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의 국회의원 후원을 전면 금지하라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언론의 보도는 가위 충격적이다. 지난 제8회 지방선거를 전후해 출마자 175명이 국회의원들에게 건넨 돈이 무려 12억 원에 달했다.
국회의원이 개인 명의로 1인당 연간 최대 5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받는 것은 합법이다. 하지만 명목은 '정치후원금'이지만, 시점과 대상을 뜯어보면 이는 명백한 '공천 보험'이자 '충성 맹세'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법인과 단체의 후원은 부패 방지라는 명목으로 엄격히 금지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지방의원과 출마자들이 돈을 싸 들고 가는 구조를 방치하는 것은 생살여탈권을 빌미로 한 사실상의 수탈 행위이다.
과연 공천 시즌에 폭발하는 후원금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정치자금법 제정의 취지는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여 '검은돈'의 개입을 막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시스템은 오히려 검은 욕망에 '합법'의 외피를 입혀주고 있다. 지방선거 공천을 앞둔 시점에 후원금이 평소의 수 배로 폭증하고, 무투표 당선자들조차 지역구 의원에게 상당액의 후원금을 상납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자발적 후원이 아니라, 공천받기 위해 반드시 내야 하는 '통행세'에 가깝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가신(家臣)'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 속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되고, 그 대가로 공천을 구걸하며, 그 과정에서 고액 후원금이라는 합법적 경로를 통해 충성심을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본인 출마 외에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때도 지방 정치인과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후원이 증가했다.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출마자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0년 3월에는 1억200만원의 후원금이, 22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4년 3월에는 8000만원의 후원금이 모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이 정치에 미칠 영향력을 우려해 후원을 금지했다면, 국회의원에게 종속된 지방의원의 후원 역시 동일한 잣대로 금지하는 게 마땅하다. 이해관계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얽힌 돈이 어떻게 깨끗한 정치후원금이 될 수 있나.
더욱 가관인 것은 후원 내역의 불투명성이다. 현직 지방의원들이 후원금을 내면서 직업란에 '자영업'이나 '회사원'이라고 기재하는 행태는 그들 스스로도 이 돈이 떳떳하지 못함을 방증한다. 현직 의원이라는 신분을 은폐하기 위해 부업을 기재했다면 이는 투명성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치인 간의 금전적 거래가 공천이나 인사권과 결부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한다.
프랑스는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금전을 제공하는 행위를 공직자 윤리 규정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영국은 공천권이 중앙당이나 지역구 의원 1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지역 당원들의 민주적 심사 과정을 중시한다고 한다. 독일도 지방자치와 중앙정치의 분리가 명확하여,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에게 '충성 자금'을 바치는 구조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문제는 '개인 후원'이라는 외피만 쓰면 그 이면의 '공천권 거래'를 눈감아주는 법적 허점에 있다. 지방의원의 후원금은 법인의 후원금과 달리 노골적인 '공천권 매수'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도 결단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국회의원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돈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따라서 공천권자와 피공천자 간의 금전 거래를 '법인 후원 금지' 수준으로 강화하는 보완책이 시급하다.
정치후원금 제도가 국회의원의 쌈짓돈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공천권은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권한이지, 국회의원이 돈을 수탈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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