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 가도 끝없는 슬픔”…조선 후기엔 죽음을 어떻게 기록했나

김미혜 기자 2026. 1. 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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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가도 끝이 없는 유감을 기록하지 않으면 이때의 애통했던 일들을 뒷날 회상하면서 참고하며 살펴볼 자료가 없게 된다."

'상장례·제례 일기' 속 기록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드러나는 가족과 공동체의 책임 그리고 기억을 남기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태도를 조용히 전한다.

천년이 가도 끝나지 않을 유감을 남기며 스스로 경계로 삼고자 했던 한 아들의 기록처럼, 이 일기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애도를 이어갈 것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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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18~19세기 상장례 총서 발간
조선 후기 장례 절차·비용·조문객 등 상세 기록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효와 추모의 의미 전달
‘상장례·제례 일기’ 에 수록된 자료 ‘망극록’ 내지. 국립민속박물관

“천년을 가도 끝이 없는 유감을 기록하지 않으면 이때의 애통했던 일들을 뒷날 회상하면서 참고하며 살펴볼 자료가 없게 된다.”

1797년 6월23일, 낙안 관아에서 아들 안기명은 붓을 들었다. 스스로를 불효자라 부르며 피눈물을 삼키며 적어 내려간 이 기록은 ‘망극록(罔極錄)’의 발문이다. 어머니 죽산 박씨(竹山朴氏)를 떠나보낸 뒤, 슬픔을 가슴에만 묻어둘 수 없어 글로 남긴 절절한 고백이자 다짐이었다. 

죽음 앞에서 무너진 마음을 글로 남기고, 훗날의 자손과 세상을 향해 자신을 불효의 경계로 삼고자 했던 기록은 장례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삶과 관계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상장례·제례 일기’. 국립민속박물관

이처럼 조선 후기 상장례와 제례의 풍경을 생생히 담은 자료들이 한데 모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최근 일기류 소장품 총서 제4권 ‘상장례·제례 일기’를 발간했다. 18~19세기 사족 사회에서 부모와 조상을 떠나보내며 남긴 일기 8건을 선별해 탈초와 번역을 거쳤으며, 고화질 원문 이미지도 함께 수록했다.

총서의 기록들은 초혼부터 탈상에 이르기까지 장례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전한다. 의례의 순서뿐 아니라 비용과 물품, 동원된 인력과 역할 분담, 조문객 명단까지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장례가 개인이나 한 가문의 일이 아니라 가족과 종중, 지역 공동체가 함께 감당한 사회적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망극록’에는 문헌 속 예법을 따르다 겪은 시행착오와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절차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까지 숨김없이 담겨 있다. 18세기 후반 무관 가문이 실제로 치른 상장례의 모습이 세밀하게 기록된 드문 사례다.

충남 금산에 세거하던 파평 윤씨 가문이 남긴 ‘장사일기(葬事日記)’ 역시 서울에서 별세한 이를 고향으로 운구해 장례를 치르는 전 과정을 그린다. 19세기 중반 사족 가문의 장례 문화는 물론, 그에 따랐던 경제적 부담과 인적 네트워크까지 살필 수 있다. 

이 밖에도 묘막 건축과 묘지 개장, 비석 개축을 기록한 일기들은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조상을 기억하고 예를 다하려는 노력이 오랜 시간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기억과 실천을 통해 지속되는 관계였다는 사실이 기록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망극록’ 표지.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날 장례는 점차 간소화되고 개인화되고 있다. 형식은 줄고, 절차는 짧아졌다. 그러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떠난 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은 질문이다. 

‘상장례·제례 일기’ 속 기록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드러나는 가족과 공동체의 책임 그리고 기억을 남기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태도를 조용히 전한다. 

천년이 가도 끝나지 않을 유감을 남기며 스스로 경계로 삼고자 했던 한 아들의 기록처럼, 이 일기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애도를 이어갈 것인지 묻는다. 절차가 아니라 마음으로, 형식이 아니라 기억으로 효와 추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문 필사본 자료를 누구나 쉽게 읽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한 ‘상장례·제례 일기’는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의 ‘발간자료 검색’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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