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옆자리] 빨라진 기차, 사라진 기억

유년 시절 차멀미가 심했던 저는 할머니 댁에 가려고 태백~동해 한시간짜리 열차를 자주 탔습니다. 이때 가장 신나던 순간은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창밖 풍경도, 목적지 도착도 아니었습니다.
투둑툭 투둑툭. 달리는 열차가 내는 일정한 소리 속에서 덜컹거리며 다가오던 간식카트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평소에는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도 입에 넣기 어려운 커피땅콩이나 다디단 바나나맛우유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는 자식을 달래려면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방법이었겠지만요.
혹시나 간식카트가 나를 못 보고 지나갈까봐 조마조마했던 기억, 저만 있는 거 아닐 겁니다. 주황색 그물에 한 줄로 포장된 삶은 달걀과 투명한 도시락에 담긴 김밥, 진공포장된 오징어, 세로로 착착 꽂혀있던 비스킷과 잡지, 신문들. 벌써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 간식카트는 2018년을 끝으로 모든 열차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역사 안 편의점과 열차 내 자판기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잘 없어졌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음식 냄새가 불편했고,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시끄럽다는 불만도 이해가 됩니다.
열차는 그사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국내 간선철도(고속·일반철도) 이용객 수는 사상 처음으로 1억7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고속철도 이용객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KTX와 SRT는 좌석 수를 훌쩍 넘긴 이용률로 하루하루를 달리고 있습니다.
국내 어디든 2~3시간이면 도착하는 세상입니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기차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1905년 경부선이 처음 놓였을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17시간이 걸렸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동의 일부였고, 간식카트는 자연스러운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속철 시대가 열리면서 기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점점 어색해졌습니다. 효율과 정숙함은 남았지만, 여유는 날아간 셈이죠. 그래서 간식카트가 유독 그리운가 봅니다. 그 카트는 단순히 간식을 파는 장치가 아니라, 이동을 ‘기억’으로 바꿔주던 매개였기 때문입니다. 기차는 목적지로 가는 통로였지만, 간식카트가 있던 시절의 기차는 그 자체로 추억의 시간과 공간의 상자였습니다.
이제 기차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게 실어 나릅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하게 됩니다. 만석의 고속열차 사이로 덜컹거리며 다가오는 간식카트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바나나맛 우유 한 병으로 충분히 길어질 수 있는, 길다 못해 지루할 수 있는 이동시간이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통로가 되지는 않을까. 빠른 이동보다 오래 남는 기억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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