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2관왕 차지한 《케데헌》, K컬처의 글로벌 위상 바꿨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2026. 1. 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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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을 건넜다”…서구 대중이 열광한 한국 문화
하위 문화 넘어 주류 문화로…한국 문화의 결정적 전환점 이뤄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1월11일(현지시간) 열린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최우수 애니메이션 영화상과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한국계 제작진이 만든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골든글로브는 미국에서 아카데미상 다음가는 권위를 인정받는 시상식으로, 흔히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으로 불린다.

흥행 성과와 파급력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수상이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 사상 최초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하면서 영화·시리즈를 통틀어 넷플릭스 역대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역사적인 수준의 흥행을 기록했다. 단순한 흥행 성공을 넘어, 엄청난 문화적 파급 효과를 일으키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신드롬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중문화사에 남을 정도의 사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소니픽처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공개한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이 작품이 각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제목에서부터 'K팝'을 전면에 내세울 만큼 한국 문화와 밀접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관객 가운데는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로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 자본으로 제작됐지만, 주요 제작진이 한국계였고, 한국 문화를 표현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골든글로브에서 《골든》으로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은 가수 오드리 누나, 이재, 레이 아미(왼쪽부터)가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유치한 제목, 가장 강력한 무기 되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이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오히려 제목이었다는 점이다. 'K팝'을 대놓고 내세우면서 '데몬 헌터스'를 덧붙인 제목은 서구 관객에게 다소 유치한 B급 상업물 같은 느낌을 줬다. 서구에는 K팝 팬이 많지만, K팝을 진지한 음악이 아닌 팬을 대상으로 한 팬시 상품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에겐 영화 제목의 'K팝'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이고, K팝 팬이라 하더라도 K팝과 데몬 헌터스를 엮은 것을 유치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완성도와 음악에 놀랐고, K팝 스타와 저승사자의 세계를 결합한 독특한 서사에 빠져들면서 제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K팝과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확장되는 구조다. 메기 강 감독은 제목 단계에서부터 K팝을 전면에 내세우는 과감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제작사 국적과 무관하게 'K팝 영화'로 인식됐다. 비록 흥행 수익은 미국 회사에 귀속되겠지만, 그보다 훨씬 큰 문화적 파급 효과는 한국의 것이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작사와 배급사 모두 이 작품의 대흥행을 예측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관적으로 전망한 소니픽처스는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겼고, 넷플릭스 역시 이 작품을 소리·소문 없이 공개했다. 일부 K팝 팬을 겨냥한 틈새 콘텐츠 정도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 아펠한스, 매기 강, 미셸 웡(왼쪽부터)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UPI연합

K팝, 하위 문화에서 주류로…역대급 사회 현상

하지만 공개 이후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K팝 팬층을 넘어, 기존에 K팝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던 서구 일반 관객까지 호응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작품 제작에 관여한 짐 로포 리퍼블릭 레코드 회장은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18~44세 사이의 시청자층, 그리고 이전에 플랫폼에서 K팝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다. 이건 더 이상 K팝 현상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제는 하나의 대중문화 현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K팝이 더 이상 특정 장르나 팬덤의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대중문화 현상으로 진입했다는 의미다.

이 영화로 촉발된 변화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 K팝은 오랫동안 특정 팬만 즐기는 '하위 문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케데헌》을 계기로 일반 대중까지 K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점차 주류 문화로 이동하는 질적 도약을 이뤄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어떻게 미국인들을 K팝으로 이끌었나'라는 기사에서 "K팝 대중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K팝 문화를 멋지게 주류화했다"며 "이전에는 이 장르를 접하지 않았던 새로운 팬층을 끌어냈다"고 보도했다. 파급 효과는 K팝에만 그치지 않았다. 한국 문화 전반에까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라면'이 등재된 데에도 《케데헌》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라멘'이 아닌 '라면'이라고 발음하는 장면이 나오고, 여기에 수많은 서구 관객이 호응하면서 한국식 라면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각인됐다. 호랑이와 까치 같은 한국 민화 캐릭터, 국립중앙박물관까지 화제가 되며 한국 문화 전반으로 관심이 확장됐다. 그러니 사회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의 문화적 파급 효과를 낸 것이다.

이 정도 작품은 매년 나오지 않는다.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박스오피스 흥행 성과상은 《씨너스: 죄인들》이 받았는데, 사실 《씨너스: 죄인들》은 매년 몇 편씩 등장하는 흥행작 수준의 위상이었다. 흥행 규모와 파급력을 놓고 보면 역사적 대흥행작인 《케데헌》이 이 상까지 받아 3관왕에 올라야 했다. 골든글로브 시상 결과와 무관하게, 《케데헌》이 역대급 히트작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은 《케데헌》의 주제가 《골든》도 압도적 히트곡이다. 빌보드 핫100 8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은 영화 주제가로서도 이례적이지만, 현실에서 느껴지는 체감적 확산은 이 같은 수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미국 전반에서 《골든》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노래를 비롯한 《케데헌》 OST로 인해 K팝을 우습게 보던 일각의 평가가 완전히 불식됐다. 《골든》은 영화 공개 직후 음이 너무 높아 가창이 불가능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베이비몬스터 등 한국 아이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K팝 스타의 실력이 다시금 인식되기도 했다.

《케데헌》은 앞으로도 추가 수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최대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상에서도 주제가상은 아주 유력해 보인다. 《골든》을 공동 작곡하고 직접 부른 이재가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받고 한국어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머지않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도 한국어가 울려 퍼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에는 변수도 존재한다. 여전히 매우 유력한 수상 후보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이라서 불리할 수도 있다. 마침 극장 개봉작인 디즈니의 《주토피아 2》가 흥행에 성공하며 할리우드의 기를 살려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가 어떤 선택을 하건, 《케데헌》이 한국 문화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사를 썼다는 점은 확실하다. K팝과 한국 문화는 이제 서구에서 되돌릴 수 없는 루비콘강을 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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