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트럼프가 몰고온 정직한 야만의 시대

김재근 선임기자 2026. 1.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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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돈"… 친구도 우방도 실종
유엔 나토도 의미 존재감 사라져
무뢰한이 널뛰는듯… 괴걸스러워
김재근 선임기자

요즘 뉴스나 논평에서 심심치 않게 '돈로주의'라는 낱말이 등장한다. 제도권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학술용어는 아니다. 이해하기 힘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군사·경제정책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돈로주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일컫는다. 돈이 되는 길만 가는,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사고방식이다. 돈(money)과 로(路, 길이란 뜻)를 묶어 '돈로'라는 기이한 어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단어는 2017년 트럼프가 처음 당선됐을 때 등장했다. 당시 그는 NATO에 방위비 공개를 압박하고, 한국과 일본에 동맹비 인상을 요구했으며, 국제기구 탈퇴와 재협상을 추진했다.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 때 사라졌다가 트럼프 2기에 부활했고 요즘 그 쓰임새가 아주 많아졌다.

트럼프의 돈로주의는 매우 극단적이고 즉흥적이다. 이웃이나 친구·우방·동맹도 없고 봐주지도 않는다. 집권하자 마자 관세전쟁으로 세계경제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 한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제3세계 약소국까지 사정없이 관세를 매겼다.

중국이 파나마운하를 장악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었고,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마약 테러'를 이유로 군사를 보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잡아다 미국의 교도소에 가뒀다. 요즘은 코카인 재배와 밀수출을 이유로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을, 시위대 학살과 관련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금세 잡아갈 듯 엄포를 놓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협박과 총격, 납치가 21세기 국가수반을 상대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업가 출신 트럼프의 사전에 철학이나 가치, 신의와 친구, 동맹이란 단어가 없다. 오로지 돈과 거래와 계산서와 청구서가 있을 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지금 당장 돈이 되고 거래가 이뤄지는 그 순간만 친구인 것이다. 나토와 유럽(EU)조차 돈로주의 태풍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미국에게 방위비를 내지 않은 동맹국(나토)을 공격하면 격려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인접국가를 압박, 공격하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 눈을 감아준다. 강대국끼리 각자 알아서 눈치껏 챙기자는 식이다. 유럽 9개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유럽의 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감층은 나라별로 16-28%에 불과했다.

트럼프 돈로주의의 극단을 보여준 게 국제기구 탈퇴이다. 그는 지난 7일 미국이 유엔경제사회국, 국제무역센터, 유엔무역개발회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등 66개 기구에서 발을 빼는 문서에 서명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인권이사회, 유네스코(UNESCO)도 탈퇴한 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이익에 반하고 세금만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도 무력해졌고, 이념도 힘을 못쓰고 있다. 우아한 가면을 쓴 채 정의와 이념·인권·신의를 외치던 시대는 가고, 벌거벗은 무뢰한이 정직하게 돈만 쫓는 야만의 시대가 된 것이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가공할 무력을 배경으로 나 혼자 잘살겠다고 널뛰고 나머지 국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앞날이다. 관세협상도 마무리하고 방위비 문제도 매듭지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트럼프라는 인물이, 미국이 뭔 일을 저지르거나 뭘 요구하면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인물 하나가 지구촌 전체를 이처럼 뒤흔든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돈과 무기를 등에 업고 이리저리 내닫는 모습이 괴걸(怪傑)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미국이 더 잘 살겠다며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영장류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존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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