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인상 뒤 한 달, 경쟁사도 똑같이 올렸다…공정위 '담합'

[스포츠한국 홍여정 기자] 교과서와 책, 노트, 달력까지. 우리 일상 전반에 쓰이는 인쇄용지 가격이 수년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결정돼 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제지사들의 조직적인 가격 담합을 적발하면서, 인쇄·출판 업계와 소비자에게 전가된 피해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무림SP, 무림P&P, 한국제지, 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에 대해 부당공동행위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이들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인쇄용지 가격과 인상률, 인상 시점을 사전에 조율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한솔이 올리면 한 달 뒤 줄줄이"
공정위 조사 결과, 담합의 신호탄은 시장 점유율 1위인 한솔제지였다. 한솔제지는 2021년 12월 인쇄용지 전 제품 가격을 7% 인상했고, 이후 2022년 5월에는 15%를 추가로 올렸다. 같은 해 9월에는 거래처에 제공하던 할인율을 7% 줄여 사실상 또 한 번 가격을 끌어올렸다.
한솔제지가 가격 인상을 공지한 지 불과 한 달 뒤, 무림페이퍼·무림SP·무림P&P도 똑같은 인상률(7%)을 적용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제지사들이 대면 회의를 통해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사전 조율했으며, 담합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인상 공문 발송 시점만 서로 다르게 설정한 정황을 포착했다.
인쇄용지 시장 규모는 약 1조원. 이 시장을 6개 업체가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가격 인상은 '순차적'이 아니라 '합의된 결과'였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 담합의 비용, 인쇄소와 독자가 떠안았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영세 인쇄업체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서적과 예술서적을 주로 제작하는 인쇄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인쇄용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종이 가격이 소폭만 상승해도 인쇄비와 책 판매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영세 인쇄소와 소규모 출판사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쇄용지 가격 인상이 반복되면서, 제작 물량 축소나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울러 업계 안팎에서는 시장 1위 사업자의 가격 인상이 사실상 '신호'로 작용해 경쟁사들의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 공정위, 상반기 제재 수위 결정
공정위는 이르면 상반기 중 전원회의를 열고 이들 제지사에 대한 과징금·시정명령 등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공정위는 교과서·교육 분야를 포함한 생활 밀접 산업 담합에 대해 강도 높은 점검을 예고한 바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시장 1위 사업자인 한솔제지가 가격 인상의 포문을 열고, 경쟁사들이 이를 따라가는 구조가 수년간 반복됐다"며 구조적 담합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코스피는 고공행진, 한솔제지는 '역주행'
이번 담합 적발은 한솔제지의 주가 흐름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글로벌 증시 회복 기대와 대형주 중심의 랠리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과 달리, 한솔제지 주가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쇄용지 가격 인상 국면에서 실적 개선 기대가 선반영됐던 만큼, 담합 이슈가 불거지며 규제 리스크와 신뢰 훼손 우려가 동시에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과징금 부과 가능성과 함께, 향후 가격 정책에 대한 제약이 현실화될 경우 수익성 압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전반은 상승 흐름을 타고 있지만, 한솔제지는 담합 조사라는 개별 악재가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라며 "공정위 제재 수위와 이후 가격 전략 변화가 주가 방향성을 가를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스포츠한국 홍여정 기자 duwjddid@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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