어디쯤 있는 의사일까?

예전에는 내 경계가 분명했다. 입원전담전문의가 되기 전 나는 소화기내과 의사였고, 소화기 문제가 아니면 다른 과로 넘기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 모든 병을 직접 고칠 수는 없어도, 전체를 보고 치료의 방향을 잡고, 약을 조절하고, 서로 다른 과의 의견을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경계를 허무는 의사'로 이름 붙였다.

환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는 호흡기내과 환자예요", "심장내과 환자예요", 아님 "외과 환자예요" 하면서 '진료과 이름표'를 달고 응급실에 오는 사람은 없다.

숨찬 증상으로 호흡기내과에 입원한 환자가 차근차근 검사해보니 심장이 안 좋다거나, 콩팥이 망가졌다거나, 아니면 출혈이나 암 때문에 빈혈이 심해서 그랬다거나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고령 환자가 많은 시대에는 어느 한 과의 병만 가지고 오는 게 아니다. 여러 중증 복합질환들은 서로 악영향을 주면서 환자를 위험에 빠지게 한다.

그럴 때 특정 전문분야의 의사가 모든 환자를 깊이 들여다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입원전담전문의라는 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입원전담전문의가 소속된 과를 통합내과라고 부른다.(입원의학과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어 있는 병원도 있다.) 내과 전반 입원환자를 보는 과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나도 가급적 내 전문분야를 중심으로 소화기내과 환자를 주로 받았다. 소화기암 환자가 많았고, 전문의는 두 명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전문의가 4명으로 늘어났고 환자 군이 넓어졌다. 감염과 심부전, 신부전, 암, 혈전, 골절, 패혈증이 뒤섞인 환자들을 함께 돌본다. 괴질(도저히 원인을 찾기 힘든 경우 의사들끼리 이렇게 표현한다) 환자들도 우리가 돌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병동에는 늘 긴장이 감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산소 없이는 숨 쉬기 힘든 환자들, 낮에도 밤에도 멈추지 않는 기계 소리…. 예전 의료원장님께서 우리 병동을 둘러보고는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서 놀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통합내과는…. 다른 과에서 못 받는 환자들을 다 받아주잖아요." 동행했던 부원장님의 설명이었다고 한다.

그 말이 칭찬이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맡아야 할 몫에 대한 조용한 선언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얼마 전 다녀온 일본 학회에서 들은 얘기가 있다. 입원전담의들이 소속되어 일하는 병원종합진료과(우리나라의 입원의학과 또는 통합내과에 해당)를 두고 '고미바코(쓰레기통) 과'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한다는 것이다.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환자, 병이 여러 개 겹친 환자, 어느 과에 속해야 할지 애매한 환자들이 결국 그 과로 모인다는 뜻이다. 환자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표현 같아 인용하기가 송구하긴 하지만 특정 단일과에서 치료하기 힘든 다양한 환자라는 뜻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일본은 종합진료과가 생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초창기에는 "각 전문분야 진료과가 있는데 굳이 필요한 과냐", "병원 경영에 부담만 주는 것 아니냐"는 의문과 반발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 의학드라마 '19번째 카르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종합진료과 의사들은 무시당한다. 그러나 환자를 '단일 질병'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사람'으로 만나고, 그 사람의 삶과 가족,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이해하고 치료해 나가면서, 조금씩 환자나 다른 과 의사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따뜻한 날들이 모두에게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라한나 교수

대한입원의학회 정책위원장 (가천대 길병원 통합내과 분과장)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 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라한나 교수 (hannahra@gilhospi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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