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 선물은 무조건 초코파이" 베트남의 문화가 된 K과자 [르포]
초코파이 年 7억 개 판매, 시장 1위
현지 입맛에 맞춰 전통음식 접목
골목 점포까지 유통망도 촘촘히
"상반기에 어린이 건강식품 출시"
편집자주
베트남은 인구 1억 명의 절반이 35세 이하인 젊은 시장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 축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곳을 생산 기지에서 소비 시장으로 바뀐 기회의 땅으로 보고 경제 영토 확장에 나섰다.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도 현지화 전략과 기술력으로 베트남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베트남 현장에서 이들의 성장 전략을 살펴봤다.

지난달 16일 베트남 호찌민시 푸년군. 오토바이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을 걷자 한국의 옛 구멍가게 같은 작은 상점이 나왔다. 주인 린(42)이 입구 매대에 오스타(포카칩) 마시타(꼬북칩) 스윙(스윙칩) 마린보이(고래밥·이상 현지이름) 등 오리온 제품을 쉼 없이 채워 넣고 있었다. 자녀 간식을 사기 위해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 흐엉(49)은 "아이들이 오리온 과자, 특히 쿠스타스(카스타드) 베리 맛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서 간식 넘어 문화로

1995년 초코파이 수출로 베트남에 첫 발을 내디딘 지 만 30년. 오리온은 현지 제과 시장 점유율 1위를 굳히며 '국민 스낵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초코파이는 베트남에서만 연간 약 7억 개가 팔린다. 인구가 1억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최소 7개씩 찾는 셈이다. 지난해 초코파이 매출만 1,200억 원이 넘었다.
명절 선물과 결혼식 답례품은 물론, 제단에도 오르는 등 일상 깊숙이 스며든 '문화'로 자리잡았다. 호찌민시 이마트에서 만난 타잉(44) 부부는 "뗏(음력 설) 선물은 무조건 초코파이"라며 명절 전용 패키지 제품을 박스째 담아갔다. 이같은 정서를 반영하듯 현지 초코파이 박스에는 한국의 정(情)을 뜻하는 '띤(Tinh)'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현지 감자를 사용한 오스타와 스윙도 생감자 스낵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쌀과자와 젤리류도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베트남은 인구 절반이 35세 이하인 젊은 소비시장이다. 지난해 3분기(7~9월)까지 실적 기준으로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그룹 전체 매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이 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동남아는 물론 중동·아프리카까지 수출되며 해외 전략의 핵심 교두보 역할을 한다.

20만 상점 파고든 유통력

오리온이 베트남에서 입지를 굳힌 배경에는 기술력과 문화·환경에 대한 세밀한 접근이 있다. 오리온은 2006년과 2009년 남부 빈즈엉성, 북부 박닌성에 세운 공장에서 28개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레시피로 출발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고온다습한 기후와 야외 진열이 많은 베트남 판매 환경까지 고려한 제품을 만든다.
정종연 오리온 베트남법인 마케팅 상무는 "상품이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초코, 크림, 젤리가 녹거나 포장 필름이 손상될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해 성분과 적정 온도 등을 꾸준히 연구·개발(R&D) 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입맛에 맞춰 개발한 독자 제품도 있다.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쎄봉(C'est Bong)'과 쌀과자 '안(An)'이 대표적이다. 전통 음식 꼼(초록 쌀)을 접목한 쿠스타스, 현지인이 좋아하는 짜봉(돼지·닭고기 건조 육포)을 시즈닝으로 입힌 쌀과자 등 라인업도 다양하다.
또다른 경쟁력은 촘촘한 유통망이다. 베트남 소매시장의 약 85%는 영세 전통 상점이 차지한다. 오리온은 2,000명 넘는 영업사원을 투입해 골목 점포까지 제품을 공급하는 구조를 짰다. 이들이 수년 동안 한 상권을 맡고 매대 배치 조정·판촉 전략 등을 함께 고민하는 등 신뢰를 쌓아온 결과, 오리온 제품이 들어가는 점포는 약 20만 곳에 이른다. 브랜드 파워와 유통력에 힘입어 법인 설립 직후인 2006년 86억 원이던 매출은 2024년 5,145억 원으로 60배 가까이 뛰었다.

종합식품기업으로 확장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파이·젤리류 생산라인 확대 등을 통해 매출을 9,000억 원 수준까지 키울 계획이다. 제품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초코파이와 쿠스타스 설탕 함량을 절반으로 낮춘 '저당 라인'을 출시했다. 도시화·소득 증가와 함께 베트남에서도 헬시 플레저(맛과 영양, 칼로리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는 데 따른 대응이다.
앞으로 에너지바, 단백질 드링크 등 건강 제품군과 영·유아용 비스킷 등으로 사업을 넓힐 예정이다. 정 상무는 "2026년 상반기 어린이용 건강식품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이라며 "과자에서 음식에 가까운 제품으로 영역을 넓혀 베트남에서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호찌민·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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