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클래스 라면이 가난?”…선 넘은 ‘가난 밈’에 우는 청춘들

이서현 기자 2026. 1. 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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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빈부격차에 대한 냉소·체념, 비윤리적 밈 거리낌 없이 확산”
부(富) 과시 목적으로 가난을 차용한 ‘가난 밈(meme)’ 논란
‘가난 밈’ 게시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챗지피티


넓고 아늑한 비행기 퍼스트클래스 좌석. 테이블 위에는 라면과 과일·디저트, 음료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민트색 네일을 한 여성이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 들려는 사진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긋지긋하다, 라면 먹는 지독한 가난.”

17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른바 ‘가난 밈(meme)’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가난 밈’은 명백한 부의 과시가 목적인 데도, ‘지독한 가난’, ‘지긋지긋한 가난’ 이라는 문구를 쓰며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극단적인 불일치가 특징이다.

고가의 시계를 찬 손목을 보란 듯이 자랑하며 슈퍼카 핸들을 잡고 “기름 넣을 돈도 없어서 출근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이라고 적거나, 라면과 김밥 사이로 슈퍼카 키를 노출하며 “지독한 가난” 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자산 격차가 확대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가난을 희화화하거나 연출하는 콘텐츠를 단순한 유행이나 유머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왕시에 거주하는 이씨(21)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어 벅찬 현실에 지금도 진짜 돈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이 누군가에게 농담이나 과시의 도구가 된 걸 보니 불쾌하고 내 처지가 더 서글퍼졌다”고 덧붙였다.

안양시 직장인 김씨(30)도 “그냥 웃어 넘기기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금도를 넘어선 것 같다”면서 “밈이라고 하기엔 해학과 풍자적인 요소조차 전혀 없이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자산 불평등 역대 최고치…국민 89% “빈부격차 심각”

실제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통계상으로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달 4일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13억3651만원으로 1년 새 8% 늘어난 반면, 하위 20%는 1억5913만원으로 6.1% 감소했다. 격차는 7.3배에서 8.4배로 확대됐다. 순자산 기준으로는 상위 20%가 하위 20%의 ‘45배’에 달했다.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2012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 기록을 세웠다.

자산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 대한 국민 체감도 역시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빈부격차(23.2%)’가 뽑혔다.

국민의 89.7%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분야 ‘소득·재산에 따른 불평등’이 53.2%로 가장 심각한 사회 불평등 분야로 인식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또, 부유층과 서민층 간의 ‘갈등이 크다'는 응답은 74.0%로 집계됐다.

■ 전문가 “계층 사다리 없어져…빈부격차에 대한 냉소·체념”

전문가는 초양극화 시대가 고착화 되어감에 따라 빈부격차에 구조적 문제제기나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적 시도는 고사하고, 논의조차 점차 약화 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유우현 인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때는 ‘수저 계급론’에 대한 논쟁이라도 있었지만, 최근엔 그런 문제 제기조차 사라진 채 각자가 처한 경제적 위치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흐름이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빈부격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현실 때문에 가난 조롱형 밈과 같은 비윤리적 밈이 거리낌 없이 확산될 수 있다”면서 “가난 조롱 밈은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바라보는 후속 세대의 가치관과 정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층 사다리가 사실상 사라진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가 불평등을 분노나 문제 제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서 이미 고정된 조건이자 조롱의 소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불편한 진실”이라고 짚었다.

이서현 기자 sunshin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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