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AI가 사랑스러울 때

박서강 2026. 1. 1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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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신 키우는 AI 가짜 영상
허구적 상상력이 효능감 주기도
의도 따라 갈리는 AI의 명과 암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산타인증샷' 모음.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AI를 활용해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 장면 이미지. X 캡처

열흘 전쯤 뉴스 영상 한 편을 출고 이틀 만에 삭제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미국 압송 과정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영상에 활용된 이미지 중 일부가 AI로 만든 가짜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내외신 보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가며 진위 파악을 시도했지만, 관련 정보들조차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어 확인이 쉽지 않았다. 결국 명백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으나 가짜 뉴스를 유통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영상을 내리기로 했다.

마두로 체포 및 압송 과정에서 AI로 생성한 정교한 이미지와 영상이 대거 확산하면서 이용자는 물론, 언론도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제 정세에 미친 파장과 별개로, 마두로 체포는 AI 기술 고도화로 가짜 정보의 확산 속도와 검증 속도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특히, 진실 보도가 생명인 언론이 AI 생성물을 제때 검증하지 못하면 오히려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명령어만으로 영상을 생성하는 AI 툴 ‘소라(Sora)’의 등장은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쇠도끼만큼 충격적이었다. 그후 2년, 생성형 AI 기술이 더욱 고도화하고 다양화하면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사이 온갖 허무맹랑한 AI 영상들이 SNS 피드를 점령했고 진짜 영상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증 기술의 더딘 발전, 사회적 감시 기능 부재는 딥페이크 같은 AI 악용 범죄까지 양산했다. 진실 검증이 필수인 뉴스 영상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생성형 AI는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그렇다고 마냥 AI만 탓할 일인가. 문제의 본질은 인간에 있다. 인간의 의도에 따라 AI도 행복 호르몬을 생성하는 ‘호감’ 기술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성탄절 SNS에서 ‘산타 인증샷’이 유행했다. 자고 있는 아이 사진에 AI로 산타를 덧입혀, 마치 산타가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처럼 만든 이미지나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이 동심을 1년 더 연장하고 부모 입장에선 마법 같은 크리스마스를 선물할 수 있으니 기특하고 효능감 넘치는 AI가 아닐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5년 7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전시 '다시 찾은 얼굴들'에서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AI로 생성한 영상을 공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 캡처
할아버지의 90세 생일을 맞아 손자가 과거 사진을 활용해 AI로 만든 영상을 할아버지가 감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할아버지의 90세 생일을 맞아 손자가 앨범 속 사진들로 만든 ‘인생 리플레이’ 영상도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다. 할아버지가 씩 웃으며 백텀블링을 하는 허구적 상상력 덕분에 가족애는 더욱 끈끈해진다. 빛바랜 가족사진, 돌아가신 부모의 생전 모습과 음성을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만들어 추억하는 데 검증이 무슨 필요인가. AI 특유의 오류나 부자연스러움도 문제없다. 굳은 표정으로 역사책 속에서만 머물러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후손들은 실제 사진이 주는 거리감을 극복하고 감정적 연결까지 경험할 수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낸 가짜를 진짜라고 속이는 게 AI의 지향점은 아닐 것이다. 새롭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연결하고 감정을 치유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생성형 AI 기술은 얼마든지 고도화되고 환영받아 마땅하다. AI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 퍼 나르는 사람, 보는 사람 누구도 허구임을 의심치 않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면, AI만큼 사랑스러운 문명의 이기가 또 있을까.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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