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묻자마자 냅다 도주... 야밤 한강공원에서 흔히 일어난다는데
당근마켓 모임 기능인 ‘경도’
경찰과 도둑으로 편나눠 술래잡기
회원 수 수천명 달하는 모임도 있어

“혹시 당근이세요?”
말만 들어보면 중고거래를 할 것 같지만 사람들의 손은 가벼워요. 대신 편한 운동화를 신고 스트레칭을 하며 뛸 준비를 할 뿐입니다.
최근 지역 기반 플랫폼 ‘당근마켓’의 모임 기능을 통해 경찰과 도둑, 이른바 ‘경도’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가고 있어요. 경도는 한정된 공간에서 경찰과 도둑으로 편을 나눠 술래잡기를 하는 게임이에요. 도둑은 경찰에게 잡히면 감옥으로 가야 합니다. 술래와 도둑으로 나눠 규칙에 어긋난 사람들을 잡는 게임 방식은 오징어 게임에서 유행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과 유사하죠.
현재 당근마켓에서 ‘경도’를 모집하는 글은 셀 수 없이 많아요. 회원 수가 수천 명에 달하는 모임도 생겨났죠. 기자도 이 중 한 모임에 참여해 경도의 인기를 직접 실감해 보았습니다.

“저기 경찰 쉰다!” “저 말고 저기 저 사람 잡으러 가주세요.”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한강공원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어떤 도둑은 일반인인 척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하고, 감옥을 지키고 있는 경찰을 유도해서 다른 도둑들을 탈출시킨 도둑도 있었죠. 추격전과 심리전이 계속되며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경도는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고, 끝나고 희망하는 사람끼리 뒤풀이도 갔어요. 기자도 뒤풀이에 참여했는데요. 같이 뛰면서 친밀감이 쌓인 뒤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더 수월했어요.
사람들은 경도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입을 모아요. 뒤풀이에서 만난 20대 여성 A씨는 “초등학생 때 아파트 놀이터에서 하던 경도를 다시 하니 그때의 추억이 생각난다”고 고백했고, 20대 남성 B씨는 “맨날 방에서 휴대폰만 하다가 초등학생 때처럼 밖에서 사람들과 뛰어노니까 좋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청년들의 심리 상태는 매우 위태로워요. 국무조정실이 실시한 2024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약 3분의 1이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을 정도로 상당수의 청년이 정신적인 피로를 겪고 있어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청년의 94.7%는 좋은 인간관계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습니다.
이 같은 건강한 관계에 대한 갈증은 ‘소셜 웰니스(Social Wellness)’의 유행으로 나타났어요. 소셜 웰니스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즐거움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해요. 경도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체력을 쌓는 러닝 크루(Running Crew), 쓰레기를 줍는 것에 사회적 관계를 결합한 플로깅(Plogging)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셜 웰니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후 전국으로 대중화됐습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단절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건강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이에 정부도 2023년부터 정서적 취약 청년을 위한 관계 형성을 지원할 만큼 소셜 웰니스는 청년의 심리적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면 경찰과 도둑이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만 나뉘는 경도는 오직 규칙에만 집중해요. 배경을 묻지 않는 이 익명성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MZ세대의 향수(鄕愁) 역시 경도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어요. 1970년대생과 1980년대생이 동네 골목길에서 오징어게임을 하며 유년기를 보냈던 것처럼 MZ세대들은 대단지 아파트 안의 놀이터나 공원에서 경찰과 도둑을 하곤 했어요. 지상현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MZ세대들이 경도를 즐기는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집단적 기억이 투영된 장소로 돌아가려는 향수가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지 교수에 따르면 MZ세대들은 단순한 산책과 여가의 공간이던 공원을 자신들의 경도 놀이 공간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즐거움이 커지는 만큼 주의도 필요합니다.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당근마켓 특성상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어요. 최근 특정 종교가 경도를 매개로 포교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게시글이 주목받기도 했어요. 또 익명성을 악용한 범죄 우려도 존재하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건강한 소셜 웰니스를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김덕식 기자. 김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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