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큐의 시선] 제프 쿤스 파격세일: 공장처럼 작동하는 예술

하은정 기자 2026. 1. 1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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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 파격세일.’ 이 문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설명보다 먼저 웃음이 났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이 문장이 실제가 된다면, 과연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사진 예술의전당

지난 연말 문을 연 <내맘쏙: 모두의 천자문>은 표면적으로는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가족 전시다. 전통 텍스트인 천자문을 하나의 공통 주제로 삼아, 총 14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작업을 선보이는 프로젝트형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의 성격만 놓고 보면 굳이 오프닝 시간에 맞춰 방문할 이유는 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을 찾게 만든 동기는 분명했다. 오프닝 퍼포먼스로 예정된 남다현 작가의 <제프 쿤스 파격세일>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가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제프 쿤스'를 어떻게, 얼마나 '파격 세일'한다는 것인지, 이 낯선 조합이 실제 퍼포먼스로 구현될 때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전시장에 도착해 작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지만, 의도나 설명을 먼저 묻지는 않았다. 정각에 맞춰 시작된 퍼포먼스를 있는 그대로 관람했다. 처음 시야에 들어온 것은 퍼포먼스 특유의 긴장감이나 과장된 몸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수작업 공장이 돌아가는 풍경에 가까웠다. 중견기업 이상의 자동화 작업장을 연상시키는 세팅, 정리된 동선, 기계를 대신해 반복되는 사람 손의 움직임. 세 명의 작업자가 분담해 수행하는 업무-풍선을 불고, 강아지 모양으로 묶고, 완성된 풍선을 은박지 쟁반에 부착하는-의 전체 장면은 '보여주기'보다는 '작동하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작업은 퍼포먼스라기보다 하나의 생산 공정에 가까웠다.

사진 예술의전당

완성과 동시에 작업대 앞에 놓인 골판지 박스 안으로 무심히 떨어지는 '강아지 풍선'은 99.99% 할인이라는 설정 아래 단돈 1,000원에 현장 구매가 가능했다. 그러나 가격과 달리, 그 의미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행위의 상징성보다, 그 행위들이 축적되며 만들어내는 전체 시스템이었다. 즉흥적이거나 감각적 자극에 의존하는 기존 퍼포먼스와 달리, 이 작업은 현실을 세밀하게 고증한 듯 작업장의 환경 자체가 지나치게 익숙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반복, 숙련, 매뉴얼, 효율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퍼포먼스가 불러오는 이미지는 분명하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1970~80년대 공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과도한 연출도, 노골적인 비판도 없다. 대신 기업 홍보 영상에서 자주 보아온 장면들이 겹쳐진다. 제작 과정은 성실함과 신뢰의 이미지로 포장되고, 손의 움직임은 전문성과 정교함의 증거처럼 강조된다. 남다현 작가는 이러한 장면들을 과장하지 않은 채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온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현실적이고 서글프다.

이 작업에는 분명 풍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풍자는 외부에서 던지는 비판이 아니라, 구조 안으로 직접 들어가 이를 수행함으로써 발생한다. 퍼포먼스는 천 원짜리 굿즈 판매로 이어지고, 그 수익이 전부 작가에게 귀속된다는 사실 또한 명확히 드러난다. 예술이 전시되고, 판매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끝까지 숨기지 않고 실행하는 태도 자체가 이 작업의 풍자를 완성한다.

사진 예술의전당

이 장면은 <내맘쏙: 모두의 천자문>이라는 전시의 맥락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천자문은 의미를 이해하기에 앞서, 운율에 실린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과정을 통해 먼저 몸에 각인된다. 하나의 문장을 수십 번 되뇌는 동안 의미는 습관처럼 축적된다. <제프 쿤스 파격세일>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복되는 작업 공정과 숙련된 손의 움직임, 매뉴얼화된 행위들은 감상을 요구하기보다 경험을 누적시킨다. 이해보다 체득이 먼저 오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퍼포먼스는 전시의 구성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또 다른 참여형 작업 <죽은 조각을 되살리는 법> 연작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공사장 안전모 위에 설치된 대형 모빌은 즉각적으로 알렉산더 칼더를 연상시키지만, 그 움직임은 조형물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몸에 의해 완성된다. 안전모를 착용하는 순간, 조각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이동 가능한 장치로 전환되며,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쓰는 것'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사진 예술의전당
사진 예술의전당

또 다른 연작에서는 <키스>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이 등장한다. 돌처럼 보이지만 가벼운 재료로 제작된 이 조각은 관객이 직접 안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조각은 스스로 닫혀 있지 않고, 관객의 몸을 기다리는 형태로 남아 있다.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관객은 작품의 완성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

이 작업들 역시 새로움을 과시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조각의 언어, 미술사적 형식, 익숙한 제스처를 그대로 가져와 다시 작동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남다현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라기보다 '재가동'일 것이다. 기능을 잃은 조각, 박제된 형식, 감상에 머물러 있던 대상들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오늘의 시간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장면들 앞에서 도슨트의 설명은 필수적이지 않아 보인다. 웃어도 되고, 불편해해도 되고, 아무 감정 없이 지나쳐도 무방하다. 이러한 반응의 다양성 자체가 그의 작업이 동시대의 예술 언어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현대미술이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 자주, 그것을 그럴듯한 설명의 대상으로만 소비해왔을 뿐이다.

<내맘쏙: 모두의 천자문> 
일시 ~2026년 3월 22일 
장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글쓴이 이혜민(@comme_haemin) 18년간 미술관과 전시 현장을 두루 거쳐온 큐레이터. 한국일보 문화사업단, 일민미술관, 서울경제 백상미술정책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예술에 대한 시선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감정의 여백을 기록하는 글을 쓴다. 현재 인공지능 예술 융합 분야에서 실험적 전시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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