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 음식과 예술 사이

군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생일을 핑계로 아내와 함께 인천을 벗어나기로 했다. 여유가 없어 서로 마음을 내지 못했던 터라, 이번 여행에서는 부담 없이 군산에 머물다가 인천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군산을 선택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군산의 공기와 정서가 그리웠던 탓이 크다.
군산은 첫 번째 직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부랴부랴 집을 구해 계약하고 살기 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이 도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오래 일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군산의 공기와 분위기를 좋은 기억으로 품고 있어서 눈 오는 날 이곳을 떠난 이후, 언젠가 다시 찾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5년이 지나서야 군산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영등포로 다시 군산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작은 숙소 소월(小月)을 찾았다. 이곳은 1935년 1월1일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목조 건물로 당시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집의 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숙소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현재가 아닌 과거의 시간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숙소가 있는 동네는 일본 식민지 시기 개항도시여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천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서구의 근대적 세계관과 건물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었다. 인천중구청 근처 주변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도 좋겠다. 자세히 따져 보면 차이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만, 근대의 상징적 형태가 인천은 작고 조밀했지만, 군산은 넓고 컸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느리게 구 군산 세관, 구 일본 제19은행 군산지점,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동국사 등을 돌아다니면서 군산이 품고 있던 근대의 시간을 천천히 느리게 통과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근대라는 것도 100년 안쪽일 텐데,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군산의 기억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해, 특정 장소가 품고 있는 신비로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오래 걸으니 허기가 졌다. 여행 중이어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어떻게 사 먹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동인천이나 신포동에 있는 식당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 식당의 성격이나 메뉴가 어떻게 나오는지 예측할 수 있지만, 군산에 도착한 이방인으로서 좋은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유튜브 검색이나 지인이 추천해 준 맛집은 유익했으나, 너무나 많았다. 추천받은 식당을 하나하나 모두 셈할 수 없었다. 결국, 고민하다가 유명한 곳을 찾았다. 군산의 유명한 빵집 '이성당'과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촬영지 앞 '한우무국'으로 유명한 '한일옥'에서 끼니를 때우며 군산 주변을 돌고 돌았다.
그런데 이 글은 여행하게 된 이유나 숙소, 음식에 대해 적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여행의 여정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맞지만, 직접적으로 무게를 두고자 한 것은 오히려 숙소에서 우연히 본 넷플릭스 시리즈 '주관식당'(2025)이다.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서에 작성해 요리사에게 전해 주면 요리사는 그걸 토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특이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 메뉴명이 없다는 것이다. 이 메뉴는 음식을 다 먹은 손님에 의해서만 새롭게 '명명'된다. 그러니 주관식당에서는 손님과 요리사가 함께 음식을 새롭게 명명한다고 볼 수 있다. 숙소에서 이 영상을 보다가 이 과정이 예술의 과정과 닮았다는 몽상을 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 음식 역시 기존의 맛을 새롭게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음식과 예술은 이렇게 닮았다.
/문종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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