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겨울의 사과나무 전지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2026. 1. 1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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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들과 함께
높이 치솟으려는
내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냈다

새롭게
눈들은 유의하며

바깥쪽으로 뻗는 가지들은 유의하며
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
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늙은 정원사가 말한다

너무 큰 괴로움, 너무 큰 기쁨도
우리를
뚫고 가야만 한다

라이너 쿤체(1933~2024)

라이너 쿤체는 고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지닌 독일의 서정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동독 정보국의 감찰을 받으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사과나무의 전지(剪枝)를 마음의 가지치기에 비유한 이 시는 결실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고 욕망을 덜어내는 지혜를 전해준다. 제목부터가 두 행으로 가지치기 되어 있다. 겨울이 가지치기에 좋은 것은 나무의 생장이 느려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가지치기를 무리하게 하면 수관이 불균형해지고 바람을 견디는 힘이 약해진다. 시인은 먼저 “높이 치솟으려는/ 내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싹을 품은 눈들과 바깥쪽으로 뻗는 가지들은 섬세하게 살펴서 남겨두어야 한다. 산 가지와 죽은 가지를 구분하는 통찰력 또한 필요하다. 늙은 정원사는 “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 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겨울의 빈 가지를 보면서도 이듬해 사과를 수확할 무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정원사의 조언은 마음을 가지치기하는 데도 유효하다.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내야 햇빛과 바람이 드나들 수 있듯이, “너무 큰 괴로움, 너무 큰 기쁨”이 우리 마음을 뚫고 지나가려면 내면을 성글게 비워두어야 한다. 나무도 마음도 가지치기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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