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희망고문 35년…정권마다 청사진, 매립률 42% 그쳐
![전북 새만금사업지는 정권 입맛따라 바뀌는 개발계획 탓에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올해로 개발 35주년을 맞지만 매립률은 42%, 산단의 매립 완료된 구역의 입주율은 86%다. [사진 전북도청]](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17/joongangsunday/20260117000246389mteu.jpg)
지난 13일 새만금 북쪽의 전북 군산시 옥서면의 한 마을회관. 마을 앞바다가 간척 사업으로 메워지기 전까지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주민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최모(66)씨는 “여기가 돈 바다였어, 다 부자였당께”라며 “저기 바닷물 다 메꾼다 해놓고 조개랑 해태(김)랑 다 사라졌어”라고 말했다. 옆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김모(89)씨도 “뭐 여긴 맨날 대통령 나오는 사람마다 한다 한다 말만 하고, 맨날 안 되고 그래”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공장’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최씨는 “뉴스 보니까 공장이 많이 온다고 했다니, 그놈이 빨리 들어와야 쓰겄는디”라며 “(공장이) 여기 들어오면 후손들이라도 괜찮잖아”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인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다시 김씨가 “말도 말어. 쉬운 문제는 아니여”라고 보탰다.
올해가 새만금 재도약의 원년이 될까, 아니면 또 한번의 희망 고문으로 기록될까. 전북이 술렁이고 있다. 상반기 중 새만금 기본계획 재수립을 앞둔 상황에서 수도권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일부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논의까지 촉발되면서다. 청와대는 “클러스터 대상 기업 이전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8일 김남준 대변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유치위원회’가 꾸려지고 서명 운동까지 시작됐다.
발단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해말 한 발언이었다. 그는 “용인에 SK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그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15GW 수준이라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전북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새만금 이전론에 불을 지폈다. 그는 “새만금은 2029년까지 약 3GW의 재생에너지를 즉시 공급할 수 있고, 이는 신규 클러스터의 첫 팹(반도체 생산라인) 2기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즉각 충당할 수 있는 규모”라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반긴다. 군산시 수송동의 한 카페 주인 박모(51)씨는 “일로 와야 된당께. 낙후된 지역에 (클러스터를) 보내줘야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업을 접은 지 15년 됐다는 김종주(68)씨는 “삼십몇 년 동안 전북 사람들은 결국 표만 주고 뒤통수만 맞았다. 이대로 가면 새만금은 100년 후에도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로 착공 35년째를 맞이한 새만금 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이 수차례 수정되면서 제자리걸음이다. 1991년 11월 방조제 축조 사업에 착공한 뒤 대통령이 9번이나 바뀌는 동안 기초적인 매립지 공사조차 끝내지 못한 상태다. 현재까지 매립률은 41.8%. 이재명 대통령조차 지난해 12월 12일 새만금개발청 업무보고 당시 “이것도 일종의 희망고문 아니냐. 표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권자들한테 헛된 희망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작 그도 대선후보 시절 “새만금을 풍력·태양광·조력 에너지 기반 RE100(재생에너지 100%) 국가산업단지로 조성해 전북자치도의 위대한 미래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매립지 용처를 두고도 오락가락했다. 농업 생산 필요성이 줄어들자 노무현 정부는 매립지의 72%를 농지로, 28%는 산업·관광 등 비농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표방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농지 30%, 비농지 70%의 ‘새만금종합계발계획’이 발표됐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경협단지 조성’을 내걸로 국토교통부 산하에 새만금개발청을 만들었다.
새만금에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 때로, 2017년 기준 8%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만금을 거점으로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제시됐다. 그러다가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전년 대비 78% 대폭 삭감되기도 했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13일 찾은 새만금 산단에는 듬성듬성 입주한 기업들 사이로 빈터가 꽤 눈에 띄었다. 산업단지 9개 공구 중 매립이 완료돼 기업 입주가 이뤄진 건 1·2·5·6공구뿐이다. 이곳에서 만난 입주업체 관계자는 “매립지라 일반 대지와 달라 시공작업에 꽤 비용이 들었다”며 “이차전지 특화단지라 해서 왔지만 ‘입주하니 끝’이다. 산단 활성화가 목적이었다면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랐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전북도 재정자립도는 23.5%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다. 반도체클러스터 새만금 유치추진위원회의 한상오 공동대표는 “군산은 GM대우자동차나 현대중공업이 빠져나간 뒤 불 꺼진 항구가 된 지 오래”라며 “전북으로선 이제는 다른 활로를 뚫어야 하기에 절박함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갈등학회장인 하동현 전북대 교수는 “국가전략 사업은 지역 안배 논리를 넘어 미래 타당성, 입지 적합성, 지역 수용성 등의 기준을 토대로 판단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산=신수민 기자,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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