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4장] 김개남(310회)

윤태민 기자 2026. 1.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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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이 물었다.

"박봉양이라면 일목(一目) 부호(富豪)란 자 아닌가?"

"그렇습니다. 한쪽 눈이 없어서 일목이요, 부자라고 하여서 일목 부호인 박봉양은 시방 민보군을 결성하여 이끌고 있습니다."

"좋다. 남원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주천면이나 산동면에서 설거지해불자."

김개남은 북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박봉양 민보군부터 손을 보기로 하였다.

박봉양은 운봉의 대부호로서 권세가 막강하였다. 이속 출신이라는 오만으로 지방 관속들을 마음대로 꾸짖었으며, 고을 사람들을 함부로 부렸다, 또한 재물을 수레로 실어 조정의 권세가들에게 뇌물로 바쳤다. 누구나 그의 뜻을 거슬렀다가는 곧바로 보복을 당하였기 때문에 운봉 전체가 그의 위세에 숨을 죽였다. 조정의 뒷배로 힘을 쓰면서 재산을 불렸다.

"그 새끼, 전형적인 악질 토호라매? 춘향전의 변사또 같은 자 아닌가? 더군다나 이속 출신이라니까 말이야!"

이런 자를 혼내주어야 남원과 운봉의 민심을 산다고 김개남은 판단하였다.

"그자는 수년 전 암행어사 이면상에게 비리와 비행이 걸려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도중 몰래 뇌물을 주고 풀려난 뒤 민씨 척족의 실력자 민영준에게 15만 냥을 바치고 과거에 합격하였다고까지 합니다."

"매를 버는군. 그래서?"

"헌데 꼴에 동학군이 각 고을로 돌아가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 활동을 시작하자 세상이 바뀐 것을 보고 가산을 약탈당할까 두려워하여 장수(長水)의 동학접주 황내문(黃乃文)에게 입도하여 한 달 가량 부적과 주문(呪文)을 익혔지만, 뜻한 대로 영험이 없고, 여전히 동학군이 재물을 약탈해갈 것을 우려하고 동학과 단절한 자입니다. 그 후 동학에 악의를 품고 민보군을 조직하여 동학군 섬멸 작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조상의 영전에 곡하고 족친들과 뜻을 같이하는 30여 명과 하인 수십 명을 모아 민보군을 조직하였다. 김개남은 남원뿐만 아니라 임실, 장수, 담양 등 여러 지역에 걸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운봉에 대한 농민군의 영향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였다. 이 틈을 노린 것이었다.

운봉은 고원지대로 남원에서 운봉에 가려면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했으므로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지니고 있었다. 박봉양은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동학군으로부터 운봉을 지키는 한편으로 남원성을 점령한 김개남군을 치려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는 새로 부임한 현감 이의경에게 나아가 동학군을 칠 계획을 보고하고, 관군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현감 나리, 준동하는 동학군을 미리 섬멸하지 않으면 우리 고을 역시 안전할 수 없소이다. 적장 김개남은 동학 비도 지도자 중 가장 악질적이고 사나운 장수요. 이 자를 아작을 내부러야 운봉을 보존하고 남원성을 찾고, 나아가 전주성도 회복할 것이오."

"좋소. 운봉의 민보군은 몇 명이오?"

"소인이 부리는 하인과 집안 척족을 포함하명 일백 됩니다."

"그것 가지고 되겠소? 몇 군데 지역의 군사를 지원토록 하겠소."

이의경은 연락하여 함양의 포군 150명을 박봉양 민보군에 합류시키고, 경상감사 조병호를 통해 총통 300정과 화약 수천 근을 가져왔다. 그가 박봉양을 다시 불렀다.

"경상도와 인근 지역에서 호응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그 규모가 5000을 헤아리는디, 지도할 수 있소?"

"맡겨줌사 이끌지요. 소인의 재산이 풍부한고로 그들을 먹일 양곡을 대겠소."

"과연 민씨 척족들로부터 인정받는 인물이란 점을 알겠구려."

이의경 역시 그가 중앙의 민씨 척족에게 거액의 재산을 바친 것을 알고 있었다.

박봉양의 민보군은 이백면과 주천면 사이의 가마골에 진을 쳤다. 이때 박봉양군이 닥치는 대로 민가를 약탈하였다. 된장, 냄비, 솥, 농기구 일체의 주민 재산을 빼앗아 갔다. 남원성 외곽에 관미(官米)를 쌓아놓은 창고가 있었는데 박봉양의 민보군이 모두 털어갔다. 천보산이 한 척후장의 보고를 받았다.

"박봉양 군이 동학군 복장을 하고 관미를 털고, 냄비, 솥, 농기구 따위 주민 재산을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반면에 길바닥에 쌓아놓은 우리 동학군의 군량미는 하나도 털어가지 않았다는군입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