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4장] 김개남(311회)

천보산은 박봉양의 민보군이 고도의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보았다.
"민심 이반을 촉발시키려는 박봉양의 잔꾀다. 동학군이 보유한 군량미를 털 수 있는 근거리에 있는디도 이것을 외면하고 한사코 원거리의 남원성 관창(官倉) 양곡을 털었던 것은 동학군이 약탈해갔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이간책이다. 시방 동학군과 백성, 동학군과 유림 간에 음해와 이간책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런 점을 살피고 민심도 파악하기 바란다. 그 자를 생포해라. 껍닥을 벗겨불 것이다."
천보산은 동학군 중에서도 민첩한 병사들만을 빼내 척후부대를 새롭게 편성했다. 한식경이 지난 후 민보군의 동태를 살핀 척후장이 김개남과 천보산이 구수회의를 갖는 진중으로 달려왔다. "박봉양의 민보군 일부가 운봉에서 산동으로 넘어가는 방아치 아래에 있는 부동(부절리)에 들어와 있구만이요. 숫자가 백여 명입니다."
"숫자가 그것밖에 안돼?"
"살펴보니 골짜기에 한 무더기로 모여 있습니다."
"고것들 선발대다. 발라불자. 우리의 힘이 어떠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뽀사부러야 한다."
그때 김인배가 들어왔다.
"민보군과 맞닥뜨린다고 해서 지원차 왔습니다. 보아하니 부절리에 민보군 부대가 들어왔다고 하니 우리가 설거지하고 순천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김개남으로부터 영호대접주로 발령받은 김인배는 스물네 살의 한참 물오른 청년이었다. 원래는 본명이 김용배인데 인배로 개명해 금구 고향의 김덕명 휘하에 있었다. 그런데 도덕성 따지고, 경우를 따지는 김덕명과 전봉준 휘하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며 기골찬 젊은이답게 김개남 휘하로 들어와 있었다.
측근으로 발탁한 김개남은 용모 수려하고, 단단한 체격으로 젊은 기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를 보고 자식 같은 나이지만 동지로 받아들였다.
"척후장으로부터 민보군세를 보고받았는디, 어떻게 처리할 것인고?"
김개남이 묻자 김인배가 답했다.
"능선을 타고 넘어가서 일격에 악살을 멕여버릴 작정입니다. 군사들이 훈련만 하다봉께 주먹이 꼴린다고 안 합니까? 하하하."
용기로 보면 김인배는 꼭 자신의 분신과 같았다.
"장난삼아 하는 것이 아닝게 현지 상황에 맞게 전술을 잘 구사해야 할 것이야."
"여부가 있습니까."
그는 방아치에서 편을 두 갈래로 나눠 양쪽에서 협곡의 민보군을 공략하기로 했다. 과연 민보군 부대가 골짜기에서 아침밥을 지어먹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을 내려다보며 김인배가 건너편 산에 은신하여 진을 친 을군(乙軍) 병사에게 붉은 깃발을 높이 들어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숨어있던 을군 병사들이 벼락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민보군이 아직도 한가롭게 솥에 불을 때고, 일부는 반찬거리를 다듬고 있었다.
"이놈들, 꼼짝 마라!"
갑자기 밀어닥친 농민군을 보자 민보군 병사들이 허둥지둥,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김인배가 인솔한 갑군을 향해 명령했다.
"죽창 부대부터 진격하라."
이들이 소리 지르며 내려가자 쇠스랑, 도끼, 낫을 든 보병부대가 뒤를 이었다. 골짜기에서는 갑자기 피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민보군은 말이 군사지 대부분 박봉양에게 고용되어 농사짓던 하인들이었다. 무기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었고, 싸울 줄은 더더군다나 몰랐다. 모양만 군사였다.
민보군을 지휘하는 조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도망가라. 안 죽어야 산께 일단 퇴각하라."
이들이 도망쳐 본부에 이르자 박봉양이 씁쓰레하게 웃었다. 사실은 그도 동학군 실력이 어떤가, 간을 보기 위해 선발대를 올려보낸 것이었다.
"피해 상황이 얼마냐."
"네댓이 현장에서 죽고, 여나무 명이 부상을 당했고, 포로로 서넛이 잡힌 것 같습니다."
"그 부대가 어느 부대더란 말이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