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담] 노인을 위한 제3의 장소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 2026. 1. 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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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이로 쉰일곱, 이제는 50대 '중반'이란 소리도 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현대인의 삶을 결정짓는 도시 공간 중에서도 집과 직장 외에 낯선 사람과 쉽게 우호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제3의 장소(그가 쓴 책도 <제3의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하이 공원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노인을 위한 '제3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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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 어울릴 곳이 중요하다는데
공원 모임 많은 중국, 노인자살률도 낮아

한국 나이로 쉰일곱, 이제는 50대 '중반'이란 소리도 하기 어렵게 됐다. 노년으로 가는 문턱이 코앞에 닥쳤다. 솔직히 흔쾌하지 않다. 대한민국 노년의 삶이 전반적으로 우울해 보여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압도적인 1위다. 빈곤율은 약 40%로, OECD 평균(14.2%)보다 2.8배가 높고, 자살률은 10만 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16명)보다 2.5배가 높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고독사 사망자 수도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23년에 3661명이던 것이 2024년에는 3924명으로 7% 넘게 증가했다. 전체 고독사 사망자 중 무려 54%가 50~60대 '남성'이다. 은퇴하면서 사회적 관계망이 갑자기 단절된 결과로 추정된다. 자신을 증명해주던 '호칭'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절망하는 남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게다.

노년의 삶은 대체로 불행하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노인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노인'이라는 낯선 존재로 박제된다"고 말했다. 소설가 박완서도 <너무나 쓸쓸한 당신>에서 "늙음은 부끄러운 것도 죄도 아니지만, 분명히 벌이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주류 사회가 노인을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는 현실 속에서 우리 같은 노인 후보생들의 앞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만 할까.

지난 주말 가족들과 상하이에 다녀왔다. 토요일 아침 아내와 나는 쑨원이 머문 '손중산 고거 기념관' 입장 시간을 기다리다가 바로 옆 푸싱공원에 들렀다. 창원의 가음정동 장미공원 정도 면적인데 동네 노인들이 다 모인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라인댄스 같은 광장무를 즐기는 그룹, 왈츠를 추는 커플, 나뭇가지에 차트처럼 악보를 걸어놓고 합창하는 그룹, 태극권에 몰입한 그룹, 중국식 요요 '콩쥬'로 한껏 묘기를 부리는 그룹들로 공원 전체가 가득 찼다. 이튿날 아침에는 윤봉길 의사 유적이 있는 루쉰공원에 들렀다. 호수를 포함한 용지공원 정도 면적이었는데, 그곳도 어김없이 수많은 노인이 구석구석 공간을 차지하면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 기준으로 무척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하지만 노인 후보생 관점으로는 조금 달리 보였다. 이들 모임의 특징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참여하기'다. 예를 들어 합창단은 공원 보행자들에게 등을 보이며 자기네끼리(?) 노래 부른다. 지휘자도 있고 반주악단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주기보다는 함께 노래 부르기에 집중한다. 같이 부르고 싶으면 누구나 그들 뒤에 서기만 하면 된다. 공원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라도 쉽게 어울릴 만한 모임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노래 부를 줄 알고 몸 움직일 줄만 안다면 선택지는 무궁무진해 보였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현대인의 삶을 결정짓는 도시 공간 중에서도 집과 직장 외에 낯선 사람과 쉽게 우호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제3의 장소(그가 쓴 책도 <제3의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든버그가 제시한 제3의 장소에는 공원, 카페, 서점, 동네술집 등이 포함된다. 물론 공간이 있다고 저절로 만남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들을 의미 있게 만나게 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하이 공원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노인을 위한 '제3의 장소'였다. 그래서 찾아봤다. 중국의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낮은 14명 수준이었고, 상하이처럼 공원을 잘 갖춘 도시 지역은 4.3명에 그쳤다.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